워크래프트3 리포지드, 유저 평점 0.5점-전문가 평점 59점 기록
가시성 낮은 시각효과, 한글 폰트 깨짐 현상, 최적화 문제 등 난관 산적
2000년대 초 황금기 맞은 블리자드, 2018년 기점으로 신뢰도 급락
“블리자드 핵심가치 지켜지지 않은 지 오래”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의 나이트엘프. 한글 폰트 깨짐 현상으로 최근 ‘나이트깐프’가 됐다. 사진=블리자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RTS) 게임 ‘워크래프트3’를 개량한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이하 워3 리포지드)’를 내놨다. 하지만 리뷰·평가 수집 사이트에선 역대 최저점을 기록했고, 예약구매를 했던 사람들이 잇따라 환불을 요청하는 등 오랜 팬들까지 등을 돌리며 부정적인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 ‘워3 리포지드’, 평점 역대 최저점 ‘0.5’ 기록

6일 리뷰·평가 수집 사이트 메타크리틱에 따르면 워3 리포지드 유저 평점은 10점 만점에 0.5점으로 집계됐다. 6일 기준 유저 2만6405명 중 2만5112명이 워3 리포지드를 ‘Negative(부정적)’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 평점도 59점으로 낮은 편이다. 2017년 발매된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는 유저 평점 7.8점, 전문가 평점 85점이다.

워크래프트 IP는 블리자드에게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특히 워크래프트 IP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블리자드의 확실한 캐시카우 IP로 자리 잡았다. 국내에서는 블리자드라고 하면 대부분 이제 민속놀이라고 불릴 만큼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한 ‘스타크래프트’를 떠올리지만, 중국 내에서는 ‘워크래프트3’가 한국의 스타크래프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2000년대 초 ‘워크래프트3’가 나왔을 당시 e스포츠가 급성장하고 있던 국내에서도 대회가 활발히 열리며 장재호, 박준 등 워3 스타 선수들이 등장했고, 장재호 선수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e스포츠 관계자 최초 단독 성화를 봉송한 바 있다. 블리자드는 앞서 2017년 ‘스타크래프트’를 개선한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를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이런 모습을 봐온 많은 팬들은 워3에도 많은 기대를 걸었다. 2018년 블리자드가 자사 게임 팬 축제 ‘블리즈컨’에서 워3 리포지드를 공개했을 때까지만 해도 반응은 뜨거웠다.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 캠페인 한글 자막 폰트 깨짐 현상 모음. 사진=독자 제공

◆ 워3 리포지드, 약속은 흔적만 남았다

하지만 결과물은 팬들을 만족시키기는커녕 더 큰 실망만 안겼다. 워3 리포지드는 당초 2019년 연내 출시가 목표였지만 마무리 작업을 위해 발매를 연기하고 지난달 29일 출시된 게임이다.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게임 내 모델링은 개선된 것이 맞지만, 공격·스킬 효과(이펙트)는 오히려 원작보다 퇴보했다는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원작에 사용된 게임엔진을 그대로 사용해 대부분 2개 이상의 CPU를 사용하는 최근 추세에 맞추지 못하고 실질적으로 코어 하나만 쓰는 등 최적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많다.

그중에서도 폰트 버그 문제로 벌어진 ‘번역 문제’가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출시 후 워3 리포지드에서 캠페인을 진행하다 보면 한글 자막 폰트가 깨지는 현상이 많은 유저들에 의해 발견됐다. 호드 대족장 ‘스랄’은 호드의 대개장 ‘스’가 됐고, 스랄이 외치는 “나를 따르라! 록타르 오가르!”는 “나를 따람라! 록타람 오가람!”이 됐다. 나이트엘프의 수장 티란데 위스퍼윈드는 나이트깐프의 수장 티란데 위스외연드로, ‘얼라이언스’는 ‘끼라이언스’로, 불타는 군단의 고위 간부 ‘티콘드리우스’는 ‘벽영드리우’로, 아키몬드는 ‘야념몬드’로 강제 개명 당했다.

이외에도 블리자드가 2018 블리즈컨에서 워3 리포지드를 소개하면서 선보였던 시네마틱 컷씬은 캠페인 안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RTS 게임에서 중요한 가시성, 타격감은 퇴보했고 자막은 웃음을 유발했다. 게임 안에 적용할 고유 모델을 제작했지만 실제로 적용하지 않고 ‘더미데이터’로만 남아있는 것들도 다수 발견됐다.

 

디아블로3 정식발매를 하루 앞둔 2012년 5월 14일 서울 성동구 왕십리 민자역사 주변 한정 소장판을 구매하기 위해 수천명의 게임팬들이 비를 맞으며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2000년대 초 ‘황금기’ 겪은 블리자드

블리자드는 1994년 ‘워크래프트1(워크래프트: 오크와 인간)’, 1996년 ‘디아블로1’을 개발해 서비스할 당시만 해도 국내 인지도가 거의 없던 곳이었다. 하지만 1998년 ‘스타크래프트’와 그 확장팩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2000년 ‘디아블로2’, 2002년 ‘워크래프트3’, 2003년 ‘워크래프트3: 얼어붙은 왕좌’, 2004년 ‘와우’ 등의 게임을 전 세계에 흥행시켰다. 1998년 스타크래프트 열풍은 국내에서 e스포츠를 태동시켰고, 대한민국이 ‘e스포츠 종주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그동안 블리자드는 ‘장인정신’을 가진 게임사로 평가받아왔다. 2012년 ‘디아블로3’가 출시될 당시 디아블로3 한정판을 구매하려고 하는 팬들이 서울 성동구 왕십리 민자역사 앞에 운집해 사회적 논쟁거리가 되기도 했다. 디아블로3 한정판은 2012년 5월 14일 저녁에 판매를 시작했는데, 성동경찰서에 따르면 전날부터 모이기 시작한 사람들은 14일 기준 5000여명에 달했다. 일반판, 다운로드판도 있지만 ‘한정판’을 사기 위해 5000여명이 모였던 것은 디아블로3가 블리자드의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리자드는 2018년 돌연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이하 히오스)’ e스포츠 리그를 하루아침 만에 폐지한 일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게이머들의 신뢰를 잃기 시작했다. 블리자드는 이미 같은 해 11월 3일 ‘2018 블리즈컨’ 현장에서 모바일게임 ‘디아블로 이모탈’을 공개하면서 입장료를 내고 블리즈컨 현장에 온 충성고객에게 “철 지난 만우절 농담이냐”는 말을 들을 만큼 민심을 잃은 상태였다. ‘장인정신’을 잃고 소비자의 수요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일었다.

특히 히오스 리그가 폐지된 2018년 12월 13일은 히오스라는 종목의 프로게이머, 프로게임단, 중계진뿐 아니라 e스포츠 팬들과 업계 종사자들까지 큰 충격을 받은 날이었다. ‘e스포츠의 정식 스포츠화’를 추진해온 관련 업계에 블리자드가 돈이 되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종목을 폐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지난해에는 블리자드가 2018년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지만 800여명(전체 직원의 8%)에 달하는 인원을 해고하기도 했다.

 

‘최고의 품질 기준을 만족하는 게임만을 고객들에게 선사한다(Commit to quality)’. 블리자드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된 핵심가치 중 하나. 사진=블리자드 공식 홈페이지 캡처

◆ “달라진 블리자드에 실망”

1998년 스타크래프트 열풍 이후 국내에서 블리자드의 인기는 상당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블리자드 게임을 플레이했고, 블리자드에서 신작이 나올 때마다 예약구매를 했던 충성고객들도 이번 리포지드를 본 뒤에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다른 계열사 액티비전에서 서비스하는 ‘콜 오브 듀티’ 시리즈나 ‘데스티니’ 시리즈에는 유저들의 반응이 이렇지 않았다. 이에 일각에서는 액티비전의 경영진들이 블리자드의 장인정신 발휘를 막은 게 아니라 블리자드가 스스로 변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워3 리포지드는 오랜 팬들에게 ‘그래도 블리자드라면 다를 것’이라는 희망이 담긴 게임이었지만, 블리자드는 신경을 써야 했던 부분에는 부실했고 신경을 덜 써도 됐던 부분에 꼼꼼했다. 20년 넘게 블리자드 게임을 즐겨온 골수팬 A씨는 “지금까지 블리자드가 욕을 과도하게 먹고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디아블로 이모탈까진 그럴 수 있겠다 싶었는데 워3 리포지드를 보고 정이 떨어졌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15년 이상 블리자드 팬이었던 B씨는 “블리자드 본사 앞 동상 주변에 새겨진 ‘Gameplay First(흥미로운 게임이 먼저다)’, ‘Commit to Quality(품질에 헌신하라)’, ‘Every voice matters(모든 목소리는 중요하다)’ 같은 핵심가치는 지켜지지 않은 지 오래된 것 같다”며 “한 번 무너진 신뢰도를 다시 쌓는 것은 실적을 개선하는 일보다 몇 배는 어려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워3 리포지드 환불 요청이 많아지자 블리자드는 공식 홈페이지에 환불문의로 바로갈 수 있는 링크를 개설했고,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바라던 만큼의 경험이 없었던 것에 관해 죄송하다. 시각 효과, 일부 애니메이션 및 오디오 버그, 일부 UI 버그 및 알려진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이 업데이트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워3 리포지드의 개발 및 지원에 전념하고 있다. 모든 의견에 감사드리며 진행 중인 모든 사항을 워3 커뮤니티에 알리겠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투데이 변인호 기자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