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관·대기업 중심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증가세
가이드라인 없는 암호화폐, 국내에선 사업 지속 어려워
블록체인 스타트업들, 싱가포르 등 해외법인에서 사업
“이름 알려진 프로젝트들도 힘들어한다는 소문 많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첨단기술로 ‘블록체인’이 떠오른 지 수년이 지났다.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서비스는 하나둘 모습을 보이는 반면, 암호화폐(가상자산)와는 점점 거리를 두고 있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분리할 수 있는지에 관해 업계와 정계 양쪽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분리하는 쪽으로 가는 모양새다.

◆ 근심 깊어지는 블록체인 스타트업들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암호화폐 관련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대기업, 정부 공공기관 등에서 블록체인 서비스가 가시화되고 있고, 글로벌 협력도 이어지고 있지만 이런 서비스들은 대부분 암호화폐를 분리한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 서비스들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구체화·가시화를 시작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사 3사도 참여한 ‘블록체인 기반 모바일 신분증 생태계 연합(이하 DID 얼라이언스)’의 블록체인 디지털신분증은 연내 국내 금융권에 도입될 예정이다. 삼성SDS는 9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 2020’ 현장에서 미국 통신 솔루션 제공업체 시니버스와 자사의 블록체인 플랫폼 ‘넥스레저’ 기반 블록체인 송금 시스템 공동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전에도 대기업들은 블록체인 기술을 주로 프라이빗 블록체인 형태로 구현해왔다. 지난해 KT가 블록체인 생태계 확산에 나서겠다며 내놓은 서비스형 블록체인(BaaS) 플랫폼 ‘KT 기가 체인’도 프라이빗 블록체인이었다. 삼성SDS의 넥스레저도 마찬가지로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는 암호화폐는 분리하고 블록체인은 육성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암호화폐를 블록체인에서 분리하는 것은 사실상 프라이빗 블록체인에서만 가능하다는 분석이 많다. ‘탈중앙화’를 이념으로 삼고 세상에 나온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퍼블릭 블록체인(개방형 블록체인)은 생태계가 돌아가기 위해 다양한 조직이나 개인들이 필요한데, 구성원들에게 생태계를 유지하고 운영하는 데 기여한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암호화폐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란 미리 정해진 조직이나 개인들만 관리·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폐쇄형 블록체인’을 뜻한다. 일종의 인트라넷과 비슷한 개념으로, 블록체인 업계에서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설명할 때 주로 ‘조선왕조실록’을 예로 든다. 조선왕조실록은 4개의 사고에서 보관하다가 조선 후기에는 사고를 5개로 늘려 분산해 저장·보관했다. 분산 덕에 전쟁에 다른 사고가 불타도 1개의 사고만 남아있으면 보존이 가능했다. 정부·공공기관과 대기업의 블록체인 서비스는 조선왕조실록처럼 블록체인의 위변조 방지 및 해킹예방 기능에 중점을 두고 있다.

 

삼성SDS는 9일(현지시간) CES 2020 현장에서 미국 통신 솔루션 제공업체 시니버스와 자사의 블록체인 플랫폼 ‘넥스레저’ 기반 블록체인 송금 시스템 공동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왼쪽부터) 딘 더글라스 시니버스 CEO, 구형준 삼성SDS 미국법인장. 사진=삼성SDS

◆ 계륵이 된 암호화폐

암호화폐는 가격 상승 하락에 대한 환경 요소가 다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식처럼 시시각각 가격이 변동되지만, 원인을 분석하기도 쉽지 않고 주식시장처럼 금융 범죄를 막기 위한 제도가 갖춰진 것도 아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분리해 육성하겠다는 기조는 이해하지만, 기조에 맞는 정책이나 제도가 정리돼야 하는데 여전히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기업 입장에서 관련 법이 아니라 가이드라인만 있어도 하면 안 되는 것은 제외하고 가능한 것 위주로 사업 방향을 조정할 수 있는데, 없으니 힘들다는 것이다.

거기다 암호화폐와 분리가 가능한 프라이빗 블록체인 기반의 서비스를 하는 대기업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블록체인 관련 기업들은 스타트업이다. 블록체인 프로젝트로 불린다. 이런 스타트업은 시장 상황에 맞게 사업 방향을 빠르게 전환하거나 보완하면서 성장해야 하는데,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며 투자금만 소진하고 있다는 하소연도 많이 나온다.

예컨대 블록체인 게임 개발사들은 스타트업인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사업을 중단하기 전에 글로벌에 승부수를 던지는 일이 많다. 크립토도저 등 블록체인 게임들은 국내에선 서비스하지 않지만 글로벌에선 성과를 낸 바 있다. 국내에서는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블록체인 게임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블록체인 게임의 구성요소들을 사행성게임물 요건으로 보고 여러 차례 등급분류를 거부했다.

그나마 카카오 그라운드X의 클레이튼 거버넌스로 참여한 기업들이 블록체인에 기술적 접근만 하고 암호화폐를 하지 않는 곳들이 많은데, 이들 대부분이 대기업이다. 그 외 대다수의 스타트업은 한국에서 암호화폐 사업을 하기 어려우니 해외로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라운드X도 일본에서 세워진 법인이고, 대부분의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은 싱가포르 같은 지역에서 법인을 설립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규제가 많기로 알려진 싱가포르는 한국보다 일찍 블록체인 법인 등록제를 도입했다. 싱가포르 정부 관보에 따르면 싱가프로는 암호화폐 기업을 규제하는 법이 오는 28일부터 시행된다. 암호화폐 발행사, ICO(암호화폐공개) 회사, 암호화폐 거래소는 싱가포르 통화청(MAS)의 라이선스를 받아야 한다. 라이선스를 취득할 경우 자금세탁방지 등 각종 법적 의무도 추가된다. 규제 당국은 라이선스를 통해 관련 기업들을 등록 관리하고, 이를 통한 과세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청한 한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서 나름 이름이 알려진 블록체인 프로젝트들도 내부 사정은 좋지 않다는 소문을 자꾸 들려와서 안타깝다”며 “현재 시점에서 블록체인 산업이 어떻게 나아갈지 예상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한탄했다.

파이낸셜투데이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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