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임정희 기자

‘노동이사제’가 윤종원 IBK기업은행장과 노조의 갈등을 봉합할 수 있는 협상 카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윤 행장의 본점 출근이 저지됨에 따라 발생하는 경영 공백과 임직원 인사 지연 등으로 갈등 해소가 시급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윤 행장이 임명된 지 2주가 다 돼가고 있지만, 아직도 기업은행에는 한 발자국도 들이지 못하고 있다. 약 10년 만에 내부 출신 인사 관례가 깨지고 관료 출신이 행장으로 오면서 노조가 강력한 투쟁을 벌이고 있어서다. 윤 행장은 전 청와대 경제수석 비서관 출신으로 현재 금융연수원에 임시 집무실을 마련해 업무 보고를 받고 있다.

아울러 지난 13일 노조는 노동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대토론회를 진행하면서 투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약 500~600여명이 참석한 대토론회에서는 투쟁 현황과 앞으로의 계획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편으론 ‘실리론’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있다. 양측 모두 은행 경영상황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참고하면, 협상테이블에 앉아 원하는 바를 주고받을 날이 머지않은 것으로 보인다.

윤 행장이 기업은행으로 입성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적법한 절차를 밟은 윤 행장을 끌어내리려면 자진퇴사 밖에 답이 없는데 윤 행장 스스로 퇴사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또한 은행장 임명 때마다 진행된 출근 저지는 통과의례가 돼 버린 지 오래이며, 일각에서는 투쟁을 마무리하는 대신 실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윤 행장도 노조와의 대화를 통해 갈등을 풀어나가겠다는 의사를 거듭 밝히고 있는 만큼 노조가 본인들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분석이다.

이에 협상 카드로 ‘노동이사제’ 도입이 언급된다. 노동이사제는 쟁점이 많아 의견이 분분한 사안이다. 노동이사제는 노동자가 이사회에서 발언권 및 의결권을 갖고 기업의 최고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으로 기업 운영에 노동자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독일과 네덜란드, 덴마크 등 유럽 국가에서도 노동이사제를 적용하고 있다.

다만 노조의 과도한 경영 개입과 이에 따른 비효율성 등은 문제로 지적된다. 기업 경쟁력이 약화를 초래할 수 있으며 의사결정 과정에서 노조 측 입장에 치우칠 수도 있다. 실제로 독일은 기업들이 해외로 이전하는 경우가 많고 옆 나라 일본은 노동이사제 도입을 검토했으나 반발에 철회했다. 아울러 기업은행에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면 금융권 내에도 확산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기업은행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동안 국책은행에서 노동이사제 도입이 몇 차례 논의됐으나 번번이 좌절된 바 있다. 다만 이번에는 윤 행장이 노조와 함께 논의해볼 수 있다 입장을 여러 차례 전하며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 눈길을 끈다. 청와대 입장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노동이사제는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윤 행장을 무난히 앉히고 공약을 지키면서 금융노조의 표심까지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고 논의돼야 할 노동이사제가 최근에는 기업은행 노사갈등에서 사용될 협상카드로만 부각되는 모습이다. 물론, 노조는 노동이사제 도입과 낙하산 인사에 대한 투쟁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타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협상테이블에서 관련 이슈가 전혀 나오지 않을리는 만무하다.

결국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해결해야 한다. 관치금융과 깜깜이 행정, 낙하산 보은 인사 등 청와대는 모르쇠로 일관하지 말고 인사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이것과는 별개로 기업 경영에서 노동자와 경영자가 효과적이고 민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한 테이블에서 각자 원하는 바를 하나씩 주고받고 하는 식이라면 청와대 인사와 노조의 투쟁은 모두 타당성과 신뢰를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투데이 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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