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템깡’, 게임에 드리우는 탈세·자금세탁 등 검은 그림자
‘아이템깡’, 게임에 드리우는 탈세·자금세탁 등 검은 그림자
  • 변인호 기자
  • 승인 2020.01.10 1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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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RUSI “게임 아이템·게임머니 자금세탁 악용 우려”
국내에서도 게임 재화 이용해 자금세탁한 일당들 경찰 적발
암호화폐 거래소 등에는 AML·CFT 적용 추진 중
게임사 AML·CFT 적용 논의는 걸음도 떼지 못했다는 지적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00년대 들어 온라인게임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게임 아이템, 게임머니 등을 거래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아이템깡’으로 불리는 신종 ‘깡’도 등장했다. 특히 최근 들어 게임 내 재화를 현금을 마련하거나 범죄수익 등 불법 자금을 세탁하는데 사용하는 등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예방·방지하기 위한 법과 제도는 아직 걸음도 떼지 못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영국 안보 싱크탱크인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는 ‘온라인게임을 통한 자금세탁’ 보고서를 통해 온라인게임에서 유통되는 아이템·게임머니가 자금세탁에 악용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앞서 사이버 보안 기업 식스길은 지난해 1월 ‘포트나이트’의 게임머니가 범죄수익을 세탁하는 데 사용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불법 자금으로 게임 내 유료 재화를 구매하고, 유료 재화를 다른 이용자에게 판매하는 식으로 세탁하는 것이다. 2018년 7월에는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 크롬테크가 사이버 범죄조직이 도용한 신용카드 정보로 게임 아이템을 대규모로 구매하고 외부 사이트를 통해 현금화하는 것을 찾아내기도 했다.

해외 사례만 있는 것도 아니다. 국내에서도 2000년대 초반부터 지난해까지 게임 재화를 악용했다가 경찰에 검거된 사례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는 게임 아이템 중개사이트에서 고가의 물품을 카드로 결제하고 판매자에게 입금된 마일리지를 일정량 돌려받는 식의 ‘아이템깡’이 문제가 됐다.

2015년에는 인터넷으로 중고물품을 판다고 속여 600여명으로부터 2억원이 넘는 돈을 가로채고 게임 아이템 중개사이트에서 아이템을 구매한 뒤 되팔아 현금화하는 자금세탁을 했던 주범 3명이 구속되고 대포통장을 모집한 사람 등 6명이 불구속 입건된 적도 있었다.

2016년 이후에는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가 떠오르면서 자금세탁에 게임 아이템·게임머니와 암호화폐가 같이 악용됐다. 2016년 3월에는 악성코드로 PC 등을 감염 시켜 금융정보를 빼내 돈을 인출하고, 게임 아이템 중개사이트에서 1차 세탁을 한 뒤 10대의 대포폰과 331개의 유심카드를 이용해 비트코인으로 환전하는 2차 세탁으로 230억원대 부당이득을 챙긴 금융사기 일당 3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지난해 5월에도 전국 사우나와 찜질방을 돌며 잠든 사람의 휴대폰 속 유심을 훔쳐 소액결제로만 1700만원을 가로챈 2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힌 바 있다. 훔친 휴대폰 8대와 유심카드 12개를 이용해 게임 아이템과 상품권을 구입한 뒤 되파는 식이었다.

게임 아이템이나 게임머니를 환전하는 것 자체는 게임사에서 약관으로 금지하는 것이 전부다. 비정상적인 게임 이용으로 얻은 재화를 환전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비정상적인 게임 이용으로 얻은 것이 아닌 게임머니를 환전한 것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판결도 있었다.

2010년 대법원에서 온라인게임 게임머니 현금거래자에 대해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게임법) 위반 혐의를 기각했다. 게임법은 일반 온라인게임의 경우 ‘비정상적인 게임 이용’을 통해 획득한 것을 환전, 환전알선, 재매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문제가 됐던 게임머니가 오토나 매크로 등 자동프로그램 등 비정상적인 게임 이용으로 획득한 것인지 입증이 불충분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이템과 게임머니가 유저 간 거래가 이루어지거나 현금화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 보고서에서는 게임 아이템과 게임머니를 ‘비트코인’ 같은 가상통화와 비슷한 개념으로 보고 게임사에서도 암호화폐 거래소들에 도입이 추진 중인 자금세탁방지·테러자금조달방지(AML·CFT) 제도를 적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우리 정부에서도 자금세탁과 테러자금조달을 방지하기 위해 관계기관으로 구성된 정책협의회 및 TF팀에서 2018년 11월 ‘국가 자금세탁·테러자금조달 위험평가’를 실시하고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국가 자금세탁·테러자금조달 위험평가에서는 게임 아이템이나 게임머니를 ‘가상통화’로 보지 않았다. 자금세탁과 테러자금 측면에서 가상통화란 거래상대방으로 하여금 교환의 매개 또는 가치의 저장 수단으로 보는 것으로, 전자적 방법으로 이전 가능한 증표 또는 그 증표에 관한 정보를 뜻한다.

위험평가 결과에 따르면 가상통화는 거래의 익명성을 등에 업고 범죄수익을 조성하거나 자금세탁 목적으로 악용돼왔다. 위험평가에서 실제 마약 대금 등 불법 자금의 국내 반입이나 수출대금을 과소신고한 후 가상통화로 대금을 지급하는 조세포탈 및 관세법 위반 사례도 발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2018년 더불어민주당의 제윤경 의원, 전재수 의원, 김병욱 의원과 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이 각각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금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특금법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를 통해 각 특금법 개정안을 통합해 위원장 대안으로 의결됐다. 하지만 특금법 개정안은 암호화폐 거래소 신고 의무제 등 암호화폐 업계에 관한 내용이 주였다.

위험평가에서도 ▲화폐·재화·용역 등으로 교환될 수 없는 전자적 증표 또는 이에 관한 정보로서 사용처와 용도를 제한한 것 ▲상품권 ▲게임물의 이용을 통하여 획득한 유·무형의 결과물 ▲선불 전자지급수단과 관련 전자화폐 등은 가상통화 대상에서 제외됐다. 게임 아이템이나 게임머니가 아이템깡이나 자금세탁에 악용되는 사례도 여전히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게임사에 자금세탁방지를 위해 특정 조치를 하라고 요구하기에는 아직 관련 법을 제정하기 위한 논의도 시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임사에 무작정 AML·CFT 제도를 적용하라고 요구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AML·CFT는 주로 금융사에 적용된 제도다. AML 주요 제도로는 ▲금융사가 금융고객과 거래 시 고객의 신원, 실소유자 여부, 거래목적 등을 파악하는 등 합당한 주의를 기울이는 제도인 ‘고객확인제도’ ▲자금세탁과 관련 있다고 판단되는 금융거래에 대해 내역을 금융정보분석원에 보고하는 ‘의심거래보고제도’ ▲하루 2000만원 이상 현금거래시 금융정보분석원에 보고하는 ‘고액현금거래보고제도’ 등이 있다.

암호화폐에 관해서도 지난해 6월이 돼서야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거래소 등 서비스제공자에게 적용할 규제 권고안을 발표했다. 게임에 관한 내용은 아직 논의를 시작하지도 않은 셈이다. 영국 왕립군사합동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게임사는 암호화폐 거래소와 유사한 위치에 서게 되지만 현행 규제는 소비자 보호나 도박 문제 등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게임 아이템 중개사이트에서는 작업장이나 자금세탁 등을 우려해 각종 안전장치를 마련해 둔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1개의 주민등록번호로 1개의 계정을 생성할 수 있는데, 계정당 월 총 ‘거래량’이 1000만원대로 제한된 것으로 전해졌다. 부가가치세법에 따라 분기별로 일정 금액 이상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 중개사이트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외에도 이상거래계정을 모니터링하면서 이용제한 조치를 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9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게임 아이템 판매를 금지한 것은 평등권을 차별한 침해행위라며 중개사이트에 외국인도 내국인과 차별 없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는 권고를 한 바 있다. 문제가 됐던 외국인의 아이템·게임머니 판매 금지는 주로 해외에서 접속하고 불법프로그램을 이용해 게임 아이템이나 게임머니를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일명 ‘작업장’을 막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개사이트를 이용한 자금세탁 등은 중개사이트 자체 제도를 회피하기 위해서도 유출된 개인정보나 대포통장 같은 것을 사용하는 불법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집행검’처럼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도 현금으로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알려진 아이템을 자금세탁이나 탈세 등을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보는 눈이 많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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