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검법, 지난달 30일 국회 과방위 법안소위 합의
인기협 “포털 자유 뺏는 과잉입법”
훈시규정에 과도한 의미부여라는 지적도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실시간 검색어 조작 의혹과 관련해 지난해 9월 5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를 항의 방문하고 한성숙 네이버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은 ‘순위 매기기’의 나라다. 음원 사이트에서 차트에 들기 위한 ‘음원 사재기’ 논란이 끊이지 않듯,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이하 실검) 순위를 두고도 논란이 많았다. 최근에는 실검 조작 논란에 정치권에서는 치열한 공방 끝에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여야가 합의했다. 이에 관련 업계에서는 과잉입법이라며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양측의 주장을 살펴봤다.

9일 국회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이하 인기협)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지난달 30일 법안소위에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합의에 “포털의 자유를 뺏는 과잉입법”이라며 반대 성명서를 냈다.

이른바 ‘실검법’이라고 불리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정보통신서비스 이용자가 부당한 목적으로 단순반복작업을 자동화 처리하는 프로그램(매크로)을 활용해 서비스 조작 금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 규모 이상 사업자는 서비스가 조작되지 않도록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해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당초 야당 측에서 주장했던 사업자와 이용자에 ‘여론형성을 목적으로 매크로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은 합의 과정에서 빠지고 ‘부당한 목적으로 매크로 사용 금지’가 대체됐다. 아울러 사업자 처벌조항 대신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의무가 부과됐다.

실검법에서는 포털 사업자에게 의무의 세부적인 내용이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 처벌하는 조항은 빠졌다. 일반적으로 법률상 의무를 규정하면서 위반에 대한 벌칙 조항이 없는 경우를 ‘훈시규정’이라고 칭한다.

인기협은 지난 3일 성명서를 통해 “실검법이 통과되면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사적 검열을 하도록 만들고 국가의 형벌권을 남용할 우려가 있다”며 “이미 인터넷기업들도 다양한 이용자 어뷰징에 대해 다각도의 대응을 하면서 서비스를 끊임없이 개선하고 있음에도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등에게 관련 의무가 부과된다면 '부당한 목적'이라는 행위자 내심의 의사에 대한 판단 책임을 사법기관이 아닌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결국 사적 검열을 조장하는 일반적 감시의무를 부과하는 것으로, 전체 서비스 이용자에게까지 광범위한 표현의 자유의 억압을 가져올 것”이라며 “현재 논의되고 있는 개정안의 내용은 헌법상 원칙을 위반하고 있어 위헌 소지가 크고 가치중립적 기술을 일방적인 범죄 도구로 낙인찍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 인터넷산업 전반에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실검법은 네이버 댓글을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드루킹 사건’의 영향이라는 분석이 많다. 또 드루킹 사건 외에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네이버 실검 순위 경쟁이 일어나며 야당 측에서 실검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지난해 9월 5일에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네이버 실검 조작 의혹에 항의하기 위해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네이버 본사를 방문한 바 있다. 아울러 토스 행운퀴즈 등 기업의 마케팅 수단으로 네이버 실검이 이용되면서 실검 조작 논란이 심화된 것도 있었다.

인기협이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인기협의 협회장은 한성숙 네이버 대표고, 수석부회장은 여민수 카카오 대표다. 포털사이트에 대한 벌칙 조항이 규정되지 않았다고 해도 법률적 의무가 생기는 것만으로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실검법 여야 합의에 앞서 각각 다른 실검 개편안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훈시규정에 의미를 과하게 부여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일고 있다. 앞서 2018년 9월 정부는 도로교통법을 개정해 자전거 운전자에게 헬멧 착용을 의무화한 바 있다. 개정된 도로교통법 제50조는 3항에서 전기자전거 운전자의 인명보호 장구 착용을, 4항에서 일반자전거 운전자 인명보호 장구 착용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3항에 관한 벌칙조항만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일반자전거 운전자가 헬멧을 착용하지 않더라도 처벌하는 규정이 없어 일반자전거는 단속이나 처벌이 존재하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많았다. 일반자전거 헬멧 착용 의무는 훈시규정이라 실질적인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자전거 운전자 헬멧 착용 의무화 당시에도 반대하는 쪽에서는 자전거 문화 후퇴를 우려한 바 있다.

이번 실검법 논란도 비슷한 상황으로 보인다. 매크로 프로그램이나 타인 개인정보를 이용해 댓글을 달고 실시간 검색어의 순위를 조작하는 등 실검법을 위반할 경우 징역 3년 이하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포털 사업자에게는 의무만 부과되고, 처벌은 없는 비슷한 상황이다. 전기자전거 운전자는 헬멧을 쓰지 않으면 처벌되지만, 똑같이 헬멧을 써야할 의무가 있는 일반자전거 운전자는 단속도 없었고 처벌도 없었다.

경인법무법인 안산분사무소의 김광은 변호사는 “훈시규정 위반이 부적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행정청 내부의 실질적 해석기준으로 작용할 것을 우려해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주장은 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네이버, 카카오 등 대형 포털사이트는 사회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기업이므로, 왜 이러한 훈시규정이 생기게 되었는지에 대한 반성이 먼저 필요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투데이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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