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월급만 빼 놓고 모든 게 다 오른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새해 벽두부터 면·콜라에 이어 커피까지 올라 먹거리 가격 인상이 확산되었고 전기료까지 들썩이는데, 여기에 보험사들이 자동차 보험료 인상으로 소비자를 곤혹스럽게 했고, 이어 실손보험료 인상도 예고했다. 이것도 모자라 조만간 예정이율 인하로 보장성보험의 보험료도 인상될 예정이라고 한다. 갈수록 보험료가 줄줄이 인상되므로 서민들의 가계 부담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자동차보험료 인상이다.

지난해 보험사들이 자동차보험료를 두 번 인상해서 황당했는데, 올 1월에 자동차 보험료가 3.8%(보험사별 3.5%~3.9%) 인상될 예정이다. 자동차보험은 강제보험이므로 소비자들에게 큰 부담이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자동차보험의 누적 평균손해율이 96.4%로 적정손해율 77~78%에 비해 높다는 것이고, 자동차보험의 적자가 1조5000억원에 달한다는 것이다. 업계는 당초에 최저 인상율로 5%를 요구했지만, 금융당국이 제도 개선에 따른 인하효과를 반영해 1.2%를 낮춘 수준으로 인상하기로 협의를 마쳤다는 것이다.

그동안 보험사들은 과잉 수리비, 정비업체 공임 인상, 홍수와 태풍 피해로 인해 손해율이 높아졌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실제로 과잉 수리비가 얼마였고 공임 인상이 얼마나 됐으며 홍수, 태풍으로 손해율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사업비를 얼마나 적정하게 사용했는지 등 손해율 악화의 원인에 대해 가입자들에게 소상하게 알려 준 적이 없다.

자동차 보험료 인상은 돈 내는 가입자들의 사정과 상관없이 보험사들이 마음먹은 대로 손해율 악화를 언론사에 흘리며 보험료 인상의 필요성을 알려 왔고 여론의 눈치를 살피며 보험료를 인상해 왔다. 보험료 인상의 원인을 사전에 제거하려는 노력은 뚜렷이 보이지 않았고 보험사들의 자구노력(조직 슬림화, 임금 동결이나 삭감, 주주배당 삭감 등)도 크게 보이지 않았다.

둘째, 실손보험료 인상이다.

실손보험의 보험료의 인상폭이 장난이 아니다. 보험료가 사실상 두 자릿수로 인상되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보험사들은 당초 15∼20% 정도 인상하려고 했으나 금융당국의 인상률 완화 압박에 한 자릿수 인상률(평균 9% 내외)로 낮췄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 실손(2009년 10월 이전 가입자로 1005만건)과 표준화 실손보험(2009년 10월~2017년 3월 가입자로 2140만건)의 보험료는 평균 9%에서 10%대로 오르며 일부 고객은 10%를 넘어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실손보험 손해율은 129.1%로 전년 동기 대비 20%포인트 증가했다는 것이다. 13개 손보사의 지난해 상반기 실손보험의 적자액은 1조3억원에 달했고, 이 추세라면 1년간 적자가 1조9000억원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다만, 신 실손보험(2017년 4월 이후 가입자로 7%)은 거꾸로 보험료가 1%가량 내린다고 한다.

신 실손보험은 판매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험금 청구가 적은 데다 상품도 도수치료, 비급여 주사, 비급여 MRI 등을 특약으로 분리해서 보험료를 일부 낮췄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장내용이 기존 실손에 비해 줄었으니 ‘착한 보험’이란 말이 무색하다. 그나마 아직까지는 손해율이 낮다고 하는데, 향후에도 그럴 것인지 장담할 수 없다.

이 경우 구 실손과 표준화 실손보험의 가입자들은 보험료가 내린다는 신 실손보험으로 갈아타기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신 실손보험은 보험료 부담이 적지만 상대적으로 보장이 적고 자기부담금이 높기 때문이다. 평소에 도수치료 등 비급여의 치료를 많이 받는다면 보장혜택이 줄어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다. 구 실손은 자기부담금이 없고 표준화 실손도 자기부담금이 10%인데, 신 실손보험은 기본계약 치료비의 20%, 비급여특약은 30%를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실손보험을 가입하는 주된 목적은 비급여 항목의 비용을 줄이기 위한 것인데, 신 실손은 비급여를 멀리 하도록 설계된 보험이다. 보장혜택을 스스로 포기하면서 신 실손으로 갈아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보험사들이 매년 손해율 악화라며 보험료 인상만 반복할 뿐 손해율 악화의 원인 제거는 게을리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당국도 마찬가지다.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만 열심히 하며 ‘사후약방문’만 할 뿐, 밑 빠진 독을 막으려는 ‘사전약방문’은 뚜렷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보험사들이 언론사에 흘린 손해율(129.1%)은 사업비를 제외한 것으로 사업비를 포함한 합산손해율(119%) 보다 크게 부풀려 졌다고 한다.

보험사들은 손해율 악화를 주장하며 보험료 인상에만 몰두할 뿐, 보험사들은 손해율 악화의 구체적인 원인과 산출결과를 가입자들에게 사실대로 알린 적이 없다. 본업인 양질 계약 인수 실패로 벌어진 잘못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보험사들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인데 돈 내는 주인(가입자)에게 죄송하다는 사과는 없고 자구노력도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셋째, 보장성보험료 인상이다.

국내 기준금리는 최근에 사상 최저로 내려갔다. 한국은행은 지난해에만 기준금리를 두 차례 인하하며 1.25%로 하향 조정했다. 이에 따라 보험사들이 올 해 1분기에 예정이율 인하를 계획하고 있다는데, 예정이율이 0.25% 포인트 낮아지면 보험료는 통상 7~8%가 올라간다.

보험료가 인상되면 소비자들의 신규 가입이 감소하므로 보험사들은 “보험료가 저렴할 때 가입하는 것이 유리하다”며 절판마케팅을 벌이며 가입을 부추기고, 이에 성질이 급한 소비자들은 서둘러 가입해서 화(손해)를 입는다. 보험사 상술에 휘둘려 섣불리 가입한 후 실효를 시키거나 중도에 해지하기 때문이다.

생보사의 주력상품인 종신보험은 가입 후 5년 지나면 절반만 유지되고 절반은 손해를 본다. 10년이 지나면 36%만 유지되므로 64%는 이미 손해를 본 것이다. 20년, 30년 경과 시 유지율은 말하기조차 부끄러워 공개조차 하지 않는다. 결국 보험료가 조금 싸고 비싸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꼭 필요한 보험인지. 가입 목적에 적합한 보험인지,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 적정한 보험료인지 따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중도 해지할 보험이면 당초부터 가입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자동차보험은 의무보험이고 실손보험은 제2의 국민건강보험이라 불리고 있으므로 준조세의 성격을 가지며 공공재의 성격이 강하다. 당국이 보험료 인상을 억제하는 이유이고 그러기 위해 보험사와 합심 협력해서 실제로 성과를 내야 한다.

보험사와 당국이 먼저 해야 할 일은 ‘사후약방문’(보험료 인상)이 아니라 ‘사전약방문’이다. 즉, 자동차보험의 과잉 수리를 억제하고 공임 인상을 억제하는 방법에 집중해야 하고 자동차보험 사기도 계속해서 강력히 근절해야 한다.

실손보험에서는 의료기관의 비급여 과잉 진료와 가입자의 의료 쇼핑을 줄여 보험금 누수를 방지해야 한다. 보험료 차등제도 도입해서 보험금 수령 실적에 따라 보험료를 공평하게 차등 부과해야 한다. 병원에 가지 않은 사람이 간 사람들로 인해 발생한 과잉진료비를 계속 대주는 것은 불공정한 것이다. 또한 소액보험금을 보험금 지급대상에서 제외하도록 약관을 변경해야 한다. 보험은 몇 천원, 몇 만원 짜리 소액보험금을 타려고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암, 교통사고 등과 같이 한 번 걸리면 고액의 치료비가 필요한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소액보험금은 얼마든지 생활비로 충당할 수 있다. 상기 두 가지 내용은 필자가 오래 전부터 계속 주장해 온 것으로 보험료 인하효과를 거둘 수 있고 간편 청구 논란도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3년 전에 ‘보험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로드맵’을 발표(2016.10.16)해서 “보험사들의 자율적인 경쟁을 통해서 소비자 편익(便益)을 제고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그러나 보험료 인하는 실종되었고 소비자에게 실효성 있는 상품은 갈수록 찾아보기 어렵다.

경제·금융정책 수장과 금융업권별 수장 등 많은 인사들이 지난 3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0 범금융 신년 인사회’에 참석했다고 한다. 그러나 금융의 주인인 소비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보험사 수장들은 올해도 신년사에서 질적 성장과 디지털 혁신을 화두로 내세우며 고객 중심의 경영, 소비자 신뢰를 언급했다. 의례적인 립 서비스가 아니기를 기대한다.

보험은 상부상조의 제도이고 가입자를 위한 제도이므로 모든 의사결정과 판단의 기준은 보험사가 아니라 소비자의 편익이 되어야 한다. 보험사와 금융당국은 소비자 편익을 위하여 손해율이 제대로 책정되었고 적절한 것인지 제대로 살펴야 하고,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아울러 손해율 악화의 원인을 제거하는 일에 집중해서 보험료 인상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 그래야 보험사들은 소비자가 내는 보험료로 월급 받을 자격이 있고, 금융당국은 국민(소비자)들이 내는 혈세로 월급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오세헌 보험소비자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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