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변인호 기자

2019년 12월 18일 넥슨 왓스튜디오에서 개발한 ‘야생의 땅: 듀랑고(이하 듀랑고)’가 서비스를 종료했다. 2018년 1월 서비스를 시작해 2018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 최우수상(국무총리상)을 받았던 듀랑고는 ‘전례 없던 신선한 게임’이었다. 화제는 많이 됐지만, 큰돈이 되는 게임은 아니었다. 유저들은 듀랑고라는 가상세계 안에서 농사를 짓거나 낚시를 하고, 집을 지었다. 유저들의 집이 모여 마을이 되고,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넥슨은 듀랑고 서비스 종료를 결정한 이후 전례 없는 행보를 보였다. 지난달 4일 듀랑고에는 개인섬 기록하기 기능과 오프라인 기능 등이 추가됐다. 넥슨은 서비스가 종료된 이후에도 클라이언트만 있다면 계속 듀랑고를 플레이할 수 있게 했다. 모바일게임에서 오프라인 모드를 추가해 서비스 종료 후에도 플레이할 수 있게 한 것은 듀랑고가 첫 사례로 꼽힌다. 이은석 총괄 PD와 양승명 PD는 PC에서도 듀랑고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면서 서비스 종료 발표 후에도 유저들에게 감사 인사를 계속해서 전했다.

‘예언자’의 작가 칼릴 지브란은 “추억이란 희망의 길에서 만나는 돌멩이와 같다. 추억이 있기에 길을 걷다가 넘어지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대규모 다중사용자 온라인이라는 뜻의 MMO(Massively Multiplayer Onlie) 게임에서는 유저들이 다른 유저들과 부대끼면서 게임사에서 마련한 가상세계 안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경험을 공유한다. 경험을 공유했던 기억에는 플레이하면서 느낀 감정이 더해져 추억이 되고, 인생의 단편으로 자리 잡는다.

넥슨은 그냥 서비스를 종료하는 것이 아니라 유저들이 듀랑고를 2년가량 플레이하며 쌓아온 추억을 지키는 방법을 선택했다. MMO 게임을 하면서 축적된 추억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다. 다른 누군가와 함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의 즐거움은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도 있던 것이다. 이제는 MMO 게임 등을 통해 이름도, 얼굴도, 나이도 모르는 사람하고도 추억을 공유할 수 있게 됐을 뿐이다. 이렇게 된 지도 꽤 됐다. ‘라그나로크 온라인’ 같은 MMO 게임에서 만난 커플이 실제 결혼으로 이어져 뉴스가 됐던 것도 벌써 10년이 넘은 일이다.

게임을 통한 아버지와 아들의 추억 만들기 모험이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일본에서 게임 블로그를 운영하는 ‘마이디’라는 유저는 평소 게임을 좋아하지만 일 때문에 바빠 제대로 대화도 나누지 못했던 아버지에게 ‘파이널판타지14(이하 파판14)’를 선물했다. 정체를 숨긴 채 아버지와 게임 속 친구가 돼 함께 모험하고, 어려운 레이드를 끝낸 뒤 정체를 밝히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위암 판정을 받았던 아버지와 서먹한 관계를 개선하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겠다는 효도 계획, ‘빛의 아버지’ 계획이었다. 마이디는 블로그를 통해 아버지와 함께 하는 모험을 연재했고, 반응은 뜨거웠다.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 ‘빛의 아버지’는 결국 2017년 일본 마이니치 방송, TBS테레비와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로 제작됐다. 마이디는 일본 인사이드와의 인터뷰에서 “줄곧 엇갈려 왔던 아버지와 자식 간의 관계를 파판14를 통해 새롭게 형성했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넥슨이 듀랑고 서비스 종료에서 보여줬던 행보도 큰 줄기에서 보면 같은 의미다. 유저들은 유저들끼리만 추억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유저들이 게임 안에서 추억을 쌓을 수 있도록 게임사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게임을 기획하고 개발한다. 자기 자식 같은 게임을 유저들에게 선보인 개발진, 운영진들은 안정적인 서비스를 위해 유저들의 원성과 감사를 받으며 고군분투한다. 듀랑고처럼 애정을 쏟아부은 게임일수록 서비스 종료가 결정됐을 때 개발진과 운영진의 가슴은 찢어지는 것 같았으리라고 감히 추측해 본다.

게임은 ‘재미’를 추구하는 놀이수단인 동시에, 추억을 공유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플랫폼이다. 요시다 나오키 스퀘어에닉스 파판14 총괄 PD는 “플레이어 여러분의 캐릭터 데이터나 게임 안의 재산은 단순히 0과 1로 결성된 데이터가 아니라, 추억과 시간과 동료가 담긴 것”이라고 했다. 2016년 파판14 한국 서버에서는 서버통합으로 몇몇 서버의 하우징(집)이 철거되는 일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고작 서버통합으로 인한 집 몇십채 철거였지만, 당시 서버통합으로 집을 잃게 된 많은 한국 파판14 유저들은 실제로 돌아갈 곳을 잃은 사람들처럼 서럽고 원통해 하면서 운영진을 원망했다.

듀랑고의 서비스 종료가 콘텐츠나 비즈니스 모델(BM)이 문제였는지, 수익성이 낮아 ‘선택과 집중’을 하려는 회사의 계획에 따른 것이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마지막 업데이트 같은 각종 패치를 왜 더 일찍 하지 않았는지, 왜 서비스 종료 전에 유저들에게 더 잘해주고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았는지, 왜 있을 때 잘하지 못 했냐고 묻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다만 듀랑고라는 게임이 서비스를 종료한 뒤에도 유저들 마음속에 남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넥슨이라는 게임사가 직접 게임은 게임사 매출을 위한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고 보여줬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넥슨이 듀랑고를 통해 보여줬던 게임에 대한 애정은 그대로 담되, 듀랑고의 전철은 밟지 않을 새로운 게임의 출시다. 한 명의 게이머로서 상품성보다는 게임성에 주목한, 또 누군가의 ‘인생게임’이 될 만한 그런 게임을 기다려 본다.

파이낸셜투데이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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