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유저에게 플레이 동기 유발하고 몰입 도와
영화 보듯 스토리에 집중한 ‘인터랙티브 게임’도 등장
스토리 기반 게임 흥행에 세계관 소멸한 IP 부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게임은 그동안 종합문화예술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기술’과 ‘예술’ 분야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지만, ‘서사’는 상대적으로 등한시됐다. 하지만 최근 지식재산권(IP)의 영향력이 커지며 ‘스토리’로 대표되는 서사가 중요해졌다. 잘 만들어진 스토리는 하나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그 세계관은 ‘원 소스 멀티 유즈(OSMU, One Source-Multi Use)’의 원천이 된다. 스토리가 강력한 힘을 가진 IP의 근원인 셈이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역대 최고의 확장팩’이라는 찬사를 받은 MMORPG ‘파이널판타지14’가 지난 3일 신규 확장팩 ‘칠흑의 반역자’ 출시 이후 12월 1주차 기준 국내 PC방 점유율 3배 상승, 장르 내 점유율 2배 상승, 사용시간 145.1% 증가 등의 성과를 보이고 있다. 칠흑의 반역자는 리뷰 집계 사이트 메타크리틱에서도 ‘MUST-PLAY(최소 15개 이상 전문가 리뷰 점수 평균 90점 이상인 게임)’ 칭호를 받을 만큼 전 세계에서 호평을 받은 확장팩이다. 

칠흑의 반역자는 최근에는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올해의 게임 시상식에서 서비스 게임상(Ongoing Game) 부문 플래티넘 트로피를 수상하기도 했다. 블로그형 게임 매체 디스트럭토이드에서는 칠흑의 반역자에 10점 만점에 9.5점을 주며 “MMO는 이렇게 우아하게 나이를 먹는다. 파이널판타지14는 거의 틀림없이 지금까지 중 최고 상태”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칠흑의 반역자에서는 건브레이커, 무도가 등 신규 직업 2종과 신규 종족 2종, 최고레벨 80레벨로 상향 등 대규모 업데이트와 함께 새로운 스토리가 추가됐다. 하지만 출시 초기에는 전투 분야의 밸런스가 맞지 않았고, ‘희망의 낙원 에덴: 각성편’ 레이드가 추가되기 전까지 PVE 최종 콘텐츠도 토벌전 2종 정도로 적었다. 한국 서버는 5.08 버전으로 한 차례 전투 밸런스가 조정된 버전이 도입됐지만, 여전히 점성술사나 적마도사는 다른 직업만큼의 효율을 내기 위해 유저가 다른 직업을 플레이할 때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만 한다.

이 모든 호평을 이끈 원동력은 ‘스토리’였다는 분석이 많다. 칠흑의 반역자에서는 파이널판타지14가 2013년 세계관을 리부트한 이후 지난 7월 글로벌 서버에 칠흑의 반역자 출시 이전까지 퀘스트를 통해 흩뿌려 둔 각종 복선이 대다수 회수됐다. 매력적인 악역부터 유저를 돕는 조력자들까지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구성됐고, 전문 성우들의 연기는 몰입감을 높였다. 많은 유저가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연출에 감탄할 만큼 스토리를 따라가며 전투하는 장면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썼다.

스토리는 대체적으로 게임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 스토리는 신기술이나 OST, 원화 같이 한 눈에 확 들어오진 않지만, 게임 안에서 다양한 역할을 한다.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 매출 순위 상위권에 대거 포진한 롤플레잉 게임(RPG)을 예로 들면, 롤플레잉이라는 역할극에 유저가 참여하고 몰입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단순히 반복 전투에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특정한 세계관에서 ‘나’라는 유저가 게임에 계속 접속하게 하도록 만드는 ‘동기’가 약하다.

스토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은 게임들은 대부분 다른 유저들과 대결하는 콘텐츠에 집중한다. 다른 사람과 실력을 겨루면서 승부를 가리는 과정에서 승부욕을 자극하는 식이다. 패배했을 경우 ‘이걸 사면 더 강해질 수 있어요! 지금 당장 구매하세요!’ 같은 뜻이 담긴 팝업 창을 띄워 과금을 유도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과 겨루지 않더라도 스토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적의 체력, 방어력 등 능력치를 ‘노가다’라고 불리는 상당한 반복 작업 없이는 깰 수 없도록 해두고 반복 작업 시간을 대폭 단축하는 패키지 상품을 팔기도 한다.

많은 게이머가 ‘과금 유도’라면서 비난하는 이런 비즈니스모델도 스토리가 입혀지면 반응이 달라진다. 한국에서는 넷마블이 서비스하고 있는 모바일 수집형 RPG ‘페이트/그랜드 오더(이하 페그오)’의 경우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같이 싸운 동료뿐 아니라 악역도 유저가 수집할 수 있는 캐릭터로 출시된다. 페그오 유저들은 페그오를 유저가 감격과 감동에 젖어 있을 때 해당 캐릭터 확률업 이벤트가 적용된 뽑기 이벤트 창이 뜨면 스토리에 감동해 눈물을 흘리면서도 유료재화를 결제하고 캐릭터 뽑기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스토리텔링형 과금유도’ 방식이다.

동료일 경우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유저는 그 캐릭터에게 전우애, 동료애를 느끼게 되는데, 한 편의 에피소드를 마무리하면서 그 캐릭터가 유저를 향해 “너와 이별하게 돼 아쉽다. 나도 페그오 세계로 불러줘”라고 하는 식이다. 관련 커뮤니티에서도 ‘어벤져스: 엔드게임’ 같은 스토리를 보고 난 후 아이언맨이나 캡틴아메리카 같은 어벤져스의 주축 멤버 확률업 이벤트를 진행하니 사지 않을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모바일 데이터 및 분석 플랫폼 앱애니에 따르면 페그오는 11월 기준 올 한해 모바일게임 중 소비자 지출이 가장 많았던 게임이다.

최근에는 영화와 게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인터랙티브 게임’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인터랙티브 게임은 특정 상황에서 유저가 고르는 선택지에 따라 게임의 결말이 달라지고, 최종 엔딩도 여러 개 존재한다. 일반적인 영화보다 엔딩까지 도달하는 데 시간은 더 걸리지만, 유저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영상을 감상하고 등장 인물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지난해 PS4 버전으로 출시된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는 안드로이드(인조인간)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잘 짜인 스토리는 게임과 만나 막강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세가가 퍼블리싱하고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가 개발하는 ‘토탈워’ 시리즈는 대체로 특정 역사적 시점을 배경으로 해왔다. 하지만 최근 게임즈 워크샵의 ‘워해머 판타지’ IP를 기반으로 하는 ‘토탈워: 워해머(이하 햄탈워)’나 삼국지를 배경으로 하는 ‘토탈워: 삼국(이하 삼탈워)’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워해머 판타지는 IP를 가지고 있는 게임즈 워크샵이 2014년 멸망시킨 세계관이다. ‘엔드타임’ 이벤트를 겪으며 주요 인물이 대거 사망하고 세계가 소멸하면서 ‘에이지 오브 지그마’로 스토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햄탈워와 더불어 버민타이드 시리즈 같은 게임들이 성공하면서 게임즈 워크샵이 에이지 오브 지그마와는 별개로 워해머 판타지 부활을 선언하기도 했다. 아시아권 최대 IP ‘삼국지’를 배경으로 한 삼탈워는 싱글 플레이가 주력인 게임이지만, 출시 하루 만에 배틀그라운드(PUBG) 뒤를 이어 스팀 동시 접속자 수 16만2592명을 기록하며 3위에 오르기도 했다.

도영임 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초빙교수는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넥슨 아레나에서 열린 2019 게임문화 융합연구 심포지엄에서 “이제 게임이 사회적 언어로 기능하는 시대가 됐으므로 새 언어를 쓰는 창작자와 이용자, 비평가가 서로 교류하는 새 창작의 장이 게임을 통해 더 열리고, 게임의 예술성에 대한 새 지평을 확산했으면 좋겠다”며 “게임 이용자가 게임을 더 원활하게 이해하도록 돕는 비평가가 활동할 길을 열고 기반을 닦아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싱글 플레이가 주가 되는 패키지게임은 사놓고 유저 본인이 원할 때만 플레이해도 되고, 게임사 입장에서도 패키지가 판매됐기 때문에 재방문율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며 “하지만 온라인에서 진행되는 게임은 재방문율이 중요한 ‘서비스’와 마찬가지여서 재방문율에 큰 영향을 미치는 스토리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파이낸셜투데이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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