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자동차 소유자는 자동차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므로 자동차보험료는 준조세와 같다. 여기에 장기 불황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로 소득이 줄고 지출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자동차보험료 인상은 가계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요즘 세간이 시끄러운데, 손보사들이 자동차보험의 손해율이 악화했다며 자동차보험료 인상을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고, 급기야 당국과 정면충돌하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신문과 방송은 손보사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인용, 보도하면서 보험료 인상이 당연한 것처럼 대변인 노릇을 하고 있는데, 정작 보험료 내는 소비자 입장에서 무엇이 잘못됐고 손보사들이 보험료를 인상하기 전에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 살피고 지적하는 기사는 어디에도 없다.

이대로 간다면 소비자 보호는 말뿐이고 선량한 소비자들만 계속해서 보험료 덤터기를 써야 할 판국이다. 도대체 소비자들이 이런 상황을 언제까지 겪어야 하고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 암담하고 답답하다.

보험은 애초부터 가입자를 위한 상호부조의 제도이지 보험사 돈벌이 수익사업이 아니다. 보험사는 계약자들이 낸 보험료를 잘 관리해서 약관에 정한 보험사고가 발생하면 보험금을 차질없이 지급하는 조직이므로 일꾼(머슴)이다. 이를 듣기 좋게 ‘계약자 자산의 선량한 관리자’라고 부른다. 계약자가 주인이고 보험사는 머슴이므로 보험은 시작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소비자 중심이어야 한다. 아무리 영리를 추구하는 주식회사라 하더라도 정도와 분수가 있어야 하고, 이에 대하여 아무도 반박할 수 없다.

그런데 해가 바뀌면 손보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동차보험료를 크게 인상해서 소비자들의 속을 뒤집어 놓는다. 더구나 올해에는 손보사들이 자동차보험료를 이미 2차례 인상했고 이것도 부족하다며 한 차례 더 인상하려다 여론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중단했다.

손보사들은 새해에 보험료를 인상하기 위하여 최근 들어 “한방진료비 급증, 정비 요금 인상 등으로 자동차보험의 손해율이 100%를 넘었고 올 10월까지 영업적자가 1조400억원에 달했다”고 주장한다. 일부 손보사는 “자동차보험은 팔수록 손해”라며 징징거린다. 그래서 새해 1월에 3.8% 수준으로 보험료를 인상할 예정이라고 한다.

자동차보험의 손해율이 악화해 손보사들이 보험료를 인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보험료는 수지상등의 원칙(수입보험료와 지급보험금이 일치되도록 보험료를 책정하는 원칙)에 따라 책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리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더라도 손보사들의 보험료 인상 행태가 보험료를 내는 주인(소비자)에게 밉상이고 불쾌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이다. 손보사들이 소비자의 알 권리를 무시, 외면한 채 소비자를 푸대접해 왔기 때문인데, 시급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

첫째, 손해율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손보사들은 매번 손해율 악화를 이유로 보험료를 인상했지만, 실제 그런지 의구심이 든다. 어떤 손보사도 손해율이 어떤 이유로 얼마나 악화했는지 소비자들에게 구체적이고 납득할 내용을 밝힌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보험료는 소비자가 부담하므로 그 이유를 당연히 알아야 하는데, 손보사는 해당 내용을 보험료 인상 전에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린 적이 없다.

자동차보험료 인상 전에 요율 검증을 담당하는 보험개발원도 소비자들에게 손보사별 손해율을 공시하거나 발표한 적이 없다. 모든 일이 그들끼리 밀실에서 처리될 뿐, 검증 과정과 결과를 소비자들에게 소상하고 투명하게 공개한 적이 없고 당국도 이에 대해 잘못을 지적하거나 고치려고 시도한 적도 없다. 손보사들은 보험료 인상 후 회사 홈페이지에 손해율을 슬그머니 공시하는 것이 전부다. 이처럼 손보사들은 자신들을 먹여 살리는 주인(소비자)에 대하여 홀대, 외면해 왔고 이런 행태는 지금도 관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둘째, 불공정하기 때문이다. 손해율 악화는 손보사 책임으로, 손보사가 보험료 책정 시 안정성, 충분성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한 과실이고, 위험 인수 실패로 불량 계약이 다수 유입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보험사의 본업은 위험 인수이고 양질 계약 확보를 통해 이익을 남기는 것인데, 위험 인수 실패를 소비자에게 태연하게 전가하기 때문에 불공정한 것이다.

손보사들은 위험 인수 실패를 감추고 오로지 외부 요인 때문이라고 물타기 하며 자신들의 책임을 한 번도 솔직하게 인정한 적이 없다. 정직한 손보사라면 위험 인수 실패의 책임을 일부라도 인정해서 해당 부분 만큼 뼈를 깎는 긴축과 자구 노력(인력 구조 조정, 사업비 절감, 월급 및 상여금 삭감, 주주 배당 중지 등)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모자라는 부분만 가입자들에게 사전 양해를 구한 후 보험료 인상으로 진행하는 것이 옳다. 이런 당연하고 기초적인 의무를 망각한 채 성과급 잔치, 배당 잔치를 벌이며 보험료 인상으로 손보사의 책임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하는 것은 누가 봐도 잘못이다.

셋째, 손보사들이 보험료를 일방적으로 인상하기 때문이다. 보험료는 소비자(보험계약자)가 부담하므로 당연히 소비자가 알아야 하고 소비자 중심으로 책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손보사들은 한 번도 소비자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보험료만 일방적으로 인상해 왔다. 그러므로 소비자들은 심기가 불편하고 화를 내는 것이다. 머슴들이 자기 배를 먼저 채우기 위해 주인에게 생떼를 쓰며 겁박하는 것과 같은 형국이므로 주객이 전도되었다.

넷째, 부끄러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보험료 인상은 보험사가 책임과 의무를 소홀(태만)히 한 결과이므로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할 경우 주인에게 최소한의 예의와 도리를 다해야 한다. 보험사 CEO가 기자회견을 자청하거나 보도자료를 통해 “보험료 인상으로 심려를 끼쳐 부끄럽고 죄송하다”며 관련 내용을 소상히 알리고 양해를 구했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손보사도 행한 적이 없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인 CEO도 없다. 물론 당국도 손보사들에 이렇게 하도록 지시하거나 조치한 적도 없다.

다섯째, 당국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자를 보호해야 할 금감원, 금융위는 보이지 않는다. 금감원은 손보사들의 일방적인 보험료 인상에 대하여 어떤 조치를 했는지 발표한 내용이 없다. 금융위도 ‘국민에게 부담을 줄 수 없다’며 손보사들을 압박하고 있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다. 금융위는 ‘보험산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2015.10.16)을 통해서 보험사 간 자율 경쟁으로 소비자 편익을 제고하겠다고 호들갑 떨었지만, 보험료 인하는 이미 오래전에 실종되었다. 결국 보험료 인하 없이 보험사들에 규제만 완화해 준 꼴이 되었다.

여섯째, 언론플레이를 하기 때문이다. 손보사들은 보험료 인상 전에 언론사에 정보를 흘려 여론의 눈치를 살피고 간을 보며 물타기를 해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떤 손보사도 기자회견이나 보도자료를 통해 소비자에게 보험료 인상의 필요성을 직접 설명하고 해당 근거 자료를 제시한 적이 없다. 손보사들이 소비자를 주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증거다. 보험료를 내는 소비자들은 주인이면서도 가입한 손보사가 아니라 신문 기사를 통해 관련 내용을 접하고 있으니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상부상조의 보험이 괴물(기피상품)로 전락된 채 주인인 소비자들이 홀대받으며 ‘호갱님’으로 전락해 보험이 가입자가 아닌 보험사 먹여 살리는 도구로 전락한 형국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하다. 당국은 소비자 보호를 입으로만 외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본다.

“이문을 남기는 것은 작은 장사요, 사람을 남기는 것은 큰 장사다.”라는 조선 시대 거상 임상옥 (1779년~1855년)의 말이 있다. 보험은 가입자를 위한 상부상조의 제도이므로 가입자를 위해 운영되어야 한다. 보험사가 주인으로 착각해서 가입자들에게 갑질하며 보험료를 일방적으로 인상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행여 보험료를 불가피하게 인상하더라도 주인에 대한 기본 예의와 도리를 지켜야 한다. 계약자가 낸 보험료 덕분에 먹고 사는 손보사임을 아는 손보사라면 잘못된 행태를 각성해서 바로 고치라는 얘기다. 또한 당국도 누구를 위해서 일해야 하고 존재하는지를 각성해서 이름값을 해야 하고 소비자를 위해 제대로 일해야 한다는 얘기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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