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노예’ 면치 못하는 乙들…불공정 계약 방지하려면?
‘현대판 노예’ 면치 못하는 乙들…불공정 계약 방지하려면?
  • 변인호 기자
  • 승인 2019.12.11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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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임단 그리핀 선수들이 LCK 서머 스플릿 경기를 진행하는 모습. 사진=라이엇 게임즈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임단 그리핀 선수들이 LCK 서머 스플릿 경기를 진행하는 모습. 사진=라이엇 게임즈

e스포츠, 연예계 등 기존 산업군부터 유튜버 같은 신흥 업종에서도 ‘현대판 노예계약’ 문제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특히 최근 e스포츠 업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성년 프로게이머 노예계약’ 사건의 경우 국회의원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일단 해결됐지만, 원인은 아직 치료 전이다. 일각에서는 e스포츠 산업이 20주년을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기본적인 인권 보호를 등한시했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미성년 프로게이머 노예계약 사건, 일명 ‘카나비 사태’로 불리는 이번 사건은 올 하반기 e스포츠 업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카나비 사태는 프로게임단 ‘그리핀’이 ‘cvMax’ 김대호 전 감독을 경질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대호 전 그리핀 감독은 그리핀을 라이엇 게임즈가 개발 및 서비스하는 온라인 MOBA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의 세미프로리그(2부 리그)인 ‘챌린저스 코리아’부터 1부인 프로리그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에 승격시키고, 그리핀의 LCK 준우승 3회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LoL e스포츠 최대 규모로 펼쳐지는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을 앞두고 김대호 전 감독은 경질됐고, 경질 이유를 두고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그러던 중 김 전 감독이 개인방송을 통해 “그리핀의 ‘카나비’ 서진혁 선수가 조규남 전 그리핀 대표의 강압·협박에 의해 중국 징동게이밍(JDG)와 이적계약을 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조규남 대표가 이적료 10억원을 챙겼다”고 주장했다.

이후 언론 보도 및 라이엇 게임즈와 한국e스포츠협회(KeSPA)의 사실 조사 등을 통해 ‘업계 관행’이라는 미명 아래 프로게이머 선수들의 권익이 현저하게 침해당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서진혁 선수의 경우 김 전 감독의 폭로 내용이 상당 부분 사실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일보 단독보도에 따르면 그리핀이 서진혁 선수와 체결한 계약서에는 ‘상당기간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 5000만원의 위약벌을 지급해야 한다’ 등의 선수권익침해조항이 포함됐다. 서진혁 선수의 계약서상 연봉은 2040만원이었다.

이와 관련해 스틸에잇은 “스틸에잇과 팀 그리핀은 최근 선수들과 불공정한 계약을 맺었고, 팀의 권위를 악용해 선수들의 권리를 침해하며, 부당한 위력과 권리를 행사한다는 따끔한 질책을 받아왔다”며 “저희는 잘못된 계약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스틸에잇과 팀 그리핀은 이번에 발생한 모든 문제를 직시하겠다. 올바른 방향으로 정도를 걷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해명했다.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와 KeSPA도 ‘제2의 카나비 사태’를 막기 위한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박준규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 대표는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e스포츠 선수 권익 보호와 불공정 계약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마련 토론회’에서 ▲선수 및 코치 계약서 전문 제출 의무화 ▲LCK 표준계약서 도입 ▲미성년 선수 계약 관련 변동 사항 발생 시 법정 대리인 사전 동의 의무화 ▲프로팀 연습생 실태조사 ▲불공정 계약 및 부당 처우 상담·신고할 수 있는 민원 창구 개설 ▲선수 전용 무료 법률 검토 서비스 창구 개설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조치는 근본적인 원인치료가 아닌 증상치료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그동안 관행이라는 이유로 다양한 업종에서 노예계약 문제는 꾸준히 발생해왔다. 주로 평균 연령층이 낮은 연예계에서 연예기획사 연습생에 대한 노예계약 관행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던 바 있다. 최근에는 CJ ENM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PD 등이 데뷔를 담보로 ‘현대판 노예’를 양산한 일도 있었다. 신흥업종인 유튜버도 기획사와 노예계약을 체결했던 일이 보도되기도 했다. 연예인 노예계약 논란이 있던 2009년 공정거래위원회가 표준계약서를 만들었지만, 신종직업인 유튜버는 표준계약서가 없었다.

국민일보 보도에 앞서 조규남 전 대표는 스포츠조선 단독 인터뷰를 통해 “나와 면담을 갖기 전 서진혁 선수가 JDG와 4년 계약 및 연봉협상을 마친 상태였다. 선수가 직접 계약을 체결하면 안 된다는 내용으로 주의를 줬는데 본인이 직접 계약서에 사인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템퍼링(계약 기간이 남아 있거나 특정 팀에 우선 접촉권이 있는 선수와의 비밀 협상)이라 생각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카나비 사태의 경우, 원칙적으로는 우리 민법 제5조 1항에 따라 2019년 현재 법적 미성년자인 서진혁 선수의 친권자 동의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국민일보 단독보도에 따르면 서진혁 선수의 모친 이모씨는 김 전 감독의 폭로 방송을 보고 아들의 중국 이적을 알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핀은 JDG 이적과 관련해 단 한 번도 모친과 사전 상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카나비 사태 같은 불공정 계약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계약을 체결할 때 꼼꼼하게 봐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다. 경인법무법인 안산분사무소의 김광은 변호사에 따르면 당사자 양쪽의 합의가 있는 때에만 성립되는 ‘쌍방계약’은 크게 ▲정의규정 ▲권리규정 ▲관리규정으로 구성된다. 정의규정에서는 용어를 구체적으로 정해 향후 분쟁을 막아야 한다. 권리규정에서는 당사자의 권리·의무를 명확하게 해 불이행이 있는 경우 소송 등의 분쟁해결절차를 통한 강제이행 또는 손해배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관리규정에서는 계약의 이전에 관한 사항 등 체결한 계약의 관리방법을 정하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

김 변호사는 “프로게이머의 불공정계약 사례를 대표하는 소위 카나비 사건은 미성년자와 어른, 또는 프로게이머와 프로게임단이라는 당사자 간 힘의 불균형이 어떻게 계약의 내용으로 녹아드는지 보여주고 있다”며 “한번 계약이 체결되면 법적 구속력이 발생하게 되므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체결하는 계약은 약관을 통해 정해진 방식에 따르면 별 문제가 없지만, 중요한 계약을 체결할 때에는 계약당사자의 이익을 정확하게 대변할 수 있는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파이낸셜투데이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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