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규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 대표가 12월 9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e스포츠 선수 권익 보호와 불공정 계약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마련 토론회’에서 선수 권익 보호 미흡을 사과하고 있다. 사진=변인호 기자

“라이엇 게임즈가 제3자라고 하더라도 리그 운영 주체로서 사전에 제대로 관리·감독했어야 했는데 미흡했고, 올바른 정보와 법률적 조언을 필요로 하는 선수들이 기댈 곳도 없었다. 앞으로 선수 권익 향상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

박준규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 대표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현대판 노예계약’ 논란이 불거졌던 ‘카나비 사태’가 생긴 것을 사과했다. 이날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는 ‘e스포츠 선수 권익 보호와 불공정 계약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마련 토론회’가 진행됐다.

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 하태경 ‘변화와 혁신’ 창당준비위원장, 한국e스포츠협회(KeSPA)가 주최한 이번 토론회에는 하태경 창당준비위원장, 이동섭 의원, 오신환 ‘변화와 혁신’ 2040 특별위원장, 박승범 문화체육관광부 과장, 김철학 KeSPA 사무총장, 김훈기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 사무총장, 조영희 LAB 파트너스 변호사 등이 참석했다.

‘카나비 사태’는 지난 2월 라이엇 게임즈가 개발 및 서비스하는 온라인 MOBA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 프로게이머 ‘카나비’ 서진혁 선수가 LoL 프로게임단 그리핀과 계약을 체결하는 부분부터 시작됐다.

그리핀은 5월 서진혁 선수를 중국 징동게이밍(JDG)에 임대하기로 했다. ‘선수 임대’는 팀이 선수의 소속은 유지한 채 다른 팀에서 경기를 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징동게이밍으로 이적된 것은 약 1년6개월이었다. 이 과정에서 징동게이밍은 서진혁 선수의 완전이적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 10월 그리핀과 계약을 종료한 ‘cvMaX’ 김대호 전 그리핀 감독이 인터넷 개인방송을 통해 “그리핀이 9월 서진혁 선수에게 징동게이밍과 3년 이상 장기 계약을 맺을 것을 요구했고, 그 과정에서 조규남 전 그리핀 대표가 서진혁 선수에게 강압·협박을 했다”고 주장했다. 2000년 출생인 ‘카나비’ 서진혁은 올해 민법상 미성년자에 해당한다.

당시 김 전 감독은 “그리핀 2군 선수들은 1군 선수들이 먹다 남은 음식만 먹는다”며 “‘카나비’ 서진혁이 조규남 대표의 강압과 협박에 의해 징동게이밍과 계약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조규남 대표가 이적료 10억원을 챙겼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김 전 감독의 폭로는 점차 ‘카나비 사태’로 확대됐다. 이동섭 의원과 하태경 의원이 다방면으로 서진혁 선수를 지원하면서 결과적으로 서진혁 선수는 그리핀에서 FA로 풀려 징동게이밍에 정식으로 이적했다.

이에 관해 박준규 대표는 “그리핀 징계를 발표한 당일 선수에게 불리한 규정이 담긴 불공정계약서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는데, 라이엇 게임즈는 보도 전까지 불공정 계약서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며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다.

박준규 대표에 따르면 그리핀은 서진혁 선수의 징동게이밍 이적 과정에서 다수의 규정을 위반했다. 먼저 LoL 프로리그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리그(LCK)’에서는 선수들의 직업 선택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최장계약기간을 3년으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그리핀은 서진혁 선수가 징동게이밍에 임대이적한 기간인 1년6개월을 이적 이후 계약 기간인 3년에 산입하지 않았다. 사실상 4년 이상의 장기계약인 셈이다.

또 그리핀은 당시 미성년자였던 서진혁 선수 이적 과정에서 법정대리인인 서진혁 선수의 부모에게 계약 내용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박준규 대표에 따르면 라이엇 게임즈는 김대호 전 감독의 폭로대로 조규남 전 그리핀 대표가 서진혁 선수를 강압·협박해서 이적을 추진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난주 조 전 대표를 검찰에 고발했다.

그뿐만 아니라 언론을 통해 그리핀이 선수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독소조항이 담긴 불공정 계약을 체결해온 것이 보도됐다. 박 대표는 “그리핀은 사실과 다른 허위 자료를 제출해서 리그가 계약서를 파악할 수 없도록 했다”며 “선수 계약서 요약표를 제출하면서 14개 문항에 선수와 대표가 함께 대답하고 서명하게 되어 있는데, 서진혁 선수는 실제 계약서와 다르게 표기돼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라이엇 게임즈는 기존 징계에 더해 그리핀에 ‘조건부 시드권 박탈’이라는 추가 징계를 부과했다.

박 대표는 “매끄럽지 못한 운영으로 LCK와 LoL e스포츠를 아껴주시는 많은 분께 실망을 안겼다. 죄송하다. 라이엇은 앞으로 선수 권익침해 같은 문제가 없도록 만전을 기하고 공지문을 통해 발표했던 후속 조치를 충실히 이행할 것을 약속드린다”며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저희 라이엇은 LoL e스포츠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를 지원하고 보호하는 데 소홀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아울러 박 대표는 “e스포츠는 연령대가 다른 스포츠보다 어리고 미성년 선수도 많지만, 이들을 구제하는 장치는 적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제3자라고 하더라도 리그 운영 주체로서 사전에 제대로 관리·감독했어야 했는데 미흡했고, 올바른 정보와 법률적 조언을 필요로 하는 선수들이 기댈 곳도 없었다. 앞으로 선수 권익 향상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현재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와 KeSPA는 ‘카나비 사태’ 유사 사례 재발방지를 위해 다양한 후속 조치를 마련하고 있다. 우선 ▲선수 및 코치 계약서 전문 제출 의무화 ▲계약 체결 시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 마련 ▲LCK부터 세미프로리그 ‘LoL 챌린저스 코리아’까지 전 팀 계약서 선수 권익 해치는 조항 없는지 외부 로펌 의뢰해 전수조사 실시 ▲2020년 1분기까지 제3의 외부법률자문기관 검증을 받은 LCK 표준계약서 마련 등 ‘을(乙)’ 보호를 강화한다.

또 ▲미성년 선수 계약 체결 시 사전 고지 의무화 ▲미성년 선수 계약 관련 변동 사항 발생 시 법정 대리인 사전 동의 의무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미성년 선수 별도 관리 시스템 마련 ▲미성년 선수 및 보호자 대상 계약 체결 관련 교육 진행 등 미성년자 보호 강도를 대폭 높일 예정이다. 이외에도 카나비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프로팀 관계자 에이전트 사업 금지 ▲선수 에이전트 계약 체결 여부 전수조사 등을 실시할 방침이다.

아울러 현재 2000만원인 선수 최저연봉도 인상을 검토한다. 박준규 대표에 따르면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는 2015년부터 선수 권익을 위해 선수 최저 연봉 연 2000만원을 팀당 5명까지 지원해왔다.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는 이번에 선수 처우 개선을 위해 LCK팀들과 협의를 진행할 방침이다. 프로게임단 연습생 실태 조사도 실시해 필요 시 추가 조치 여부도 검토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선수 본인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할 때 상담·신고할 수 있는 민원 창구와 선수 전용 무료 법률 검토 서비스 창구도 2020년 1분기 안에 개설된다.

박 대표는 “막중한 책임과 팬들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여러 면에서 미흡했던 점을 뼈저리게 반성한다”며 “저희가 약속드린 후속조치를 충실하게 이행하면서 선수권익을 최우선으로 삼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밝혔다.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와 함께 LCK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KeSPA의 김철학 사무총장은 “e스포츠를 사랑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저를 비롯한 한국e스포츠협회 모든 임직원은 e스포츠 균형 발전과 저변 확대를 위해 그간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선수 권익 보호에 있어 많은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계기로 협회가 선수 중심의 맡은 바 소임을 다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유사 사례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이동섭 의원실의 이도경 비서관은 토론회에서 “현재 e스포츠 진흥 실제 실행기관으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있는데,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매년 발간하는 실태조사 보고서 외에는 한 일이 전무하다”며 “제가 의원님과 상의해서 현재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게임과 e스포츠 분야를 빼내 별도 기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어 “과거 저희 의원실에서 의견을 종합해보니 e스포츠는 별도 기구를 만들어서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 별도 기구 설립을 위한 법조문까지 완성했지만 기획재정부 반대가 있어 발의를 못 하고 있는데, 설득은 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이런 시스템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파이낸셜투데이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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