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현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정책관이 11월 2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전날 진행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의 조건부 연기 결정에 따른 통상당국 간 수출규제 관련 과장급 대화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일 정부가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조건부로 연기하고, 수출규제 논의를 위한 대화에 돌입했다. 최근 ‘종료 유예’가 된 경위를 두고 양국 정부 간 공방이 진행되고 있어 수출규제로 인해 발생한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불확실성이 해소됐다고 보긴 어렵다는 지적과 함께 일각에서는 당정청의 육성 의지가 커 어느 정도 해소됐다는 의견이 모두 나오고 있다.

◆ 지소미아는 종료 유예, 수출규제 논의는 진행 중

앞서 김유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은 22일 “우리 정부는 언제든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의 효력을 종료시킬 수 있다는 전제 하에 2019년 8월 23일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시키기로 했으며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한 이해를 표했다”며 “한일 간 수출관리정책 대화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동안 일본 측의 3개 품목 수출규제에 대한 WTO 제소 절차를 정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일본은 지소미아 종료 유예를 자신들의 외교 성과라고 자국 내 선전 중이다. 24일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소미아 종료 유예 직후 “일본은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다”며 “미국이 강해 한국이 포기했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에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진행 중인 부산 벡스코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소미아 종료, WTO 제소 절차 중지는 모두 조건부고 잠정적인 것”이라며 “앞으로는 모두 일본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이후 청와대는 일본이 지소미아 종료 유예 과정 합의를 사실과 다르게 발표해 항의하고 사과를 받았다고 발표했지만, 요미우리 신문 등을 통해 일본 경제산업성이 일본이 한국 정부에 사과했다는 것을 부인했다고 보도됐다. 그러자 청와대가 다시 “일본으로부터 사과를 받았다”고 반박하는 ‘사죄 공방’이 벌어졌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사죄 공방 와중에도 28일 양국 정부 통상 담당 과장급 실무진이 만나 향후 고위급 대화 진행을 위한 사전논의가 진행됐다. 이호연 무역정책관에 따르면 회의 결과 양국은 12월 셋째 주 중 도쿄에서 제7차 수출관리정책대화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12월 4일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국장급 회의가 열린다.

국장급 대화가 진행될 때 우리 측 대표로는 이호현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정책관이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아울러 한일 정부는 다음달 하순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열릴 예정인 한·중·일 정상회의 기간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정상회담을 갖는 방안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 소·부·장 불확실성 개선될까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 7월 한국의 주력 산업 중 하나인 반도체·디스플레이의 소재 중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등 3개 품목을 포괄허가 대상에서 개별허가 대상으로 변경했다. 8월에는 한국을 수출 승인 절차 간소화 혜택을 부여하는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서 국내에서 일본 의존도가 높았던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불확실성이 대폭 늘었다. 관련 기업들은 탈일본·극일본을 위한 비상체제에 돌입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는 이를 계기로 소재·부품·장비를 적극적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8월 5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 서울청사에서 주재한 ‘일본 수출규제 대응 관계장관회의’ 모두발언에서 “대외의존형 산업구조 탈피를 위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차질없이 추진해 우리 소재·부품·장비산업의 항구적인 경쟁력을 향상할 것”이라며 “국가안보와 주력·신산업에의 영향 등을 고려, 수출제한 3대 품목을 포함한 100개 전략적 핵심품목을 선정, 집중투자해 5년 내 해당 품목의 공급안정을 도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지난 9월 10일 소·부·장 조기 자립화를 달성하기 위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대통령 직속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위원회(이하 위원회)’ 출범을 의결했다. 위원회는 지난 10월 11일 홍남기 부총리 주재로 진행된 1차 회의에서 ▲경쟁력 강화 중점 추진전략 ▲기업 간 협력 방안 ▲일본 수출규제 대응 성과와 향후 계획 ▲경쟁력위원회 운영세칙안 등을 논의했다.

지난 20일 열린 2차 회의에서는 반도체, 전기 전자 분야 수요 기업과 공급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이차전지 핵심소재를 개발해 연 3000톤을 생산하는 협력사업 ▲수입의존도가 90% 이상인 반도체 장비용 부품 개발사업 ▲자동차·항공 등 핵심소재인 고품질 산업용 탄소소재 생산사업 ▲전량 수입 중인 전자부품 핵심소재에 대한 기술개발 및 공급사업 등 4개 협력사업을 첫 사업으로 승인했다.

이외에도 정부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투자 유치활동을 전개 중이다. 산업부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현지시간으로 19일부터 20일까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반도체, 화학소재, 미래차, 정보기술(IT)·서비스 분야 미국 기업과 만나 한국 진출 가능성을 타진하고 투자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한국 투자 계획을 마련 중인 기업들은 한국의 차세대 반도체, 미래차, IT·서비스 산업 전망을 높이 평가하고, 연구개발(R&D) 센터 및 생산 공장 설립, 공유 서비스 사업 추진을 위한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한대훈 SK증권 연구원은 리포트를 통해 “규제 철회가 없으면 지소미아가 종료된다는 조건적인 연장이지만 국내 금융시장을 둘러싼 불확실성 또한 사라진 셈”이라며 “특히 일본의 핵심 소재 수출 규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업체의 수혜가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협상에서도 어느정도 마찰이 예상되지만, 정치적 불확실성이 완화된 만큼 긍정적이다”라며 “소재·부품에 대한 국산화와 경쟁력 강화는 지속할 방침인 만큼 국산화 관련주에게도 악재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파이낸셜투데이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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