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보험은 같은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돈(보험료)을 내서 공동기금을 만들고 약정된 보험사고가 발생된 사람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호부조(상부상조)의 제도이다. 그러므로 보험은 가입자를 위한 것이지 보험회사의 돈벌이 수단이 아니며 수익사업은 더더욱 아니다.

보험의 주인은 보험계약자이고 보험회사는 머슴이다. 돈 내는 사람이 보험계약자이기 때문이다.

보험회사는 보험계약자가 낸 보험료로 운영되고 계약자가 낸 보험료를 잘 관리해서 보험금을 차질없이 지급하는 일꾼이므로 머슴이다. 그래서 보험회사를 ‘계약자 자산의 선량한 관리자’라고 듣기 좋게 부르는 것이다. 보험회사가 누구 덕분에 밥 먹고 사는지 자문해 보면 이 사실이 명확해진다.

병원도 마찬가지다. 환자가 낸 치료비 덕분에 밥을 먹고 사니까 환자를 위해서 존재한다. 환자가 없으면 병원도 없으므로 병원의 존재 이유는 환자의 치료이지 돈벌이가 아니다. 돈 내는 주인(보험계약자, 환자)이 없다면 보험회사, 병원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소비자가 주인이고 보험회사와 병원은 주인(고객)을 위해 일하는 머슴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된 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황당하게 주인과 머슴이 바뀌어 보험회사, 병원이 갑이고, 주인인 소비자는 을로 전락돼 홀대 받고 있다. 일부 머슴들이 주인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돈벌이 대상(수단)으로 착각하여 주인에게 ‘갑질’하기 때문인데, 그 중심에 실손의료보험(이하 실손보험)이 자리잡고 있다.

보험사들은 돈벌이에 매달려 실손보험을 오랫동안 이전투구하며 대량 판매했다. 그런데 이제와 ‘팔수록 손해’라고 징징거리며 보험료 인상에만 몰두하고 있고, 또한 다수의 동네병원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망각한 채 실손보험을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해 오고 있다.

동네 병원에 가면 처음 듣는 말이 “어디가 아픕니까”가 아니라 “실손보험 가입하셨지요? 돈 걱정 말고 MRI 부터 찍읍시다.”이다. 비급여 진료로 바가지를 씌워 돈벌이하려고 실손보험 가입 여부부터 묻는 것이다. 환자는 공짜로 치료 받아 좋고, 병원은 과잉 진료로 돈벌이 해서 좋으니 실손보험은 ‘누이 좋고 매부 좋고’다.

실제로 주인(보험계약자, 환자)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보험회사, 병원들은 드물고, 돈벌이를 위해 주인을 홀대한 채 왜곡된 논리로 물타기하며 목청 높이는 머슴들의 기사들이 매일 넘쳐 나고 있다. 실손보험은 갈 길을 잃어 헤매고 있고 지속 가능성이 의문이며 그 피해와 부작용은 오롯이 소비자의 몫이다. 실손보험이 진정 소비자를 위한 보험인지 의구심이 반복되는 이유다.

여기에 소비자를 보호해야 할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는 제 식구 감싸기에만 골몰할 뿐, 주인들이 당하는 피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고 그럴 역량도 없어 보인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기댈 언덕이 없고 그들을 믿거나 기대할 수도 없다.

보험업계와 의료업계는 오래 전부터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대해 첨예하게 대립해 왔는데, 이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실손보험 손해율과 문재인 케어의 상관관계에 대한 진실 공방으로 또 다시 볼썽 사납게 소모전을 벌이며 티격태격하고 있다.

먼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지난 10여년 동안 논쟁을 벌여 왔지만, 제자리걸음이다. 실손 보험 가입자의 20.5%가 소액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았는데, 병원에서 관련 서류를 발급받아 보험사에 제출하는 것이 번거롭기 때문이다.

이미 10년 전에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손보험 청구를 전산화할 필요가 있다는 제도 개선 권고를 내렸지만, 등 떠밀려 금감원이 2015년에 ‘실손보험 간편 청구 시스템 구축’을 중장기 과제로 발표했다. 그러나 진전된 내용이 없다. 금융위와 보건복지부도 실무 협의에 나서 수차 논의했지만 현장에서 체감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이 없다.

보험업계는 투명한 보험금 청구·지급을 통해 보험 신뢰도를 높이고 개별 청구 처리에 따른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하지만, 의료업계의 결사 반대로 10년째 표류하고 있다. 의료계는 환자의 민감한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속내는 돈벌이에 타격을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보험금 청구가 전산화되면 비급여로 바가지를 씌워 돈벌이하던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므로 이를 감추기 위해 정보 유출을 주장하며 애써 물타기 하는 것으로 보인다.

급기야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 전재수 의원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관련 보험업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는데, 병원이 환자의 진료내역 등을 전산으로 직접 보험사에 보내 보험금을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당초 ‘신중 검토’의 입장을 보이던 금융위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에 대해 최근에 ‘동의’로 입장을 변경했다고 한다. 소비자단체들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의 통과를 촉구하며, 의료업계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최근에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급등한 이유가 문케어 때문이라는 보험업계의 주장에 대한 진실 공방이다. 문케어 시행 후 진료횟수가 크게 늘어나 비급여 진료비 증가로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악화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건보공단은 실손보험 손해율 상승과 문케어는 연관이 없고 오히려 보험사들이 건보의 보장성 강화의 반사 이익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반박에 재반박으로 이어져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주인의 입장을 배려하거나 고려한 주장은 없다. 앞의 2가지 쟁점은 내년 초 예정된 실손 보험료 인상과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실손보험 가입자들도 자연스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실손보험은 당초부터 건강보험의 비급여 비용을 보장해 주는 보험이다. 미용·성형 등 일부 항목을 제외하면 사실상 모든 비급여 진료비를 보장하므로 병원에서의 비급여 과잉진료시 실손보험의 갱신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 상품 구조상 병원의 비급여 진료 실적에 따라 보험료가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 결국 병원의 비급여 과잉진료가 문제이고 사건의 핵심인 것이다.

실손보험은 갱신형이므로 갱신 시마다 갱신보험료를 책정, 부과해야 하는데, 갱신보험료가 매년 폭탄 수준으로 인상되어 가입자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실손보험은 갱신보험료의 급격한 인상으로 ‘돈 먹는 하마’로 전락된 지 오래됐고 계속 보장이 사실상 불가한 보험이다.

실제로 연령이 증가할수록 실손보험 가입률이 크게 떨어진다. 실손보험의 평균 가입률은 75.3%이지만, 고령층으로 가면 뚝 떨어진다. (60대 67.4% → 70대 28.1%, 80대 이상 4.5%) 의료비 지출은 노령층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므로, 노령층이 가장 많은 혜택을 봐야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수입이 끊긴 은퇴자들은 실손보험 가입을 포기하고 가입하더라도 비싼 보험료를 감당할 수 없어 70대의 실손보험 유지율이 28%에 그친다. 실손보험 유지율은 5년 후 48.5%, 10년 후 14.7%에 불과하다. 가입 후 10년 경과 시 85.3%가 이미 포기한 것이다.

이처럼 실손보험은 지속 가능한 보험이 아닌데, 보험사들은 이를 감추고 “갱신을 통해 100세(110세)까지 보장한다”고 여전히 호들갑 떨며 판매하고 있다. 100세 보장은 이론상 가능할 뿐이고 특히, 고령자에게 그림의 떡, 무용지물이다.

병원도 마찬가지다. 그 동안 실손보험 손해율 상승의 주범으로 비급여 항목의 과잉진료가 수 차 지적되어 왔지만 과잉진료를 줄이려는 노력은 크게 보이지 않았다. 실손 보험금의 70%가 비급여로 지출되기 때문에 ‘비급여 과잉 진료→손해율 급증→보험료 인상’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제도 유지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실손보험은 무거운 짐(과잉 진료) 때문에 바다에 침몰할 수밖에 없다. 목적지 항구에 도착하려면 무거운 짐을 바다에 던져야 한다. 배가 가벼워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미 2016년 9월에 보도자료를 통해서 보험료 차등제(자동차보험처럼 보험금 수령 실적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 적용)를 제안했고, 최근에 소액 보험금을 지급대상에서 제외하자는 내용으로 상품 변경을 제안한 바 있다.

보험은 수시 발생하는 소액 치료비(예시 : 5만원, 10만원 미만)를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 번 발생하면 거액의 치료비(비용)가 필요한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소액치료비는 대부분 생활비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으므로 굳이 보험에 연연할 일이 아니다. 실손보험료 산출 시 소액 치료비를 빼고 계산하면 보험료가 그만큼 저렴해지므로 유리, 불리를 따질 일이 아니다. 소액 치료비를 제외하면 보험업계와 의료업계가 아웅다웅하며 싸움할 일도 크게 줄어들게 된다.

필자에 이어 보험연구원도 뒤늦게 보험료 차등제 도입과 상품구조 개선을 제안했지만 당사자들은 여전히 이해득실만 따지며 나서지 않고 있다.

실손보험을 살리려면 보험료 차등제와 소액 치료비 면책을 도입, 적용해야 한다. 당장이라도 무거운 짐을 바다에 던져 일정 부분의 피해를 감수해야 그나마 지속 가능한 보험이 될 수 있다. 행여 본질이 아닌 이유를 들먹이며 물타기 하거나 반대를 위한 반대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양측이 한 발씩 양보하여 주인을 위해 생산적인 해법을 도출해야 한다.

보험업계와 의료업계는 모두 머슴들이므로 주인에 대한 본분을 다하고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실손보험과 관련된 모든 의사결정과 판단의 기준은 돈 내는 주인(소비자) 중심이어야 한다. 즉, 소비자 이익이 1순위이고 보험사나 병원의 돈벌이는 2순위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하여 아무도 반박할 수 없다. 보험은 가입자를 위한 상부상조의 제도이지 돈벌이를 위한 수익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머슴들이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편협한 시각으로 고집을 부리는 행태는 용납될 수 없다. 자신들 의 배를 우선 채우기 위해 주인의 희생을 계속 강요하는 작태이기 때문이다. 머슴들이 해야 할 일은 주인을 섬기는 일이고 고집 불통을 접는 일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보험업계와 의료업계가 정신을 차려 소비자 이익을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

지금까지 경험하였듯이 머슴들끼리 해결하도록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금융위와 보건복지부가 적극나서야 한다. 입으로만 소비자 보호를 외칠 것이 아니라 머슴들을 불러서 따끔하게 야단치고 설득해서 주인을 위해 일하도록 강력 조치해야 한다. 행여 금융위와 보건복지부가 존재 이유를 망각한 채 머슴들의 잘못된 행태를 외면하거나 고치지 않는다면 소비자(국민)를 위해 일하는 조직이 아니므로 월급 받을 자격이 없다. 국민들이 세금을 내서 혈세로 금융위, 보건복지부에 월급 주는 것은 이런 일 제대로 하라고 정부에게 요구하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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