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해명을 변명으로 만든 규제기관의 자화자찬
[기자수첩] 해명을 변명으로 만든 규제기관의 자화자찬
  • 변인호 기자
  • 승인 2019.11.16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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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변인호 기자
사진=변인호 기자

11월 8일은 관련 업계에서 주목받는 큰 이슈에 관한 규제기관의 발표가 있던 날이다. 이날 하루 동안 공정거래위원회의 유료방송 인수합병 기업결합 심사 결과가 10일 정오 보도 엠바고로 발표됐고,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블록체인 게임 관련 심의 관련 보도자료가 배포됐다. LG유플러스-CJ헬로, SK텔레콤-티브로드 기업결합은 조건부 승인이 됐고, 노드브릭에서 서비스하는 블록체인 게임 ‘인피니티스타’는 게임위에서 ‘등급분류 거부 예정’ 결정이 났다..

배포된 보도자료를 보고 실소를 머금었다. 두 규제기관이 모두 ‘자화자찬’을 하고 있었다. 심사를 하고, 심의를 통해 결정을 내리는 것은 기관이 당연히 할 일이다. 하지만 시장이 빠르게 변한다면, 사안이 빠른 결정을 필요로 하는 거라면, 늑장심사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적어도 법적으로 정해진 기한 내에는 결정을 내렸어야 했다.

공정위는 기업결합 신고를 받으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12조 10항에 따라 30일 이내에 심사결과를 통지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 90일의 범위 안에서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연장해도 최대 4개월(120일)이다. LG유플러스는 기업결합 신고를 3월 15일에, SK텔레콤은 5월 9일에 신고했다. SK텔레콤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120일째 되는 날은 9월 5일이다. 하지만 10월을 넘겨 11월 8일 발표됐다.

공정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국내 유료방송시장이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고, 유료방송사업자 간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점 및 국민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방송·통신시장 등에서의 기업결합인 점을 감안하여 면밀하고 공정한 심사를 진행했다”며 “앞으로도 급변하는 기술․혁신시장에서의 기업결합에 대해서는 기업들이 기술과 시장의 빠른 변화에 적시에 대응할 수 있도록 면밀하고 신속한 심사를 진행하는 한편, 경쟁제한 폐해는 근원적으로 방지하여 소비자 피해를 예방해 나아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화자찬이자 변명이다. 면밀하고 공정한 심사는 몰라도 면밀하고 신속한 심사는 아니었다. 공정위 늑장심사에 사이에 낀 노동자들은 울상이었다. 오죽하면 피인수기업 CJ헬로 노동조합이 공정위에 빨리 기업결합을 승인하라고 촉구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피인수기업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에 시달리는데, CJ헬로는 반년을 넘겼다.

게임물관리위원회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인피니티스타 등급분류 신청은 9월 초에 접수된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 2주 안에 심의가 결정되는 다른 게임과 달리 인피니티스타는 두 달가량 걸렸다. 인피니티스타는 지난해 플레로게임즈의 ‘유나의 옷장’이 등급재분류 결정이 난 이후 처음으로 접수된 블록체인게임이라 관련 업계의 관심이 쏠렸다. ‘블록체인 게임’이라는 신종 플랫폼이자 장르를 국내에서 서비스할 수 있게 해줄 가이드라인이 제시될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게임위의 상급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의 박승범 게임콘텐츠산업과 과장이 파이낸셜뉴스 포럼에서 “최근 블록체인 게임 심의 신청이 들어왔다고 들었는데, 조만간 블록체인 게임이 많이 서비스 되지 않을까 싶다”고 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게임을 담당하는 정부부처인 문체부 공무원이 굳이 언론사 행사에서 블록체인 게임 서비스를 언급해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기도 했다. 부푼 꿈이었다. 게임위는 ‘이번 결정으로 블록체인 산업이 위축되거나 둔화되지 않도록 확대해석을 경계할 필요가 있는데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국내에서 블록체인 게임 서비스를 못하는 근거로 유나의 옷장은 1년 이상 회자됐고, 이젠 인피니티스타도 같이 언급된다.

게임위는 이재홍 위원장이 “이번 결정이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게임물에 대한 전면적 금지 선언은 아니며, 블록체인 기술이 사행성을 조장하는 행위로 이용될 경우에만 제한하는 것”이라며 “블록체인 기술을 게임에 접목하는 것에 대하여 방향성을 제시한 것으로써 향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건전한 게임이 많이 출시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NFT든 뭐든 암호화폐가 얽히면 안된다고 본다는 건지 어떤 방향성이 제시됐는지 알기 어렵다.

규제기관의 결정은 하나하나가 업계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다. 당연히 공정하고 면밀한 심사가 진행돼야 한다. 사안이 중대해 검토에 시간이 많이 걸렸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자화자찬을 할 것은 아니었다. 자화자찬이 섞이며 해명은 변명이 됐다.

파이낸셜투데이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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