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임물관리위원회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중소게임사들의 활로 중 하나인 ‘블록체인 게임’에 다시 등급분류 거부 결정을 하면서 국내 게임 시장에 한파가 거세지고 있다. 국내 시장에 중국 게임의 공습이 계속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각종 규제, 판호 문제 등이 겹쳐 최대 게임 개발국인 한국이 동력을 잃고 게임 소비국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임위)는 지난 6일 개최된 등급분류회의에서 노드브릭의 블록체인 방치형 RPG ‘인피니티스타’에 등급분류 거부 예정 결정을 내렸다. 인피니티스타가 우연적인 방법으로 결과가 결정되고, 획득한 재료를 가상의 재화로 변환할 수 있으며, 게이머의 조작이나 노력이 게임의 결과에 미칠 영향이 극히 드물다는 이유였다.

게임위의 이번 결정 전 게임 업계에서는 인피니티스타 심의가 국내에서 블록체인 게임을 서비스할 수 있을지를 가리는 분수령으로 보는 분석이 많았다. 지난해 플레로게임즈의 ‘유나의 옷장’에 게임 플레이를 통해 암호화폐 ‘픽시코인’이 도입되고 등급재분류 통보를 받은 뒤 거의 1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게임위의 이번 결정에 관해 업계에서는 게임위가 사실상 블록체인 게임을 막는 것과 다름없다는 의견이 많다.

블록체인 게임은 데이터, 아이템 등 게임 자산을 게임사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NFT(대체불가능한토큰) 기술 등을 이용해 소유권을 유저에게 주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암호화폐는 ‘이더리움’을 기반으로 하는 것들이 많은데, 크게 ERC-20 토큰과 NFT로 불리는 ERC-721 토큰으로 구분된다. 만원짜리 지폐를 누가 가지고 있던 가치는 만원으로 동일하듯 누구나 동일한 가치로 구매·판매·교환할 수 있는 것이 ERC-20 토큰이다. NFT는 ERC-20 토큰으로 가치를 책정할 수 있는 그림 등의 예술품 같은 성격이다. 유명 화가가 그린 작품은 수십억원에 거래되기도 하는데, 그림 한 점 한 점이 모두 대체 불가능한 고유한 것이다. 실제로도 ‘아이즐워스의 모나리자’ 등 그림의 지분을 두고 소유권 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특히 게임 데이터는 최근 PC·콘솔게임 개발은 줄고 모바일게임이 강세를 보이면서 대체로 짧아진 게임 수명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모바일게임은 대체로 수명이 1년여 정도다. 많은 시간, 돈 등을 들였어도 게임사가 1년 뒤 서비스 종료를 선언해버리면 데이터는 사라진다. 블록체인 게임은 NFT 기술을 이용해 유저가 노력해서 만든 자산을 플랫폼 내 다른 게임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자산 데이터도 게임사 소유가 아닌 유저 소유다. 게임이 블록체인 위에서만 작동한다면 영원히 서비스되는 게임도 가능하다.

아울러 블록체인 게임은 ▲블록에 확률형 아이템 획득 내역 등을 기록해 위·변조 원천 차단 ▲구글, 애플 등에 내야 하는 마켓 수수료가 없는 점 ▲A게임에서 플레이하면서 얻은 아이템을 B게임에서 사용할 수도 있고 A게임을 하면서 얻은 것을 판매한 돈으로 B게임의 아이템을 살 때 사용할 수 있는 크로스플레이 등의 장점도 있다. 대형게임사 위주로 재편된 게임 시장에서 중소게임사가 살아남기 위한 활로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이번 결정에 관해 이재홍 게임위 위원장은 “이번 결정이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게임물에 대한 전면적 금지 선언은 아니며, 블록체인 기술이 사행성을 조장하는 행위로 이용될 경우에만 제한하는 것”이라며 “블록체인 기술을 게임에 접목하는 것에 대하여 방향성을 제시한 것으로서 향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건전한 게임이 많이 출시되기를 희망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블록체인 게임의 핵심을 빼고 게임을 만들면 사실상 일반 게임이나 다름없다. 소유한 자산의 판매를 막아놓고 소유권이 유저에게 있다고도 할 수 없다.

 

11월 12일 기준 탈중앙화 앱(DApp) 순위 분석 사이트 스테이트오브더댑스 게임 순위. 사진=스테이트오브더댑스 캡처

이번 게임위 결정으로 사실상 국내 블록체인 게임 시장은 얼어붙었다.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6월 유나의 옷장 이후 수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인피니티스타가 ‘총대’를 메고 등급분류 심의를 신청했지만 등급분류 거부 결정이 났다. 한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유나의 옷장 이후 굳이 선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어 선뜻 심의 신청을 하기 어렵다”며 “뭐가 되고 뭐가 안되는지 가이드라인이 명확한 것도 아니라 다 만들고 심의 통과가 안 돼 갈아엎는 것보다는 그냥 국내 서비스를 포기하고 글로벌 서비스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블록체인 게임만 한파를 맞은 게 아니라는 점이다. 국내 게임 산업은 현재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리고 있다. 게임의 흥행에 따라 실적이 요동치는 게임업계 특성상 신작이 부진했던 올해는 전반적으로 상황이 어려웠다. 넥슨은 조직개편 과정에서 구조조정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고, 넷마블은 코웨이 인수 우선협상대상자가 되는 등 게임사 내부적으로 게임 외 이슈가 많았다. 외부적으로는 중국 시장이 여전히 판호(서비스 허가권) 발급이 여의치 않아 막힌 가운데 국내 시장에 하나둘 공습해왔다. 모바일 앱 순위 분석 사이트 게볼루션에 따르면 12일 기준 종합순위 20위 내 8개가 중국산이다. 하반기 기대작으로 꼽힌 카카오게임즈의 ‘달빛조각사’, 넥슨의 ‘V4’가 출시돼 그나마 중국 게임 수가 8개로 줄어들었다.

중국은 2017년 한반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 배치 이후 ‘한한령’을 핑계로 한국 게임 수입을 막았다. 판호는 아직 한 건도 발급되지 않았다. 중국은 시장 규모가 40조원에 달하는 글로벌 게임산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다. 중국 진출이 막히자 국내 게임사들은 북미·유럽 시장에서 수요가 높은 콘솔게임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아직 개발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모바일게임 신작도 올해 하반기 들어서야 하나둘 나오고 있다. 신작 게임 기근에 시달리면서 게임사들의 실적도 지지부진했다.

중국은 블록체인 분야를 선점하려고 수년 전부터 준비해왔다. 중국은 공산당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준비하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온 전력이 많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지난달 24일 블록체인 기술을 개발해 경제·사회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중국은 확실히 위협적인 경쟁자다. 시진핑 주석 발언에 비트코인 가격이 요동치기도 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도 중국을 경계하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CEO는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청문회에서 “암호화폐 ‘리브라’가 아니면 중국과 경쟁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게임 분야는 이미 중국에 거의 따라잡힌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블록체인 게임도 머지 않았다. 텐센트 같은 IT 공룡도 블록체인 플랫폼 ‘트러스트에스큐엘(TrustSQL)’을 기반으로 블록체인 게임 ‘렛츠 헌트 몬스터’를 출시하며 블록체인 게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게임 산업도 셧다운제, 세계보건기구(WHO)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 중국 판호 등 문제가 산적해 있다. 국회 소관위원회인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들도 그동안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전시회 때, 토론회·세미나 때 축사 한 번 하면서 “게임산업이 국내 수출 효자 산업인데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공수표를 주는 것이 전부였다.

블록체인 게임은 12일 기준 탈중앙화 앱(DApp, 이하 댑) 순위 분석 사이트 스테이트오브더댑스 게임 순위 5위 안에 한국에서 개발한 ‘크립토도저(2위)’와 ‘도저버드(4위)’가 있긴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1위와 3위는 암호화폐를 합법적 자산으로 인정해 규제를 마련한 미국·일본에서 개발한 블록체인 게임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 게임을 수입해가던 중국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이제는 게임 자체만 놓고 보면 한국 게임과 중국 게임을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수준까지 왔다”며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한국은 최대 게임 개발국에서 게임 소비국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현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모바일게임이 나오기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2010년 스마트폰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당시에도 게임위 심위 때문에 게임빌·컴투스 같은 모바일게임사들은 게임을 만들어놓고 해외에서만 서비스하며 눈치를 봐야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중국까지 블록체인 게임 시장에 참전하면 한국 게임사들은 더 설 곳이 없어진다”며 “기존 게임 분야에서 모바일은 대형게임사가 꽉 잡고 있고, PC·콘솔은 개발에 모바일게임보다 많은 시간, 자본, 인력이 필요하다. 중소게임사·스타트업이 활로를 찾기엔 블록체인 게임이 적격이지만 국내 서비스는 어려우니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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