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게임을 보는구나”…선거철 게이머 표심 노리는 국회
“이제야 게임을 보는구나”…선거철 게이머 표심 노리는 국회
  • 변인호 기자
  • 승인 2019.11.04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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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스타 2017 B2C관에 관람객이 운집했다. 지스타는 매년 최대 관람객수를 경신 중이다. 사진=연합뉴스
포항 지진으로 수능이 연기돼 흥행 우려가 제기됐던 지스타 2017에 관람객이 운집한 모습. 지스타는 매년 최대 관람객수를 경신 중이다. 사진=연합뉴스

‘콘텐츠산업 수출 효자’로 잘 알려진 국내 게임산업은 25년이 넘도록 여전히 부정적인 인식과 게임질병코드 등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 그간 게임에 관심 있는 소수의 국회의원만 게임업계와 게이머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는데, 최근 국회 등에서 게임업계에 눈길을 주는 일이 늘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그동안 관심도 없다가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오니까 이제야 관심 있는 척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2019년은 대한민국 온라인게임이 25주년을 맞은 해다. 1994년 ‘단군의 땅’, ‘쥬라기공원’을 시작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국내 게임업계는 1996년 ‘바람의 나라’, 1998년 ‘리니지’, 2001년 ‘뮤 온라인’, 2002년 ‘라그나로크’ 등 많은 게임을 만들어냈다. 바람의 나라, 리니지, 뮤 등은 사람으로 쳐도 성인이 될 만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서비스되고 있기도 하다.

특히 게임산업은 국내 콘텐츠산업 수출액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든든한 ‘원톱’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1월 발간한 ‘콘텐츠산업 2018년 결산 및 2019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콘텐츠산업 수출액 75억달러 중 56.5%인 42.3억달러는 게임에서 나왔다. 2017년 한반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DD, 사드) 배치 이후 최대 규모의 수출 시장인 중국 진출이 사실상 막힌 상황에서도 성과를 거둔 셈이다.

하지만 게임은 만년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정부·국회에서 큰 관심도 받지 못했다. 게임산업과 관련된 의정활동을 하는 국회의원은 ‘대한민국 게임포럼’ 소속 의원들인 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손에 꼽을 수 있는 정도다.

특히 이동섭 의원은 ▲금전을 목적으로 게임의 성과·점수 등을 대신 획득해주는 ‘대리게임’ 처벌법 ▲불법 위변조 프로그램(핵)·사설버서 배포 및 제작에 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조승래 의원도 법률 조문에 ‘게임과몰입·중독’ 대신 ‘게임과몰입’으로 바꾸는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게임산업은 국회 소관위원회인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들도 그동안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전시회 때, 토론회·세미나 때 축사 한 번 하면서 “게임산업이 국내 수출 효자 산업인데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공수표를 주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지난 8일 국정감사를 앞두고 경기도 성남시 판교 엔씨소프트 사옥 현장 시찰 이후 태도가 확 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 시찰에 나선 문체위 위원들은 8일 한국 게임업계 1세대 창업 개발자 겸 현직 대표이사로 게임업계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문체위원장인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엔씨소프트 직원이 3000명이 넘고 업계에 이런 회사가 70곳이나 있다는 점을 듣고 깜짝 놀랐다”며 “게임산업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산업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게임이 25주년을 맞이할 만큼 역사가 있지만, 소관위 위원장도 게임업계 규모를 이번에 직접 와서 보고 나서야 알았다고 보게 되는 대목이다. 이번 현장 시찰도 게임포럼 공동대표이자 문체위 간사인 이동섭 의원이 제안해서 이뤄진 일이었다. 그래도 효과는 확실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말대로 문체위 위원들이 직접 본 뒤로 문체위뿐만 아니라 다른 소관위 위원들도 게임 쪽 이슈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일각에서는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위해 게이머들 표심을 공략하려고 뒤늦게 게임에 눈길을 준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8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0~65세의 일반인 30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67.2%가 게임을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0~30대는 게임 이용률이 90%대에 육박한다. 40대와 50대도 게임 이용률이 50%가 넘고, 60~65세도 36%가 게이머인 것으로 확인됐다.

 

엔씨소프트 현장 시찰. 사진=연합뉴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안민석 위원장과 위원들이 10월 8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 엔씨소프트 사옥에서 열린 국정감사 현장시찰에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등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현재 국내 게임 시장은 중국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태다. 국내 게임사가 중국에 게임을 수출해서 서비스하려면 중국 정부의 ‘판호’가 필요한데, 중국 정부는 사드 배치 이후 단 한 건도 발급해주지 않았다. 반면 중국 게임은 국내 시장에 물밀 듯이 들어오고 있다. 1일 기준 모바일 앱 순위 분석 사이트 게볼루션에 따르면 종합순위 20위 내 9개 게임이 중국게임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권한이 없는 게임물관리위원회에 왜 확률형 아이템을 규제하지 않느냐고 질타했던 문체위 소속 조경태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은 중국 판호 문제를 선택했다. 지난달 17일과 21일 문체위 국정감사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 등에 개선 조치 검토를 촉구했고, 25일에는 중국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조경태 의원은 “중국의 판호발급 차별 상황이 지속한다면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우리도 중국 게임을 제한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며 “중국의 부당함을 지켜보고 있을 수가 없어 1인 시위에 나서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또 현장 시찰을 하기 전인 지난 9월 말부터 게임 연관 산업인 e스포츠 쪽에서는 ‘미성년 선수 노예계약’ 문제가 불거진 상태였다. 업무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표준계약서도 없는 데다 어린 나이에 데뷔하는 선수들이 많은 업계 특성상 프로게이머 인권 문제는 e스포츠 승부조작 사건이 발생했던 2010년 이전부터도 꾸준히 제기된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국내 리그 오브 레전드(LoL) 프로게임단 그리핀과 중국 징동게이밍(JDG), ‘카나비’ 서진혁 선수의 계약 문제에 국회 국방의원회 소속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참전했다. 현재 ‘카나비’ 서진혁의 JDG 이적 계약을 두고 LoL을 개발 및 서비스하는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 라이엇 게임즈 차이나, 한국e스포츠협회가 합동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의원이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별로 없다. 공권력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는 사인과 사기업 사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 민법상 미성년자가 국제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국내 회사(그리핀) 측의 강압·협박이 있었다는 김대호 전 그리핀 감독의 폭로가 있었고, 합동 조사 과정에서 날짜가 지날 때마다 내용이 수정되면서 사실관계가 자꾸 변하고 있는 점, 조사 기관이 수사 의뢰를 하지 않는 점 등을 이유로 자국민 보호를 위한 헌법기관으로서 발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동섭 의원도 지난달 23일 e스포츠 선수와 프로게임단이 계약할 때 문체부 표준계약서를 사용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의 e스포츠 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미운 오리 같던 게임업계와 게이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던 국회의원이 그동안 몇 명 없었는데, 21대 총선을 앞두고 표심을 노리는 것이라고 해도 정치권에서 산업의 규모와 성장 지원 등에 관심을 둔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며 “이전에도 바른미래당의 이동섭 의원, 더불어민주당에서 조승래 의원, 김병관 의원, 자유한국당에서 김세연 의원 등 게임산업을 위해 초당적 협력이 있었던 만큼 이제 게임에 관심을 보이는 의원들이 늘면서 게임·e스포츠에 관한 정책 입법이 좀 더 힘을 받지 않을까 싶다”고 전망했다.

파이낸셜투데이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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