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성화 안되는 제로페이…“너무 불편해”
“소상공인 위한다면서”…대형마트까지 가맹점으로 영입
서울시·중기부 백 있는 제로페이…“갓난아기 아냐”

제로페이. 사진=연합뉴스

제로페이가 소상공인을 돕는다는 취지로 시행됐지만 실효성에 대한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정부의 지원사격에도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저조한 사용률을 기록하는 것은 물론 제로페이 업무를 전담하는 민간법인 설립 추진을 위해 은행들로부터 출연금을 압박하는 등의 모습으로 여전히 관치금융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제로페이 안써요”…사용은 지지부진

제로페이는 서울시가 소상공인들의 결제 수수료 부담을 덜어주고자 지난해 12월부터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제로페이를 이용할 경우 가맹점 수수료가 0.0%~0.5%로 크게 낮아지기 때문에 소상공인들의 수수료 부담이 대폭 경감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이 같은 좋은 취지에도 제로페이는 이용자의 외면을 받으며 지지부진한 사용률을 기록하고 있다. 서울시의회가 지난 25일 발표한 ‘2019 서울시 및 교육청 주요시책분석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제로페이 서비스가 시작된 시점부터 지난 8월 말까지 전국 제로페이 결제 실적은 285억9494만원에 불과했다.

이 중 결제가 가장 활발했던 서울시에서 결제된 금액은 239억4863만원(83.3%)이다. 이를 서울시 내 제로페이 가맹점 수(16만1605개)로 나누면 가맹점 1개 당 14만8192원이 결제됐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1일 평균 서울시내 개인 신용카드 결제금액이 7000억원 수준임을 참고하면 제로페이 결제 실적은 굉장히 미미한 수준이다. 아울러 서울시에서 결제된 금액 중 50억원 가량은 서울시 업무용, 32억원 가량은 공무원의 복지포인트에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의회는 보고서를 통해 “당초 2019년 서울시가 목표한 제로페이 이요금액은 8조5300억원인데 반해 8월 30일까지 결제금액은 239억원으로 목표액 대비 0.28%의 실적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듯 제로페이가 활성화되지 않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결제 과정의 복잡함이 꼽히고 있다. 신용카드나 다른 간편결제 시스템은 사용법이 간단한 데 반해 제로페이는 결제 시스템을 지원하는 앱에 접속해 QR코드를 스캔해 직접 결제 금액을 입력하거나 본인의 QR코드를 보여주고 스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평소 제로페이를 사용한다는 A씨(27세)는 “제로페이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은행 앱에 들어가서 QR코드를 찍고 결제 금액을 누르는 과정이 너무 번거롭다”며 “솔직히 소상공인을 돕는다니깐 사용 하는 거지, 그게 아니라면 다른 편리한 결제수단도 많은데 굳이 제로페이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A씨는 “제로페이가 확산되지 않는 것은 불편하기 때문인 거 같다. 불편함을 개선하지 않고 소상공인을 위한다는 온정에만 기대서는 활성화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로페이는 최근 소상공인을 위한다는 본래 취지마저 퇴색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제로페이 가맹점을 소상공인뿐 아니라 대형마트까지 확대했기 때문이다.

중기부에 따르면 지난 8월 26일부터 전국의 이마트와 이마트 트레이더스, 일렉트로마트, 삐에로쑈핑 등의 대형 매장에도 제로페이가 도입됐다. 중기부는 소비자들이 밀집해있는 대형 유통업체를 가맹점으로 끌어들여 제로페이 이용률을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물론 소상공인에 해당하지 않는 업체들은 가맹점 가입 시 일반가맹점으로 분류돼 소상공인보다 높은 수준인 1.2%의 수수료를 부담하게 된다. 하지만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제로페이를 대형마트나 소상공인 업체에서 똑같이 결제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소상공인 업체나 전통시장 등을 찾을 필요가 없어진다.

소비자 B씨(48세)는 “어차피 똑같은 제로페이 가맹점이라면 자주 가던 대형마트로 갈 것 같다. 혜택이 똑같다면 뭣하러 시장까지 가겠냐”고 반문했다.

지난 17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국정감사에서 제로페이 실적을 신용카드 실적과 비교하는 것을 두고 “갓난아기에게 뛰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사진=연합뉴스

◆박원순 시장의 ‘갓난아기’ 발언 VS ‘관치금융’ 비판

이달 진행됐던 국정감사에서도 제로페이와 관련된 질타가 여러번 쏟아졌다. 이에 박원순 서울시장은 제로페이 실적을 신용카드 실적과 비교하는 것을 두고 “갓난아기에게 뛰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서울시 및 중기부 등의 든든한 지원을 받은 제로페이를 두고 갓난아기에 비유한 것은 공감하지 못하겠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현재 제로페이 사업에는 20개의 은행과 8개의 핀테크사가 참여하고 있다. 이들 사업자는 이용자들이 별도의 앱을 깔지 않고도 제로페이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각자의 금융 플랫폼 앱에 제로페이 기능을 추가해야 했다.

특히 제로페이 민간법인을 설립하는 과정에서는 중기부가 은행권에 출연금을 압박하면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관 주도 하에 추진된 사업이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 추진된 민간법인 설립이었지만, 오히려 은행권에 최소 10억원 이상씩의 출연금을 요구하면서 ‘관치페이’논란이 더욱 거세진 것이다. 중기부는 지난달 제로페이 민간법인 ‘한국간편결제진흥원’ 설립을 허가했고 한국간편결제진흥원은 100억원 가량에 이르는 출연금으로 다음달 공식 출범할 것이라고 알려졌다.

지난 8일 이종배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관치페이 이미지를 벗으려고 민간법인 설립을 추진했다”며 “제로페이 민간법인 설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은행에 출연금을 요구했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투데이 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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