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정의선 수석부회장. 사진=연합뉴스

침체된 산업계 전반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온 인물이 있다. 바로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수석부회장이다. 정 부회장은 지난 해 9월 그룹 총괄을 맡게 되면서 ‘오픈 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미래차 기술 확보를 위한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 속에 그룹 계열사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외부 인재 영입을 지속하는 등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 순혈주의 탈피한 과감한 인재전략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인 아우디폭스바겐의 디자인을 총괄하던 피터 슈라이어는 2006년 7월 한국에 왔다. 당시 기아차 대표이사였던 정 부회장은 고작 30대 중반의 나이로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했다. 이 소식은 세계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당시 기아차 수장이던 정 부회장은 혁신적인 디자인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판단하고 과감한 인재전략을 통해 디자인경영을 시작했다. 이후 기아차는 ‘직선의 단순화’와 ‘호랑이 코 패밀리룩’ 디자인을 적용한 신모델들을 출시하기 시작하면서 자동차 업계와 소비자들의 시선끌기에 성공했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9월 현대차그룹의 수장으로 부임하면서 같은 맥락으로 현대차 부활에 앞장섰다. 그 시발점으로 폭스바겐그룹 브랜드체험관 총책임자 출신인 코넬리아 슈라이더를 고객경험본부 내 스페이스이노베이션담당 상무로 영입에 성공하고 7월에는 알버트 비어만 현대기아차 차량성능 담당 사장을 그룹 최초 외국인 연구개발본부장에 임명했다.

또한 지난 9월 알파 로메오와 람보르기니 등에서 디자인 개발을 주관한 필리포 페리니 디자이너와 미 항공우주국 출신의 신재원 박사를 영입해 미래혁신 모빌리티 서비스 경쟁력 제고를 위한 도심용 항공 모빌리티(UAM·Urban Air Mobility) 핵심기술 개발과 사업추진을 전담하는 'UAM 사업부' 부사장으로 임명했다.

여기에 미국에서 벤틀리, 아우디 등 브랜드를 이끌어 온 마크 델 로소를 제네시스 북미 담당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했다.

세계적으로 거물급 인재들을 영입할 수 있던 원동력은 순혈주의를 탈피하고 대대적인 체질 개선을 선언한 정 부회장의 경영 전략 성과라는 평가다.

정 수석부회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도 "과거의 성장방식에서 벗어나 우리의 역량을 한데 모으고 미래를 향한 행보를 가속해 새로운 성장을 도모해야 할 때다"고 말하며 변화와 혁신의 새바람이 불 것을 예고했다.

▲ 실적부진에 마침표 찍고 지배구조 개편에 ‘광폭행보’

지난해 하반기는 현대차그룹에 암흑기 같았다. 중국 시장의 판매부진과 미국시장에서의 고전은 2017년 3분기 이후 6분기 연속으로 영업이익 1조원을 넘기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현대차 그룹의 2018년 3분기 영업이익은 2889억원으로 영업이익률 1.2%에 그치는 등 ‘어닝쇼크’를 경험했다.

하지만 정 부회장 부임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실제로 정 부회장이 전면으로 나선 지난해 9월 이 후 실적 하락세에 제동을 건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2조 626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을 26.4%까지 끌어올렸다. 이는 수출 주효국인 중국, 미국, 일본 시장 외에도 인도나 아프리카 등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정 부회장의 안목 때문이라는 의견이다. 2019년을 ‘V’자 회복의 원년으로 삼겠다던 정 부회장의 다짐이 경영능력으로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실적 반등에 성공한 현대자동차 그룹은 지난 11일 한국과 북미에서 결함 논란이 된 ‘세타2 GDi엔진’ 장착 차량에 대한 평생보증프로그램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두고 향 후 정 부회장의 지배구조를 염두해둔 포석이라는 의견이 분분하다. 문제가 되고있는 세타2 엔진의 평생보증을 발표하며 불확실성을 조기에 없애고 전기차·수소전기차를 비롯해 자율주행차·커넥티드카 등에 투자해 미래 자동차 시장을 선점해 나간다는 복안이다.

현대차그룹은 단기적인 주가하락을 감수하더라도 평생보증프로그램에 드는 비용 7억7500만달러(약 9200억원)를 3분기 실적에 즉각 반영하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전기차와 수소차 등 미래성장동력이 될 친환경차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5년까지 신차의 절반 수준인 23종의 전기차를 출시하고 전기차·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등 전동화 모델을 44개 차종까지 늘리겠다는 친환경차 비전도 밝혔다.

정 부회장은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제조사에서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서비스 회사’로 탈바꿈할 것이다"고 말했다.

사진=현대차그룹제공

▲ 외부에서는 ‘광폭행보’, 내부에서는 ‘파격인사’

정 부회장은 세타2 엔진 평생 보장, 미래사업 투자 등 외부적으론 굵직한 이슈로 광폭행보를 보이면서 내부적으론 서열문화 극복을 위한 파격조치를 단행했다. 현대자동차 그룹은 지난 9월부터 일반직 직원 호칭을 ‘매니저’와 ‘책임매니저’ 2단계로 통합했다. 호칭은 물론 직원 직급도 조정해 현행 5급 사원(초대졸), 4급 사원(대졸), 대리, 과장, 차장, 부장인 6단계에서 4단계(G1~4)로 줄였다. 5·4급 사원을 하나로 묶고 차장·부장을 통합했으며 전무 아래 임원 직급도 이사대우, 이사, 상무에서 모두 상무로 합쳤다.

이 밖에 ▲인사절대평가 도입 ▲승진 연차 폐지 ▲상시공채 전환 등 기수와 연공서열에 얽혀있는 수직적인 기업문화를 극복하고, 전문성 위주로 보다 수평적이고 자율·창의·혁신적인 분위기를 강조했다.

정 부회장은 2017년 6월 코나 출시 행사 때 청바지에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미래형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도전’정신이 중요하다 강조해온 정 부회장의 의지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정 부회장은 “현대차그룹이 살길은 정보통신기술(ICT) 회사보다 더 ICT 회사답게 변화하는 데 있다”고 강조해왔다.

지난 3월부터는 서울 양재동 본사 등 임직원들의 근무 복장도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 등 완전 자율화도 도입됐다. 이후에도 정 부회장은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현대차그룹 본사 대강당에서 직원 1200여 명을 상대로 한 타운홀 미팅에서도 “공무원 조직보다 현대자동차의 조직 간 벽이 더 높다는 얘기가 있다. 여기는 정치판이 아니다. 타 부서와 풀어나가는 노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능력이고 본부장들이 얼마나 협력을 잘하는지로 고과를 매기겠다”고 말하며 경직된 조직문화를 바꾸자고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 적극적인 소통 행보…사회공헌활동도 직접참여

정 부회장은 지난 15일 경기 화성시 현대차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2030 미래차 산업 발전전략'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2025년까지 전기차·수소전기차를 비롯해 자율주행차·커넥티드카 등에 4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올해만 벌써 11번째 만남으로 정부와도 적극적인 스킨쉽을 통해 관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다.

또한 정 부회장은 부임 이후 거의 매달 한 건씩 국내외 신기술 보유업체에 대한 투자 및 협업이 발표되고 있을 정도로 외부 기술 받아들이기에 적극적이다. 스위스 홀로그램 전문 기업 웨이레이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통해 증강현실(AR) 내비게이션 기술을 확보하고, 미국의 인공지능(AI) 전문 스타트업 퍼셉티브 오토마타, 미국 드론 분야에 ‘톱 플라이트 테크놀러지’등에 연달아 투자했다.

이외에 인도 차량호출 서비스 기업 ‘올라’, 유럽 고성능 전기차 기업 ‘리막’, 이스라엘 차량 탑승객 외상 분석 전문 스타트업 엠디고, 유럽 초고속 충전소 업체 아이오니티 등에도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 4월 네이버 CTO 출신 송창현 대표가 네이버 및 카카오 출신 핵심 기술 인력들과 함께 창업한 ‘코드42’에 전략 투자했다.

현대차그룹은 한국을 비롯, 미국, 중국, 독일, 이스라엘 등 세계 5개 지역에 설립된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를 통해 전세계 유망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와 협업, 미래차 기술 확보를 위한 스타트업 발굴에 적극나서고 있다.

정 부회장은 대외적인 사회공헌활동도 활발하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2008년부터 12년간 중국 네이멍구 사막화를 막기 위한 '현대그린존프로젝트'를 통해 네이멍구 자치구 아빠까치 차칸노르 지역 1500만평에 소금 사막을 초지로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 이 생태복원 프로젝트는 현대차그룹의 대표적 사회공헌 활동이다.

지난해 중국 사회과학원이 발표한 '기업사회책임발전지수'에서 현대차는 91.6점을 받아 삼성에 이어 외자 기업 2위로 선정될 만큼 중국현지에서도 정 부회장의 사회공헌활동이 높게 평가 받고 있다. 중국 자동차 업계에서는 3년 연속 1위다.

정 부회장은 올 초 신년사에서 “정몽구 회장의 의지와 철학을 계승하고 끊임없이 강조해온 ‘품질’, ‘안전’, ‘환경’과 같은 근원적 요소에 대해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한 치의 양보 없는 태도로 완벽함을 구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의 각오가 국민자동차의 명성을 되찾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파이낸셜투데이 박광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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