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투데이 박광신부장

‘치킨게임‘ 일명 ’겁쟁이 게임’이라고도 불린다.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절대로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서로 강력하게 보여주고 파국으로 치닫을 즈음 타협을 하는 그런 행태를 의미한다.

보험업계의 ‘실손의료보험청구 간소화’가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로 벌써 10년째 계류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7월 성명서 발표를 통해 의료기관이 왜 국민의 민감한 질병 정보를 보험회사에 직접 전송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실손보험 가입자의 진료비 내역과 민감한 질병 정보가 보험사의 진료 정보 축적의 수단으로 악용될 개연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의료계를 제외한 다른 관계자들은 실손보험청구 간소화 도입으로 인해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의료계의 과잉진료 등의 문제가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미 지난 2009년 실손보험 청구절차가 효율적이지 못하고 피보험자들에게 불편함을 준다며 제도개선 권고를 내린 바 있으며, 국회의원들은 매년 실손보험청구 간소화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있으나 계류 중이다. 이같은 일은 10년째 반복 중이다. 실제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보험업법 개정안은 총 58건이지만 본회의를 통과한 개정안은 11개에 불과할 뿐이다.

이에 복지부 등 정부 부처가 의료계 눈치만 살핀다는 비난 또한 피해가기 어려운 현실이다.

고용진 의원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와 심평원 등 부처 이기주의로 인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논의의 진도가 안 나가는 것이라고 한다. 복지부 장관이 인정하면 심평원이 중계기관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의료계의 눈치만 본다는 것이다.

이미 ‘건강보험 관련 보건의료빅데이터사업,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 사업, 요양기관 정기 현지조사 사업, 자차보험진료수가의 심사 조정 업무’ 등의 전례가 있음에도 심평원 측은 건보법 개정없이는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모양새가 돼버렸다.

실손의료보험은 현재 전 국민의 절반이 넘는 3419만명이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으로도 불린다. 하지만 번거로운 보험금 청구 때문에 특히 소액의 경우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사례들이 반복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보험사들이 도입한 인슈어테크를 활용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논의 중이지만 정작 법과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활성화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의료계는 현재 문케어에 반발해 ▲진료수가 정상화 ▲한의사들의 의과 영역 침탈행위 근절 ▲의료전달체계 확립 ▲의료분쟁특례법 제정 ▲의료에 대한 국가재정 투입 등 6대 선결과제를 설정하고 투쟁하고 있으나 실손보험청구 간소화 같은 기본적인 국민편의를 무시한다면 그 역시 국민적 공감을 사기엔 충분치 않다.

제2의 국민보험으로 성장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문제는 더이상 지체해서는 안된다. 의료업계의 주장과는 달리 보험청구 간소화 및 급여, 비급여 항목 공개는 국민들의 알 권리에 있어서 의료계가 받아들여야 할 숙명같은 것이다.

의료계가 볼모로 삼은 건 정부가 아니고 국민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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