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4일 홍콩 중심 상업지구에서 시위가 열렸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홍콩에서 발생한 민주화 시위에 세계 각국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홍콩 문제는 게임 업계까지도 번졌다. “광복홍콩 시대혁명”을 외친 하스스톤 선수를 블리자드가 징계하고 중국에 사과한 일을 두고 블리자드의 오랜 팬들이 등을 돌리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중국 자본이 영화·게임 등 콘텐츠산업을 잠식해 그 내용을 검열하고 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국이 시장 규모를 무기로 전 세계 콘텐츠산업에 검열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최근 홍콩 시위와 관련해 온라인에서는 ‘Band in China(중국에서 금지됐다는 Banned in China의 말장난)’를 통해 중국 요구에 굴복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들을 기록하고 있다.

홍콩 시위 문제가 게임 업계로 번진 것은 지난 7일 열린 블리자드의 하스스톤 e스포츠 대회 ‘하스스톤 그랜드마스터즈’ 아시아퍼시픽 대회였다. 홍콩의 프로게이머 ‘블리츠청’ 청응와이(32) 선수는 경기가 끝난 뒤 진행된 인터뷰에서 홍콩 시위를 상징하는 방독면과 마스크를 쓰고 나왔고, 홍콩 민주화를 의미하는 “광복홍콩 시대혁명” 발언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블리자드 측은 이에 청응와이 선수를 하스스톤 e스포츠의 최고 권위 대회인 그랜드마스터 출전자격을 1년 동안 박탈하고 해당 대회에서 얻은 상금을 모두 몰수하는 징계를 내렸다. 인터뷰를 진행한 캐스터 2명 역시 해고하고, 해당 영상도 삭제 조치했다.

블리자드는 ‘2019 하스스톤 그랜드마스터즈 공식 경쟁 규칙 v1.4 섹션 6.1’에 규정된 ‘공공을 불쾌하게 하는 행위 또는 블리자드의 이미지를 손상하는 모든 행위에 재량으로 그랜드마스터즈 배제는 물론 총상금을 0달러로 만들 수 있다’는 규칙에 따라 징계했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의 SNS 공식 웨이보 계정을 통해 사과하고, 북미 블리자드 포럼에서 홍콩을 거론한 사람에게 1000년 정지 처분을 했다. 또 미국에서 열린 ‘하스스톤 대학 챔피언십’에 “홍콩을 해방하고 블리자드를 보이콧하라”는 간판을 들고 온 대학생 3명에게 6개월 출전 정지와 더불어 향후 블리자드 공식 행사나 제3자가 주관하는 블리자드 대회에 출전할 수 없도록 했다. 출전 정지된 대학생들은 “원래 홍콩 시위를 지지해왔는데 마침 홍콩 시위와 관련해 중국에 고개 숙이는 미국 기업에 항의하고자 했다”며 청응와이 선수에 대한 연대 표시로 이같이 행동했다고 밝혔다.

외신들도 홍콩 시위와 중국의 대응에 주목하고 있다. 14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는 전 세계 국가와 기업들이 중국의 7가지 검열 대상인 ▲티베트 ▲대만 ▲신장위구르 ▲중국 근대사 ▲인권 ▲남중국해 ▲홍콩 등을 공개적으로 언급 금지하는 것에 어쩔 수 없이 협력해야 하는 상황이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2016년 10월 13일 홍콩에서 열린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홍보 기자회견 현장. 원작에선 티베트 승려였던 ‘에인션트 원’을 백인 틸다 스윈튼(오른쪽)이 연기했다. 사진=연합뉴스

블리자드 같은 게임사뿐 아니라 많은 기업이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 게임의 경우 특히 중국 텐센트가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게임을 서비스하는 게임사들의 대주주다. ‘리그 오브 레전드(LoL)’의 라이엇 게임즈나 ‘브롤스타즈’를 서비스하는 슈퍼셀은 텐센트 자회사다. 국내 게임사들도 텐센트에서 자유로운 상황은 아니다. 텐센트는 넷마블의 3대 주주, 크래프톤의 2대 주주이며 카카오게임즈 지분 6%, 네시삼십삼분 지분 11.46%를 가지고 있다.

홍콩 시위가 격화되자 한 중국 게임사에서는 반정부 시위 상징으로 떠오른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기도 했다. 17일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샤이닝니키’라는 게임은 지난 주말 업데이트에서 게임 캐릭터가 얼굴을 덮는 마스크를 쓰지 못하는 대신 마스크를 한쪽 귀에 걸도록 했다. 이외에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홍콩 시위대 상징인 ‘검은 옷’을 중국 당국이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배송되는 것을 막고 있다.

중국 자본의 시장 잠식은 이미 상당 수준 이뤄졌다. 글로벌 시장에 14억명이라는 많은 인구를 바탕으로 한 거대한 시장을 무기로 중국 공산당의 검열이 스며든 것이다. 대표적으로 게임 쪽에서 블리자드가 중국에 굴복한 것으로 꼽힌다면 영화 쪽에서는 디즈니·마블이 있다.

‘Band in China’에 따르면 마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 등장하는 ‘에인션트 원’은 원작에서 아시아인인 티베트 승려로 나온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백인인 틸다 스윈튼이 연기했다. 버즈피드뉴스는 2016년 닥터 스트레인지의 시나리오를 작성한 로버트 카길이 팟캐스트를 통해 “티베트를 영화에 포함시키면 중국의 10억명을 소외시킬 수 있다”고 발언해 티베트인들이 항의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렇다고 중국을 외면하기도 힘들다. 중국은 14억명이라는 많은 인구를 기반으로 문화콘텐츠산업 쪽에서 영향력을 착실히 키웠다. 앞서 애플은 홍콩 시위대가 경찰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홍콩맵닷라이브(Hkmap.live)’를 앱스토어에 등록했다가 취소했다가 다시 등록했다가 내리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은 애플에게 매출액 기준으로 세 번째 큰 시장이다. 구글도 지난 10일 홍콩 시위대를 주인공으로 하는 게임을 구글플레이스토어에서 삭제한 바 있다.

국내 기업들도 홍콩을 지지한다고 선언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간한 ‘2018 게임백서’에 따르면 국내 게임의 주요 수출 국가는 중화권이 60.5%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2017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DD, 사드) 배치 이후 한국 게임을 중국 내 서비스하기 위해 필요한 ‘판호’가 한 건도 발급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상당한 비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판호 발급이 막혀 북미·유럽으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중국 시장을 외면할 수는 없다.

블리자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 블리자드의 RTS ‘스타크래프트’ 시리즈는 e스포츠로 태동하고 전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이제 ‘민속놀이’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에서는 블리자드의 다른 RTS ‘워크래프트3’가 우리나라의 ‘스타크래프트’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워크래프트3 프로게이머 ‘Moon’ 장재호 선수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성화를 봉송할 정도로 중국 내 워크래프트3 인기는 높다. 이런 상황에서 블리자드는 ‘워크래프트3’의 그래픽과 시스템을 개선한 리마스터 버전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 출시를 앞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중국의 심기를 거스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이 나온다.

블리자드, 디즈니, 애플, NBA, 구글 등 많은 미국 기업이 중국 눈치를 보자 미국 정치권에서 강도 높은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론 와이든 민주당 상원의원은 “블리자드는 이익을 위해 중국 공산당에 얼마든지 굴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은 NBA 휴스턴 로키츠의 대릴 모리 단장이 SNS에 홍콩 시위를 지지한다고 올렸다가 글을 삭제하고 사과한 것에 관해 “NBA가 중국 시장을 위해 표현의 자유를 행사한 미국 시민을 벌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 CNBC는 “애플이나 블리자드, NBA는 각각 중국의 분노에 대처하는 방법이 달랐지만 모두 중국의 의도에 굴복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투데이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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