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부진한 이유, 의료업계뿐 아니라 정부 부처도 한몫
보건복지부, “신중히 검토해야” 의료계 눈치
심평원, “건보법 개정 없이는 어렵다” 난색
보건복지부 장관이 인정한 업무 심평원이 수행할 수 있어

사진=연합뉴스

제2의 건강보험인 실손의료보험의 청구 간소화가 10년 동안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 부처가 커다란 걸림돌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1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실손보험의 가입자 수는 올해 3월말 기준 3426만명으로 국민 3명 중 2명이 실손보험에 가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실손보험이 범국민적 보험으로 성장했음에도 보험금 청구 체계는 과거 시장 형성 단계에 도입된 체계 그대로여서 불편함과 시간 소모를 초래하는 지금의 청구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속적으로 지적돼왔다.

◆ 실손보험청구 간소화 2010년 국민권익위 권고에도 ‘수수방관’

현재는 실손보험 가입자가 보험금을 받으려면 건건이 영수증과 진료내역서, 진단서 등을 병원으로부터 발급받아 보험사에 직접 방문하거나 우편·팩스로 발송해야되는데 특히 소액청구의 경우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경우를 빈번히 발생시켜 많은 소비자들이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며 권리를 포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보험연구원이 발표한 ‘실손의료보험금 미청구 실태 및 대책’에 따르면 실손보험 가입자 중 치료를 받고도 보험금 청구를 하지 않은 이유를 조사한 결과 90.6%가 금액이 소액이어서, 5.4%가 번거롭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대부분의 실손 가입자들이 소액인 점과 보험금에 비해 절차가 번거로워 청구를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권익위원회도 2010년 보험사별 보험금 제출양식을 간소화하고 공통 표준양식 마련을 권고했으며 실손의료보험 간소화 관련 보험업법 개정안도 지난해 9월과 올해 1월 발의됐지만 지금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는 실정이다.

이 같은 상황에는 의료계 반발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이 실손보험 청구 과정에서 서류 전송업무를 맡는 것을 두고 비급여 항목을 들여다볼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급여는 건강보험 급여대상에서 제외된 진료항목으로 병원이 자체적으로 진료비용을 책정한다.

그러나 최근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지지부진한 데에 정부 부처도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보건복지부와 심평원, 의료계 눈치보며 치킨게임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심평원이 자신을 중계기관으로 해 의료기관이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전자적으로 보험회사에 전송하도록 하는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고용진 의원은 지난해 실손보험 청구 절차 간소화 관련, 계약자의 요청이 있으면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보험회사에 전자적으로 전송할 수 있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는데 이를 두고 심평원이 난색을 표한 것이다.

심평원 관계자는 “국민건강보험법 제63조 제1항 제5호에 따라 위탁업무는 건강보험 이외의 다른 법률에 대해 급여비용의 심사 또는 평가업무로 한정돼 있어 개정안이 위탁하는 내용은 건보법 개정 없이는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

보건복지부도 의료계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 고용진 의원의 주장이다. 다수의 실손보험 가입자의 편익이 걸린 문제에 보건복지부가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요양급여의 심사, 평가와 관계없이 실손보험 계약자 등과 의료기관, 보험회사 간 서류의 전송과 관련한 업무를 위탁하는 것은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고용진 의원은 보건복지부와 심평원 등 부처 이기주의로 인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논의의 진도가 안 나가는 것이라고 봤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인정하면 심평원이 중계기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고용진 의원은 “국민건강보험법 제63조 제1항 제6호는 건강보험과 관련해 보건복지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업무를 심평원이 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미 여기에 해당하는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면서 “건강보험 관련 보건의료빅데이터사업,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 사업, 요양기관 정기 현지조사 사업, 자동차보험진료수가의 심사 조정 업무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실손보험의 보험금 청구를 위한 진료비 관련 서류는 급여와 비급여 정보가 모두 나타나 있기 때문에 이를 전송하는 업무가 건강보험과 관련이 없다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매우 깊이 관련돼 있어 보건복지부 장관이 업무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심평원은 별도의 건보법 개정없이 건보법 제63조 제1항 제6호를 근거로 서류 전송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 고용진 의원 측 주장이다.

이같이 보건복지부와 심평원 등 정부 부처가 의료계 눈치 보기에 급급하고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사이 20대 국회에서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관련 법안 처리가 무산된다면 내년 총선 정국 이후 재논의가 이뤄지기까지 최소 2~3년 이상 걸려 그동안 소비자만 불편함을 겪을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관련 문제가 불거진 지 10년이 다 돼가도록 해결이 안 된 것은 정부 부처의 이기주의 때문이 맞다. 여기에 더해 보험업계와 의료업계 등 관련 업계의 이기주의도 마찬가지”라고 비판하면서 “소비자와 국민이 주인이라는 마인드가 아직 형성되지 않아 그런 것으로 소비자와 국민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협의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실손보험 청구화 간소화는 시민단체에서도 시급히 개정을 촉구한 바 있다. 금융소비자연맹과 녹색소비자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9개 시민단체는 지난 7월 공동 성명을 내고 “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더이상 지체할 수 없는 중요한 민생 문제”라며 국회에 조속한 법안 처리를 촉구했다.

파이낸셜투데이 이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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