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임정희 기자

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등의 국책은행 본점을 지방으로 이전하자는 주장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금융권 내부가 아닌 정치권에서 말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국책은행의 본점을 서울이 아닌 지방으로 이전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하고 있다. 현재 중소기업은행법과 한국수출입은행법, 한국산업은행법에 따르면 이들 은행의 본점 소재지는 서울로 명시돼있다.

지방 이전의 명분은 ‘형평성’으로 주요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돼있는 것을 개선하고 균형 잡힌 지역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주요 시설을 지방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균형 발전이라는 표면적인 이유 이면에 총선을 앞둔 정치인들의 ‘표심 잡기’ 속셈이 있다는 지적이 다분하다.

지난달 30일 ‘국책은행 지방 이전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개최된 토론회에서 김형선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 위원장은 “국책은행 지방 이전이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책은행의 지방 이전과 관련한 가장 큰 문제는 국내 금융산업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미중 무역분쟁과 홍콩사태, 일본과의 경제적 갈등 등의 발생으로 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외 여러 유관기관과 금융사의 협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프라가 취약한 지방으로 국책은행을 옮긴다면 해당 은행뿐 아니라 금융권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이미 위로부터 인위적인 금융 인프라 분산은 여러 사례를 통해 한계를 드러낸 바 있다. 영국 컨설팅그룹인 지옌(Z/Yen)이 발표하는 세계 주요 도시에 대한 국제금융센터 지수(GFCI) 순위에 따르면 서울은 지난 3월 112개 도시 중 36위에 랭크되는 데 그쳤다. 해당 조사는 세계 주요 도시의 금융경쟁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서울은 2015년 9월 6위로 최고 순위를 받은 뒤 계속해서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부산은 2009년 여의도 뒤를 잇는 제2의 금융 허브로 지정됐지만 여전히 금융중심지로서 존재감은 미미하다. 부산 역시 2015년 3월 GFCI 순위에 24위까지 올랐지만 지난 3월에는 46위까지 추락했다.

금융경쟁력 하락에는 2014년부터 부산과 대구, 전주로 주요 금융 공공기관이 이전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 인프라가 풍부한 서울을 중심으로 금융산업을 집중적으로 키워야 하는데 금융 공공기관을 분산함으로써 금융경쟁력이 약화됐다는 것이다. 2014년 한국주택금융공사와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예탁결제원 등이 부산으로 본점을 이전했으며 신용보증기금은 대구로 국민연금공단은 2015년 전주로 본점을 옮겼다.

특히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는 지방 이전 후 퇴사자가 속출하는 것은 물론 구인난까지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사고 있다. 과연 균형 발전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한 번 옮긴 본사는 다시 옮기기 쉽지 않으며 그에 따른 리스크를 감당하는 것도 정치인이 아닌 해당은행의 몫이다. 또한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균형 발전이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떨어트림으로써 수도권과 지방의 하향평준화를 이뤄내자는 것도 아닐 것이다.

따라서 정치권은 단순 논리에 따른 정책이 아니라 지방 시설을 확충하고 지역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고도화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여건만 좋다면 그때는 은행들 스스로 지방 이전을 고민할테니 말이다.

파이낸셜투데이 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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