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금융위원회가 보험업법 감독규정에 의료자문 관련 내용을 신설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즉, 감독규정에 ‘의료자문 설명의무 강화’ 조항을 신설해 ‘보험회사가 보험금 심사·지급 단계에서 의료자문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보험금을 감액 또는 부 지급하는 경우 소비자의 알 권리 보호 및 분쟁 방지를 위해 의료자문 내용을 소비자에게 설명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소비자에게 의료자문에 대한 설명을 강화하는 것이므로 일견, 소비자에게 좋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속내와 현실을 살펴보면 정반대로 답이 아니다. 소비자에게 불리한 영향을 미쳐 오히려 권익을 침해할 것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금융위의 조치는 발상부터 잘못됐고 보험사들의 입김에 휘둘려 주객이 전도됐다. 본질을 감추고 곁가지를 본질인 것처럼 왜곡하고 이를 미사여구(설명 강화)로 포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아니라 보험사를 지원하려는 의도가 바탕에 깔려 있으므로 소비자에게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다.

속 내용은 이렇다. 보험가입자가 약관에 정한 보험사고(질병, 재해) 발생 시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해서 수령하는데, 일부 보험사들이 근거도 없는 보험사 자문의(自問醫) 소견서를 이유로 보험금을 일방적으로 거절하거나 삭감해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 경우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의사로부터 의학적 소견을 듣는 것을 의료자문이라 하는데, 2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현행 생명보험 표준약관에 정한 방법으로 ‘보험수익자와 보험회사가 사망보험금, 장해 보험금, 입원보험금 등의 지급사유에 대하여 합의하지 못할 때는 양자가 함께 제3자(의료법 제3조에 정한 종합병원 소속 전문의)를 정하고 그 의견을 따를 수 있으며, 보험금 지급사유 판정에 드는 의료 비용은 보험회사가 전액 부담합니다’가 있다. 분쟁 발생 시 이에 따라 처리하면 되는데, 문제는 이를 제대로 설명하는 보험사(보험설계사)가 없고 아는 소비자도 거의 없다.

둘째, 보험사들이 위촉한 자문의로부터 소견을 들어 보험금 지급여부를 판정하는 방법이다. 많은 보험사들이 보험사 자문의 소견서를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 삭감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많은 가입자들이 멀쩡한 보험금을 떼이는 사례가 속출해 왔고, 분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

많은 보험사들이 환자 주치의가 발급한 진단서를 외면한 채 보험사 자문의 소견서에 따라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고 있는데, 보험사 자문의 소견서가 당초부터 부당한 이유는, 첫째, 보험사 자문의 소견서는 보험금 거절·삭감의 근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험약관에 근거가 없고 다른 법규에도 없다. 보험사들은 겉으로 “자문의 소견서가 진단서 등이 아니라 단순히 ‘참고자료’로만 활용되고 있다”고 변명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는 자문의 소견을 보험금 거절, 삭감 수단으로 버젓이 악용하고 있다.

둘째, 보험사 자문의 소견서는 공정성, 객관성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 자문의는 보험사들이 돈(자문료) 주고 고용한 용병(傭兵, mercenary)들이므로 팔은 안으로 굽는다. 보험사에 유리한 내용으로 소견을 작성하고 있으므로 보험사들이 이를 통해서 ‘보험금 후려치기’와 보험금 거절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이다.

셋째, 의사의 직접 진찰을 강제한 ‘의료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위법행위이고 의료인 윤리를 망각한 것이기 때문이다. 보험사 자문의는 환자를 한 번도 보지 않은 유령의사(자문의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보험사가 보낸 서류만으로 소견서를 작성함)이므로 의료법 위반에 해당되고 보험사 요구대로 보험사에 유리하게 소견서를 작성하게 되므로 의료인 윤리를 망각하는 것이다.

넷째, 보험계약자가 내는 보험료가 보험금 삭감·거절하는 비용(자문료)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부메랑이므로 황당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다. 보험사들은 연간 7만7900건(2017년 기준)의 의료자문을 의뢰하였고, 자문의에게 건당 30만~100만원의 자문료를 지급하여 연간 150~180여억 원을 지급하였는데, 이 돈은 모두 계약자들이 낸 보험료다.

다섯째, 보험사의 주된 의무(보험금 지급)를 의도적으로 회피한 것이므로 계약(약관) 위반이고 불공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도 모자라 일부 보험사는 몸이 아파서 고생하는 환자에게 툭하면 보험사기범으로 몰아 겁박하기도 한다.

사정이 이러한데 소비자를 보호해야 할 금융위가 애써 감독규정에 자문의 관련 근거를 마련 하겠다며 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설명의무 강화’라고 말하며 추진하고 있으니 겉과 속이 다른 것으로 경악할 수밖에 없다. 금융위가 속내를 감추며 미사여구로 포장할 것이 아니라 정직해야 한다. 자문의 소견서는 보험사 내부 판단용이므로 극히 제한적으로만 사용되어야 하고 보험금 거절의 이유로 사용할 수 없도록 이를 감독규정이나 보험업법에 명문화하는 것이 먼저다. 그래야 자문의 소견서로 인해 선량한 가입자들이 억울하게 피해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위가 진정 소비자 보호 의지와 역량이 있다면 우선 해야 할 일은 ①보험사에게 약관에 명시된 현행 제도(제3의 종합병원 재 진단)를 소비자들에게 적극 알려서 올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것이다. 이를 외면한 채 보험사 자문의 근거를 일부러 감독규정에 넣어 불법을 합법화시키는 일이 아니다. 소비자 우롱하는 ‘의료자문 설명의무 강화’를 철회해야 하는 이유다. ②공정성과 객관성이 확보되는 별도의 자문의 기구를 구성, 운영해야 한다. 등이 가려우면 등을 시원하게 긁어 줘야 믿음이 간다. 다리를 등이라고 현혹하며 긁지 말아야 한다.

최근에 일부 국회의원도 보험사 의료자문 시 의료자문 기관의 피보험자 직접 면담 심사를 의무화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한다. 보험사가 의료자문을 통해 보험금을 감액하거나 지급하지 아니하는 경우 해당 의료자문 기관이 피보험자를 직접 면담하여 심사하도록 한다는 것인데, 약자인 가입자가 자문의와 면담하더라도 면담이 온전히 진행될 수 없다. 소비자들에게 큰 피해가 우려되는데, 이런 일을 국회가 나서고 있다니 안타깝고 황당하다.

금융위의 ‘의료자문 설명의무 강화’는 누가 봐도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다. 본질을 감추고 보험금을 삭감, 부지급하기 위한 근거를 만들어 주는 것이고 나아가 보험금 후려치기(도둑질)를 합법화해 주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만약 경찰이 도둑질을 합법화 해 놓고 도둑들에게 도둑질을 해도 된다고 국민(소비자)들에게 잘 설명하라고 한다면 과연 옳은 일일까? 금융위는 소비자(국민)를 위한 조직이지 보험사 돈벌이를 지원하는 조직이 아니다. 헷갈리지 말아야 한다.

오세헌 보험소비자원 국장

파이낸셜투데이

www.ftoday.co.kr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