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비리 전·현직 간부 4명, 1심서 집행유예
재판부 “공공기관 아니고 개인 청탁 아닌 점 고려해 양형”
은행권 채용비리 방지 관련 법안도 계류 중

광주은행 본점. 사진=JB금융그룹

채용비리로 기소된 광주은행 전·현직 간부 4명이 1심 재판에서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들은 면접 점수를 조작하고 자녀의 채용 면접에 직접 면접관으로 참여하는 등 채용 공정성을 해쳤지만 형이 집행유예에 그쳐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더불어 국회에 제출된 은행권 채용비리 방지 관련 법안은 계류 중으로 알려져 후속 조치가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채용 공정성 해쳤지만”…양형해 집행유예 선고

지난 22일 광주지방법원은 광주은행 전·현직 간부 4명에게 각각 징역 6개월~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앞서 이들은 2015년, 2016년 신입사원 채용 시 면접 점수를 조작해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이들은 재판에서 지역 안배와 성별·대학별 균형을 고려한 조치로 채용 청탁 및 부당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두 명의 간부는 2015년 신입사원 채용 당시 면접 점수를 조작했다. 서류 합격자를 대상으로 하는 1차 면접이 완료된 이후 A씨는 부하직원에게 불합격한 응시자의 점수를 조작할 것을 지시했다. 부하직원은 해당 응시자의 PT면접 점수를 올려줬고 이로 인해 1차 면접 합격자 1명은 불합격자로 떨어졌다.

B씨는 자신의 딸 면접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B씨의 딸이 광주은행 신입사원 채용에 지원하자 A씨는 1차 서류 전형에서 자기소개서를 만점으로 통과시켰다. 이후 B씨 딸의 1차 면접에서 A씨가 면접관으로 참여했고 2차 면접에서는 B씨가 직접 면접관으로 참여했다. B씨는 2차 면접에서 본인의 딸에게 최고점수를 준 것으로 파악됐다.

2016년 채용에서도 점수조작은 계속됐다. C씨와 D씨는 1차 면접 이후 응시생들의 점수를 조작해 12명의 합격자를 불합격자로, 9명의 불합격자를 합격자로 둔갑시켰다. 이 과정에서 면접 점수 평가표까지 수정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또한 2차 면접 이후에도 불합격한 응시자의 면접 점수를 올려 합격시키기도 했다.

결국 이 같은 사실은 검찰 조사를 통해 밝혀졌으며 광주지검은 지난해 6월 4명의 간부에 대해 구속 및 불구속기소했다. 이후 지난 5월 광주지검은 징역형을 4명에 대해 각각 6개월부터 1년 6개월까지 징역형을 구형했으나 재판부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채용의 공정성은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로 대두되고 있다. 취업난 속 이 같은 범죄는 일반 지원자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줄 수 있다”며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광주은행이 공공기관은 아니고 개인적으로 청탁받은 것은 아닌 점, 과거 관행을 따라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기는 어려운 점을 고려했다”며 양형의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해 2월 검찰은 채용비리 수사를 위해 광주은행 본점을 압수수색했다. 사진=연합뉴스

◆솜방망이 처벌에 취준생은 ‘분노’

집행유예 판결에 일각에서는 채용비리에 대한 처벌 수위가 더 높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광주은행을 포함해 신한, 국민, 하나, 우리, 부산, 대구은행 등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불거지면서 은행권 내 만연한 채용비리가 사회적 문제로 지적된 바 있다.

하지만 채용비리로 재판에 넘겨진 임원 및 인사 담당자 상당수가 광주은행과 같이 집행유예나 벌금형 등을 선고받았다.

취업준비생 A씨(24살)는 “채용에서 비리를 저질렀음에도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받았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난다. ‘안 들키면 그만, 들켜도 솜방망이 처벌’ 이런 식이면 나라도 내 자식들 채용시키고 비리 저지를 거 같다”며 “이번에 밝혀진 은행권 채용비리 사태를 계기로 채용비리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져야 하고 법과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취업준비생 B씨(25살)는 “취준생 입장에선 억울한 판결이다”며 “비리로 채용된 직원들도 짤리지 않고 은행 잘 다니지 않느냐. 그런데 채용 비리를 저지른 직원들마저 약한 처벌을 받았다는 게 화날 뿐이다”고 분노를 성토했다.

실제로 2015년과 2016년 채용비리에 얽혀 입사한 직원들에 대해 따로 은행 차원의 조치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광주은행 관계자는 “채용 비리로 얽혀 입사한 직원 중 그만둔 직원도 있다. 그만두지 않은 직원은 은행에 재직 중이다”며 “채용비리 이후 외부 인사를 채용 과정에 참여시키는 등 개선책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은행권 채용비리 관련 법안 아직도 ‘계류 중’

은행권에서는 채용비리 사태가 불거지고 난 뒤 자정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은행연합회는 채용절차 모범규준을 마련했고 은행들도 블라인드 채용 등을 강화했다. 일부 은행은 외부 업체에 채용을 위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은행권의 채용비리를 강력하게 규제할 수 있도록 하는 법령 개선은 미흡한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은행 채용비리와 관련해 제출된 법안은 모두 계류 중이다.

대표적으로 김관영 의원과 손금주 의원, 심상정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이 계류 중이다. 김관영 의원과 손금주 의원은 투명하고 공정한 채용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방안에 초점을 맞췄고 심상정 의원은 채용과 관련된 부정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도록 했다.

그 밖에도 심상정 의원의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과 심상정 의원과 장정숙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에 통과하지 못했다. 또한 이학영 의원과 추혜선 의원이 채용비리와 관련한 대주주의 책임을 더욱 강화하도록 한 ‘금융지주회사법 일부개정법률안’도 국회에 묶여있는 상황이다.

파이낸셜투데이 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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