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파산 막을 수 있었다” 눈 감은 금감원
2011년 잊은 감독 당국…저축은행 부동산 PF 대출 급증

저축은행 부실사태가 발생하기 2년 전에 이를 막을 수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검찰이 부산저축은행의 불법 투자 정황을 포착했지만 금융감독원의 소홀한 관리, 감독이 사태를 키웠다는 주장이다. 사진은 김양 당시 부산상호저축은행 대표이사의 진술조서.사진=독자 제공

대규모 피해자를 양산한 저축은행 부실사태가 벌어진지 8년이 지난 가운데 도산 발생 2년 전인 2009년에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는 의견이 나왔다. 검찰이 부산저축은행의 불법 투자 정황을 포착했지만 금융감독원이 이를 묵인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저축은행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잔액은 매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저축은행 사태 악몽이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파이낸셜투데이가 입수한 ‘김양 당시 부산상호저축은행 대표이사 외 6에 대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 피고사건에 관한 참고자료’에 따르면 금감원이 저축은행 사태 전인 2009년 부산저축은행의 불법적인 투자 행위를 확인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해당 자료는 당시 배임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의 사건기록으로 김양 대표이사, 강성우 감사, 성종기 이사 등의 진술조서가 포함돼 있다.

김 대표이사는 당시 진술조서에서 자산공사에 매각한 부실채권은 모두 PF 대출채권이냐는 검사의 질문에 “영남알프스 관련 PF 대출채권이 포함돼 있는 것 외에는 다른 내용은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이어 검사가 “영남알프스 관련 PF 대출채권이라고 했는데 저축은행에서 울산 울주군 두서면 인보리에서 골프장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생긴 채권이냐”고 묻자 “맞다”고 답하며 “저축은행에서 직접 개발사업을 한 것으로 실질적으로는 PF 대출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대출형식으로 돼 있다는 것이 의미를 구체적으로 묻자 “저축은행은 금융기관으로서 직접 수익사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겉으로는 골프장 개발사업을 하는 영남알프스컨트리클럽(영남알프스)을 설립한 후 위 영남알프스가 PF 대출을 받아 개발사업을 하는 것처럼 돼 있다”며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저축은행에서 직접 사업을 했다는 뜻이다”고 설명했다.

겉으로는 PF대출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사실상으로는 저축은행에서 대출형식을 빌어 직접 골프장 개발사업을 했다고 김 대표가 인정한 것이다.

강성우 감사도 해당 사실을 인정했다. 강 감사는 부산상호저축은행과 부산2상호저축은행 및 중앙은행에서 PF 대출채권 중 부실채권을 한국자산관리공사에 1~2차에 걸쳐 매각했고 1차 매각분은 모두 PF 대출이고 2차 매각분은 외관상으로 PF 대출인 것처럼 돼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부산저축은행이 법인을 설립해 직접 골프장 개발사업을 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해당 업체에서 PF 대출을 받는 형식을 띠고 있다고 진술했다.

강 감사는 “해당 법인 설립과 운영을 모두 부산저축은행에서 했다”며 “금융기관이 수익사업을 할 수 없어 법인을 세워서 추진했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해당 법인의 명의는 부산저축은행 임직원의 친인척이나 지인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영남알프스에 투자한 A씨의 진술서를 보면 “부산상호저축은행에 근무하는 매형으로부터 두서면 일대에 골프장 사업을 추진 중인 토지가 있는데 자본금 없이 모든 대출은 상호저축은행 측에서 다 해줄테니 추후에 골프장 사업이 개발되면 토지를 되팔면 많은 이익이 발생한다”며 “괜찮은 투자인 것 같은데 한 번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사건 담당 검사는 의견서를 통해 “은행원들인 피고인들이 시행사 리스크를 줄인다는 미명 아래 직접투자사업을 하면서도 대출할 때보다도 낮은 정도의 안전조치를 취해 은행에(결국 소액의 예금자들에게) 손해를 끼칠 위험을 주었다는 것이 사건의 핵심이다”고 분석했다.

이어 “피고인들과 같이 은행이 아무런 견제나 검토를 받지 않고 예금주들의 돈을 가지고 마음대로 투자사업을 벌일 수 있다면 이는 도덕적 해이가 극치에 이르고 그 피해는 결국 소액의 예금주인 국민들이 진다고 할 것이다”고 비판했다.

김양 등 피고인들이 은행에 예치된 고객의 돈을 갖고 직접투자사업을 하면서 부동산 명의대여 등의 불법행위를 자행했다는 것이다. 당시 1심 재판부는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지만 2심에서는 배임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다만 2심 재판부도 저축은행의 업무 범위를 넘어 골프장 사업을 추진하는 등 상호저축은행법 등 4개 법령을 위반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당시 금감원 등 당국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이들이 감독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해당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지 못해 저축은행 사태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저축은행 사태 발행 이후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큰 폭으로 늘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5조원을 넘겼다.표=파이낸셜투데이

각종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저축은행 사태 발생 이후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급증했다. 장병완 민주평화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74개 저축은행의 지난해 말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총 5조1962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기준 대출규모는 OK저축은행이 4314억원으로 가장 컸다. 이어 한국투자저축은행(3624억원), 모아저축은행(2641억원) 순이었다. OK저축은행과 함께 업계 빅3로 꼽히는 SBI저축은행(1643억원)과 OSB저축은행(1442억원)은 각각 8위, 12위를 기록했다.

이는 저축은행 사태가 발생한 2011년 이후 큰 폭으로 증가한 수준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13년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2조1000억원이었지만 지난해 말 5조2000억원으로 확대됐다.

저축은행 여신액 역시 치솟았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저축은행의 여신 총 잔액은 60조8384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4월(60조1204억원) 2011년 5월 이후 7년 11개월 만에 60조원을 돌파한 이후 3개월 연속 60조원대에 머물렀다. 수신 잔액도 지난 1월 60조원을 돌파하는 등 저축은행 부실사태로 떠난 고객들이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집값 안정화를 이유로 각종 규제책을 내놓고 오는 10월 분양가상한제 시행까지 앞두면서 부동산경기가 둔화하자 부실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노지현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2019 산업 전망 및 산업위험 평가-저축은행’ 보고서를 통해 “저축은행은 금융위기 이후 부실자산 정리에 따른 자산 건전성 개선 이후 적극적인 영업확대로 총자산은 증가세로 전환됐지만 영업경쟁력이 미흡해 신규사업 영역으로의 확대가 이뤄지지 못하고 주로 부동산담보부대출을 중심으로 자산확대가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부동산관련업대출 비중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지속함에 따라 저축은행 실적은 부동산 경기 변동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파이낸셜투데이 김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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