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철원 이은 세 번째 개장…남북 군사대치의 최접점 ‘파주’
임진각~생태탐방로~도라전망대~철거GP, 총 21km 코스 구성
철거 GP 첫 공개, 냉전 시대 비극 고스란히 느껴져

생태탐방로 초입. 사진=한종해 기자

‘파주 비무장지대(DMZ) 평화의 길’이 8월 10일 열렸다. 지난 4월 고성, 6월 철원에 이어 파주 구간이 개방됨으로써 정부가 추진하는 ‘DMZ 평화의 길’이 모두 개방됐다.

DMZ는 세계 유일의 분단 지역으로, 60년 세월 동안 분단됐던 남북의 현실을 조명한다. 군사적 충돌 위험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최근 DMZ길을 개방하며 ‘실질적 평화지대’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파주는 지난해 철거한 경계초소(GP)를 직접 방문할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

파이낸셜투데이는 지난 16일 오후 2시 파주 DMZ 둘레길을 방문했다. 임진각관광지로 이미 유명한 이곳은 앞서 방문한 고성·철원과 달리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통일대교 마주한 ‘생태 탐방로’를 걷다

파주 DMZ 평화의 길은 임진각관광지에서 출발해 약 1.4km의 생태탐방로를 걷는 것으로 시작된다. 도보길을 마치면 버스에 탑승해 도라전망대와 철거GP를 차례로 방문하는 코스다. 전체구간은 약 21km, 소요시간은 3시간 가량이다.

파주 구간은 다른 두 곳과 달리 더욱 엄격한 통제가 이뤄졌다. 20명의 참가자들은 신분증을 목에 걸고 구간마다 장병들의 검사를 받아야 했다. 동행한 안내사에 따르면 차량에는 민수용 방탄복과 헬멧이 비치돼 있었고, 응급환자 발생 시 긴급 출동할 수 있는 체계도 갖춰져 있었다.

생태 탐방로는 참가자 의사에 따라 도보 또는 차량 이동을 선택할 수 있다. 오후 2시의 강렬한 햇볕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참가자는 도보 이동을 택했다. 직접 탐방로를 걸으며 아픈 역사의 흔적을 되새기고, 저마다 장소성을 부여하려는 마음은 비슷한 듯했다.

철문을 열고 들어선 탐방로에는 ‘평화로 가는 길, 이제 시작입니다’는 문구와 함께 작은 비둘기 모양의 조형이 관광객들을 반겼다. 양옆으로 늘어선 철조망은 앞서 방문했던 DMZ 길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임진강 위로는 관광객을 위한 케이블카 공사가 한창이었다. 해설사는 “케이블카 공사는 내년 1월 말 완료될 예정이다. 그때부터는 임진강을 건너 미군 주둔지였던 캠프 그리브스 관광이 가능할 것”이라 설명했다.

생태 탐방로 정면에는 통일대교가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다. 통일대교는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에서 군내면을 잇는, 임진강을 건너는 다리다. 1998년 6월 15일 개통된 이곳은 故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개통 이튿날 소떼를 몰고 방북해 유명세를 얻었다.

통일대교는 생각보다 많은 차가 오가고 있었는데, 해설사에 따르면 통일촌 마을로 향하거나 농사를 짓는 사람들, 혹은 관광버스 등이었다. 농업활동을 하는 이들은 ‘영농패스’를 받아야만 통일대교를 건널 수 있다고 한다.

30분가량 걸어 도착한 통일대교부터는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도라전망대로 가는 길목에서 비행월경방지판인 ‘030’ 표지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표지판은 강원도 고성까지 수백 개가 놓여져 있는데, 헬기 조종사들이 군사 분계선을 넘을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된 것이다.

◆태극기·북한국기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도라전망대’

파주 DMZ 구간에는 2개의 전망대가 있다. 하나는 지난해 10월 신축돼 현재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구간, 또 다른 하나는 지난해 폐쇄된 구 전망대다. 구 전망대에 차량을 주차한 뒤 가파른 길을 걸어 신 전망대로 이동했다.

새로 지어진 곳답게 도라전망대 내부는 넓고 쾌적한 공간을 자랑했다. 큰 유리창 너머 넓게 펼쳐진 초록 풍경은 남방한계선 철책과 대비돼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북한국기(인공기)가 왼편에, 태극기가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다. 사진=한종해 기자

시선을 조금 더 북쪽으로 옮기자, 사천강 너머 북한국기가 눈에 띄었다. 해설사는 “북한 국기가 걸린 곳은 선전마을인 기정동이다. 저녁 시간이면 불이 동시에 들어왔다가 일정 시간에 다시 동시 소등되곤 한다. 이동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마을이라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정동 맞은편에는 우리나라 대성동의 태극기가 마주하고 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펄럭이는 두 깃발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겸허한 마음이 들었다. 4월부터 차례로 DMZ둘레길을 방문했지만, 도라전망대에서 본 이 장면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었다.

개성공단과 개성시, 송악산을 더 자세히 보려면 3층 전망대의 망원경을 이용하면 된다. 이곳에는 무료로 이용 가능한 망원경이 여러 개 놓여 있기 때문이다. 맑은 날에는 개성공단의 높은 건물 꼭대기까지 훤히 볼 수 있다.

◆‘철거 GP’, 남북 갈라놓은 철조망이 평화의 종으로

전망대를 뒤로하고 파주 DMZ 구간의 핵심, 철거된 감시초소(GP)로 향했다. GP는 한국전쟁 이후 비무장지대에 설치된 것으로 경비병이 적의 행동을 감시하기 위해 근무하는 곳이다.

철거 GP 평화의 종. 사진=파주시청

지난해 남과 북은 비무장지대를 실질적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해 GP 11개를 시범적으로 철거했다. 파주 철거 GP는 그중 보존된 한 곳으로, 북한 땅을 약 700m 앞에서 조망할 수 있다.

GP로 오르는 길에는 6·25전쟁 당시 흔적을 보여주는 시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금은 뼈대만 남은 장단면사무소의 외벽에는 총탄 자국이 선명했다. 덩그러니 놓여 있는 장단면사무소를 바라보니 전쟁 당시의 참혹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해설사는 “수풀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근처에 이른바 ‘죽음의 다리’라 불리는 곳이 남아 있다. 중공군에 의해 한국군이 몰살당한 아픈 역사가 담긴 곳이다”고 설명했다.

무장 차량을 선두로 버스는 남방한계선을 넘었다. GP에 오르기 전 관광객들은 휴대 물품을 모두 보관소에 반납해야 했다. 사진 촬영도 물론 금지됐다. 관광객이 머무는 동안 장병들은 총구를 겨눈 채 삼엄한 경비를 펼쳤다. 최근 파괴된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GP에는 무성한 흙만이 가득했다.

이곳의 유일한 구조물은 고성에서도 보았던 ‘희망트리’와 ‘DMZ 평화의 종’이었다. 평화의 종은 안규철 작가가 GP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나온 철을 녹여 만든 것이다. 남과 북을 갈라놓았던 철조망이 평화를 상징하는 종소리로 바뀌어 가는 현장이었다.

가까운 곳에 북측 GP도 있었으나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해설사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지대가 높아 대부분의 시설이 지하에 마련돼있었다고 한다. 이곳을 끝으로 파주 DMZ 평화의 길 관광은 모두 마무리됐다.

생태 탐방로로 들어서는 초입에는 ‘망배단’이 마련돼있다. 실향민들이 매년 명절이면 방문해 고향의 그리움을 달래는 곳이다. 철거 GP에서 바라본 풍경을 떠올렸다. 손에 닿을 듯 가까운 북녘땅을 아직도 밟지 못하는 실향민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도 같았다. DMZ 평화의 길이 남북 주민의 마음을 포용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하기를 기대해 본다.

파이낸셜투데이 김민희 기자

<고성·철원·파주 ‘DMZ 둘레길’ 투어를 마치며>

4·27남북정상회담 1주년인 지난 4월 27일, ‘고성 비무장지대(DMZ) 평화의 길’을 시작으로 6월 1일 ‘철원 DMZ 평화의 길’, 8월 10일 ‘파주 DMZ 평화의 길’이 개방됐습니다. 정부의 평화통일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DMZ 평화의 길’은 DMZ 접경 10개 지자체를 경유하는 약 500km의 도보여행길 조성 사업입니다.

<파이낸셜투데이>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킴과 동시에 평화통일 염원이라는 뜻을 함께한다는 의미로 지난 5월 16일 고성 구간을 시작으로, 6월 12일 철원 구간을 거쳐, 8월 16일 파주 구간까지 현재까지 개방된 ‘DMZ 평화의 길’ 모든 구간을 다녀와 평화와 긴장의 공존을 기사에 담았습니다.

남북 마음의 장벽 허무는 고성 ‘DMZ 평화의 길’
https://www.f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8828

평화와 긴장이 공존하는 곳, ‘DMZ 평화의 길’을 걷다
https://www.f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9400

‘파주 DMZ’, 철거 GP에서 북한 땅을 조망하다
https://www.f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0789

올해 봄 ‘DMZ 둘레길’ 투어를 위해 꾸려진 <파이낸셜투데이>의 특별취재팀은 어느덧 여름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그동안 민간에 개방된 ‘DMZ 둘레길’의 모든 구간을 다녀왔지만 특별취재팀은 해체하지 않았습니다. “평화로 가는 길, 이제 시작입니다”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겨우 시작을 함께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파이낸셜투데이>는 한반도의 동서가 한줄기로 연결되고,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마침내 평화통일의 그 날이 올 때까지의 여정을 늘 함께하겠습니다.

파이낸셜투데이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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