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모호한 정보 전달 아닌 대상별·상황별 구체적 예방수칙 개발보급
취약계층 실태조사 통한 예산확보 및 범정부차원 지원책 마련 주문

사진=배수람 기자

기후변화 등으로 폭염 강도 및 일수 등이 증가하는 가운데 주거취약계층의 실질적인 생활·관리 지원방안 마련을 위해 각계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댔다.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폭염으로 인한 주거취약계층의 온열질환 현실과 건강권·인권보장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서형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윤소하 정의당 의원, 2·18안전문화재단, 反빈곤네트워크, 빈곤사회연대, 인권운동연대가 공동주최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윤소하 의원은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사망자 48명 가운데 70.8%가 65세 이상 고령자였다”며 “사망 발생장소는 실내·집이 31.3%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폭염으로 인한 희생자의 대부분은 이른바 쪽방, 고시원 등 비적정주거에 거주하는 노인과 빈곤층인 셈이다”고 말했다.

이어 서형수 의원은 “재난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의 가치는 모두 같은데 반해 폭염은 사회·경제적 능력, 빈부격차에 따라 그 위험에 대한 노출과 취약성에 큰 차이가 나는 특징이 있다”며 “정부차원에서 최대한 폭염 피해를 예방하고, 특히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체계를 갖추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황승식 서울대보건대학교 교수는 기후변화에 따른 폭염 발생빈도는 2050년까지 2~6배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이로 인한 건강영향을 경감할 수 있도록 연구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황 교수에 따르면 지난해 폭염특보가 집중 발효된 7월 15~22일 온열질환자는 648명(사망자 11명)이 발생했으며 7월 29일~8월 4일에 1104명(사망자 13명)이 집중 발생했다. 연령별로는 40대(167명·17%)가 가장 많았으며 50대(166명·16.8%), 70대(151명·15.4%)가 뒤를 이었다. 이에 정부는 폭염 피해 최소화를 위해 지난해 ‘2018 범정부 폭염대책’을 발표하고 4대 분야, 15대 추진과제로 나눈 폭염 대책을 실시한 바 있다.

사진=배수람 기자

황승식 교수는 “폭염 시 (정부의) 대응은 활발하게 이뤄졌으나 폭염 전 대응은 제한적이었다”며 “각 부처간, 지자체와 각 민간단체와의 연계가 부족하거나 무더위 쉼터 운영에서 접근성 및 정보 제공이 미흡한 문제점 등이 나타났다. 폭염 경보 메시지 내용 및 전달체계에서도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취약계층의 폭염 인지율이 낮은데 각 대상에 맞는 폭염 예방수칙 보급이 아닌 일반적이고 모호한 정보 전달에 그쳐 예방수칙 실천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결국 대상별, 상황별 구체적인 예방수칙의 개발 및 보급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황 교수는 일본,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외국 폭염 대응 사례를 들며 정부차원에서 현재의 감시체계를 능동적 감시체계 성격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가령 감시체계를 위한 인력이나 수고비 지원은 어렵더라도 지자체의 관리, 감독 기능은 강화하는 방안 등이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 예산 확보도 필수적이다.

황 교수는 “온열질환 감시체계를 혹서기에는 매일 운영하고 기존 에너지바우처가 아닌 쪽방에 거주하는 취약계층을 고려한 폭염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농업 종사자, 건설현장 노동자 등을 위해서는 에어컨, 얼음과 함께 식수를 충분히 제공하는 등 근로자를 위한 냉방시설 개선, 폭염특보가 내려질 때 노동을 하지 않도록 현장을 닫는 등 공사기간 관련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민철 대구쪽방상담소 소장은 주거취약계층이 혹서기 온열질환에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꼬집으며 실질적인 제도개선을 주문했다. 장 소장은 전기세, 누진세, 전기용량 한계 등으로 선풍기에 의존해야만 한다는 점, 건물이 노후된 탓에 단열기능이 없다는 점, 도심 한가운데 위치해 열섬현상에 그대로 노출된다는 점, 폭염·장마 등으로 일자리가 줄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 등을 이유로 꼽았다.

장민철 소장은 “폭염취약계층 및 취약한 주거지에 대한 에너지진단 실태조사를 통해 계획에 따른 예산확대 및 예상마련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하며 ▲각 계층의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지리적 특성을 고려한 계획 ▲냉방 가능한 임시주택의 한시적 지원, 고령·질병·장애 등에 따른 폭염 긴급주거비 지원 ▲취약계층 밀집지역 내 고정형 냉방버스 배치 ▲심리적 문턱이 낮은 다양한 무더위쉼터 운영 ▲자활, 일자리 병행 제공 모델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토론에 나선 이보라 녹색병원 인권치유센터 소장은 “폭염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고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경로는 생물학적이 아닌 사회적이다”며 “폭염에 의한 사망은 사회적 죽음이며 이를 ‘폭염 행동 요령’ 같은 개인적 행동지침으로 예방하려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정부차원의 지원책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시사했다.

이와 관련해 송오영 국가인권위원회 사회인권과장은 인권위에서 인권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제도개선안 마련을 위해 고민하고 있는 만큼 사회 전반적인 관심을 독려했다.

송 과장은 “폭염, 미세먼지 등 각종 재난상황 속에서 취약계층이 겪는 인권적 어려움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클 수 있으므로 국가와 지자체 등 공공영역에서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주거문제는 다른 권리와 결부돼 주거권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인간다운 삶이 불가능해지는 특성이 있다. 토론회에서 나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법령·정책·제도·관행 등 개선에 어떻게 반영할지 고민하겠다”고 약속했다.

파이낸셜투데이 배수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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