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백색국가 제외 조치, 양국 갈등 심화
금융업계 영향 및 금융보복 가능성에 우려
정용건 사회연대 연구소 소장, “우리나라 금융에 미칠 영향 적어”

사진=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지난 2일 아베 신조 총리 주재로 각의(국무회의)를 열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 국가)에서 배제하는 내용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때문에 시행일인 28일부터 1100여개 품목은 대한민국 수출관리가 까다롭게 될 것으로 보이며 2004년 백색국가로 지정됐던 한국은 이 리스트에서 빠지는 첫 국가가 됐다.

‘화이트리스트’란 백색국가 또는 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이라고도 불리며 일본이 안보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우방 국가를 말한다. 일본은 전략물자의 경우 수출 시 개별허가를 받도록 하는데 백색국가는 ‘비민감품목’의 경우 3년에 한 번 포괄허가만 받으면 되도록 완화된 규정을 적용해 우대를 해준다.

일본의 이 같은 조치에 우리 정부도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기정 사실화하고 우리 기업이 받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응에 나서는 한편 대일본 제재도 이어가기로 했다.

우선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로 피해가 예상되는 중소‧중견‧대기업에 대한 정책금융기관의 대출과 보증 만기를 1년 연장해주기로 하고 여기에 산업은행,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한국무역보험공사 등 국책금융기관도 6조원의 신규자금을 공급하기로 했다.

또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등을 지원하기 위한 내년 예산도 1조1000억원 수준에서 2조원 넘게 편성하기로 하고 전략물자관리원에 일본 수출규제 대상 품목을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을 신설했다.

대일본 제재로는 우리나라의 수출 우대국에서 일본을 제외하기 위한 고시를 행정 예고하고 폐배터리·폐타이어·폐플라스틱 등 일본 수입량이 많은 3가지 재활용 폐기물에 대한 수입 통관 절차를 강화하기로 했다.

정치권에서는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 철회할 때까지 지소미아(GSOMIA) 연장을 유예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지소미아란 한국과 일본이 체결한 유일한 군사협정으로 북한의 병력 이동, 사회 동향, 핵·미사일 관련 정보 등을 일본과 공유하기 위해 체결한 협정을 말한다. 1년 단위로 연장되며 90일 전 어느 한쪽이 파기 의사를 서면 통보하면 자동 종료된다. 오는 24일이 연장 여부를 결정할 시한이다.

이처럼 양국의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일본의 금융보복 가능성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일 정용건 사회연대 연구소 소장은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가 한일 관계에는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우리나라 금융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예상했다.

정용건 사회연대 연구소 소장. 사진=연합뉴스

정 소장은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것과 관련해 일본 아베의 잘못된 정치적 판단이 한일 관계에 대단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Global Supply Chain)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이 설계를 하고 일본이 소재를 만들고 한국이 조립을 하는 방식의 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그 체계에 분열을 주기 시작한 것이라면서도 금융업계에 미칠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봤다.

정 소장은 “현재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일본의 조치로 인해 기업들의 실질적 리스크가 큰 것은 아닌 것 같다”면서도 “그러나 양국 국민, 특히 한국 국민들이 갖는 심리적 불편함, 그리고 한국 기업들이 받는 심리적 위험도는 상당히 높아져 있는 상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될 경우 치킨게임으로 갈 공산이 커 한일 양국 모두 불행해지는 것은 물론 양국 정부를 넘어서 양국 국민들간 적대적인 감정들이 생겨나 한일 관계 복원이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정 소장은 현재 금융업계가 우려하는 일본의 금융보복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주 낮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 이후 일본이 한국에 투입된 금융관련 자금을 뺄 것이라는 우려들이 있었지만 아직 시장에서 관련된 영향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관련 해외투자라는 것은 단순하게 어느 한 곳에 투자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체적으로 글로벌 포트폴리오 차원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이라는 큰 바구니 속에 각국의 금융관련 자금이 분산돼 있기 때문에 한국의 투자금을 갑자기 뺀다든지 또 반대로 우리가 일본에 투자한 자금을 갑자기 뺀다는 것은 쉽지 않은 구조 속에 있다고 덧붙였다.

정 소장은 한국의 금융이 예전의 낙후성을 벗어났다고 평가했다.

정 소장은 “IMF 외환위기 당시 일본의 종금사들이 단기로 일본 돈을 빌려와서 한국에서 고금리로 대출을 해 이익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순간적으로 돈줄을 끊으면서 제2금융권 중심으로 위기가 도래한 적은 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그와 같은 낙후된 상황은 다 벗어나 있기 때문에 큰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관련 자금은 구조가 다양하고 복합적인 채널로 들어오고 있다”면서 “한국에 자금이 들어올 때 일방적인 한 채널로 들어오지 않을 뿐 아니라 마찬가지로 빠져나가는 과정도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의 대응 관련해서도 언급했다. 현재 정부가 할 수 있는 대응의 수위는 더 하기도 덜 하기도 힘들다면서 지금의 대응수준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시장이나 기업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 언론에 나오는 것처럼 크게 영향을 미치거나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면서 다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위안이 되고 국민이 보기에 ‘정부가 역할을 하고 있구나’하는 정도라고 평가했다.

정 소장은 “정부가 할 일은 경제적인 측면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신속히 일본 정부로부터 원만한 협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 소장은 정치권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냈다.

정 소장은 “올림픽은 전쟁 중에도 참여해서 평화를 얘기해야 하는 큰 정신이 있는데도 섣부르게 도쿄올림픽 가지말자라고 얘기하는 여권, 또 이 싸움이 끝난 후 평가해도 늦지 않는데도 힘을 모아주지 않는 야권을 보면 정치권은 여전히 패당적, 당파적이고 표만 의식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투데이 이진명 기자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