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민희 기자

서울 번화가에 나가면 어렵지 않게 일본식 술집 ‘이자카야’ 거리를 발견할 수 있다. 어느샌가 국내 외식 분야를 휩쓴 일본 음식들은 이제 그럴싸한 외관까지 갖춰 거리 곳곳을 점령했다.

20~30대들이 자주 방문하는 서울 합정, 강남, 종로 등의 번화가에 들어서면 ‘한 집 건너 한집’ 꼴로 이자카야와 일식집이 보인다. 일본어 간판을 내건 곳은 물론 아예 3~4층 규모의 일본식 목조 건물을 이자카야로 사용하는 곳도 있다.

가게에 들어서면 점원들은 귀청이 떨어져라 ‘이럇사이마셰(어서오세요)’를 외친다. 메뉴판을 펼치면 어묵탕이 아닌 ‘오뎅탕’, 회 대신 ‘사시미’, 정종이 아닌 ‘사케’가 자리한다. 기본안주 대신 ‘스키다시’, 일식 코스요리를 가리키는 ‘오마카세’, 튀김 덮밥인 ‘텐동’ 등의 일본어가 난무한다. 곳곳에 짙게 물든 왜색으로 이곳이 일본인지 한국인지 헷갈릴 정도다.

이자카야는 나무탁자를 두고 서서 간단히 마시는 술집으로, 일제강점기 등장한 식민지 문화다. 당시 사람들은 어묵과 단무지를 주는 술집을 이자카야라 불렀다고 한다. 1960년대까지 잔존하다 쥐도새도 모르게 자취를 감췄던 이곳은, 최근 불어닥친 ‘일본감성’ 열풍으로 다시 강력하게 부활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일식 브랜드 수는 2015년 89개에서 2017년 154개로 73%가량 급증했다. 일식으로 분류되는 가맹점 수는 4700여개에 달한다.

문제는 이 같은 왜색이 지나치다는 점이다. 대다수의 젊은 층은 일본어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기이한 현상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거나, 이자카야의 뜻도 모른 채 이른바 ‘핫플레이스(인기장소)’라 방문하는 식이다. 식민지 문화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일상 속으로 이토록 강력하게 스며들었다.

최근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맞물려 이자카야 방문을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이제 거리에는 일본 간판 위로 ‘저희 점포는 대한민국을 지지합니다’, ‘국내산 재료 사용’, ‘한국인 점원만 일하는 곳’ 등을 써 붙인 진풍경이 연출됐다. 불매운동의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한 움직임이지만, 지금껏 일본 문화를 팔아왔으면서 과연 일본과 무관하다고 외칠 수 있을까.

우리는 일본과 정치·역사적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식민 통치를 겪으며 떼려야 뗄 수 없는 역사를 공유해왔기 때문이다. 혹자는 죄 없는 문화·예술은 과거사와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나친 반일정서’라거나 ‘그냥 좀 먹으면 어때’ 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자카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식민지의 비애는 어떠했는지, 사라졌던 주점이 다시금 생겨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야 한다. 이념에서 벗어나는 일은 결코 ‘쿨한’ 것이 아니다. 한국인이 번쩍이는 이자카야 거리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반발임을 기억하자. 불매운동의 영역은 스스로 정하는 것이지만, 역사와 정치의 굴레에서 쉽게 벗어날 순 없다. 인기에 힘입어 이자카야 거리를 형성하고 즐긴 것이 정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지, 이번 기회를 통해 한 번쯤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파이낸셜투데이 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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