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의 수출규제, 韓 외교적 해결 중시
日 철회 안 하면, ‘지소미아 폐기’까지 고려

사진=연합뉴스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부터 한국 백색국가 제외까지, 한·일 무역전쟁은 진행중이다. 일본의 조치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여전히 귀를 닫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정부는 일본에 대해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GSOMIA) 폐기라는 카드를 들고 신중히 검토중에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4일 반도체 주요 부품들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를 시작으로 한·일간 긴장감이 시작됐다. 일본의 수출규제 대상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에칭가스는 반도체 등의 제조과정에 필요한 주요 소재다. 일본은 이 소재들의 세계전체 생산량의 약 90%를 점유하고 있어 이번 일본의 규제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게 적지 않은 타격을 주고 있다.

일본은 이날 수출규제와 함께 한국에 대한 통신기기 및 첨단소재의 수출통제를 강화하는 대책도 검토한다고 밝히면서, 이후 2일 한국을 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한다는 안건을 의결했다.

백색국가는 일본기업이 전략물자 등을 수출할 때 일본정부가 승인절차를 간소화하는 혜택을 인정하는 나라다. 일종의 수출 우호 국가를 의미한다. 한국은 2004년에 지정됐으며, 한국 외에도 미국, 영국 등 총 27개국이 지정돼있다. 백색국가는 전략물자 수출 시 개별허가를 받을 때 3년에 한 번 포괄허가만 받는 ‘일반포괄허가’를 받으면 된다.

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된 한국은 앞으로 ‘특별일반포괄허가’를 받아야 한다. 수출기업이 사전에 수출관리 프로그램을 신고하고 일본 경제산업성의 점검을 거쳐 인증을 받는 복잡한 절차를 거처야 하는데, 품목마다 차이는 있으나 개별허가를 받는 데 일반적으로 90일이 걸린다.

일본은 7일 관보를 통해 한국을 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공포했다. 제2차 수출규제가 시작된 것이다.

한국은 식품과 목재를 제외한 거의 모든 품목에서 개별허가 대상으로 바뀌는 등 수출절차가 엄격해져 무역거래에 큰 차질이 생길 것으로 우려된다. 개별허가로 전환되는 품목은 지난 수출규제 대상인 반도체 핵심 소재 3개를 포함해 약 857개로 늘어날 예정이다. 공작기계나 집적회로, 통신 장비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또 대일 의존도가 높은 정밀공작기계, 탄소섬유, 기능성 필름 접착제 등 정밀화학제품도 규제 대상이다.

개정안에는 일본기업이 한국으로 수출할 때 비전략물자에 대한 캐치올제도(전략물자수출통제제도)도 포함돼 있다. 이는 군사 전용 가능성이 있는 전략물자를 무기 제조가능성이 있는 국가에 수출할 수 없도록 통제하는 제도다. 여기서 ‘군사 전용 가능성’은 일본이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것이어서 일본이 한국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의심된다.

앞으로 한국의 대부분의 전략물자와 비전략물자는 규제 강화의 대상이 된다.

8일 대통령 주재 긴급회의. 사진=연합뉴스

한국 정부는 일본의 규제 방침이 부당하다며 백색국가 제외 철회를 촉구하는 의견서를 보냈으나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국 정부도 분쟁 중지 합의를 권고했지만, 일본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결정에 이달 2일 긴급 국무회의를 열어 “우리 경제를 의도적으로 타격한다면 일본도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며 단호한 입장을 발표했다.

일본의 공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7일 백색국가 제외 결정과 함께 시행세칙 성격의 포괄허가 취급요령 개정안을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개정안에는 백색국가와 비백색국가로 구분하던 것을 A~D그룹으로 재분류한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A그룹은 기존 백색국가들이며 한국은 제외돼 있다. 반면 B그룹은 수출통제체제에 가입해 일정 요건을 갖춘 국가로 한국이 여기에 포함돼 있다. 한국은 A그룹에서 B그룹으로 지위가 강등된 것이다.

외교통상부는 7일 일본의 조치에 대해 강력한 항의와 유감의 뜻을 밝히고 철회를 재차 촉구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 정부는 일방적이고 부당한 조치를 조속히 거두어들이고 대화를 통해 문제 해결의 지혜를 모아나가자는 우리의 제안에 조속히 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이 같은 경제보복에 강력한 대응방법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으로 지소미아 중단 카드를 고민 중이다.

지소미아는 한일 양국이 북한의 핵·미사일과 관련한 2급 이하의 군사비밀 공유를 위해 지켜야할 보안 원칙들을 담고 있다. 이는 상대국에서 받은 군사비밀 등을 해당 국가에서도 비밀로 보호하겠다는 내용의 절차법으로, 2016년 북한의 4·5차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등 계속적인 도발 속에 한·미·일 안보공조 필요성으로 추진됐다. 지소미아는 1년 단위로 2차례 자동 연장된다. 협정 연장시한 90일 전 어느 쪽이라도 파기 의사를 서면으로 통보하면 종료되는데, 오는 24일이 그 시한이다.

지소미아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들.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일본의 행보를 예의주시하면서, 시한에 맞춰 지소미아 파기 및 재연장 여부를 조만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6일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지소미아 유지 여부와 관련해) 상호모순된 입장을 유지하는 국가와 민감한 군사정보를 계속 교환할 수 있는지 적절한 것인지 검토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당은 지소미아 폐기를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 대표는 2일 긴급회의에서 “이런 상황이라면 지소미아에 대한 실천적 의미와 유의미성에 대해 우리 당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경고한다”며 정부의 강경한 대응을 촉구했다.

여론도 지소미아를 폐기하는 데 찬성한다는 방향으로 기울었다. 이달 6일 리얼미터의 실시로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2명에게 조사한 결과, 지소미아 폐기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47.7%로, 반대 39.3%보다 높은 결과가 나왔다.

아울러 한국 정부도 일본을 한국의 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하는 전략물자수출입고시 개정안을 금일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현재 실효성을 두고 논란이 일자 잠시 유보했다. 일본이 백색국가 제외 이후 처음으로 수출규제 대상 품목에 대해 조기 허가를 내줬기 때문이다. 8일 일본은 반도체 핵심소재 3개 중 하나인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에 대한 수출허가를 냈다.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성 기관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금수(수출을 금지하는 것)가 아니라는 점을 한국 측이 잘 이해해 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잘못된 사례가 나오면 개별 신청 대상 확대를 포함한 추가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하며 수출규제가 보복이라는 한국의 주장에 대해 반박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도 기자회견에서 “엄정한 심사를 거쳐 안보상 우려가 없는 거래임을 확인하고 수출허가를 부여한 것”이라며 금수조치가 아니라고 거듭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8일 일본 수출규제 사태 논의 대책을 위해 긴급 주재한 전체회의에서 “(일본의 수출허가에 대해) 변명을 어떻게 바꾸든, 일본의 조치는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경제보복이다”라는 단호함을 보이면서도, “(일본의 수출규제는) 자유무역 질서와 국제분업 구조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조치로써 전 세계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부당한 수출규제 조치를 하루속히 철회하라”고 촉구하며 외교적 해결을 강조했다.

파이낸셜투데이 홍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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