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등 당·정·청 고위 관계자들이 4일 오후 국회에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명단) 배제 조치에 따른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당·정·청 협의회에 참석,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본이 전략물자 수출우대국인 ‘백색국가’(White List)에서 한국을 제외함에 따라 정부와 기업, 정치권이 힘을 합쳐 한-일 경제전쟁에 신속하고 강력한 대응을 펼치고 있다. 각 지역 지자체와 단체들도 일본 정부의 경제 도발 조치에 맞서 항의 성명을 내고 각종 지원책을 마련하는 등 힘을 보태고 있다.

먼저, 청와대와 정부,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4일 국회에서 당정청 회동을 갖고, 우리나라의 소재·부품·장비 산업 경쟁력 강화에 대대적인 지원을 하기로 했다.

이날 오후 국회에서 고위당정청협의회가 끝난 뒤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밝힌 대책에 따르면 우선 소재와 부품, 장비 산업 경쟁력 강화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예산과 법령, 세제, 금융 지원 등 가용한 정책수단이 총동원된다.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추경)안에 대외의존도가 높은 주력 신산업 분야 장비 지원, 국산화가 시급한 분야 혁신개발 지원 등 3개 부처 10개 사업과 관련한 예산 2731억5000만원의 증액을 요구했다. 당정청은 내년 본예산부터는 지원 분야를 더 확장하고 연 1조원으로 지원 규모도 늘릴 방침이다.

또 2021년 법의 효력이 끝나는 소재·부품전문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도 내용을 확대해 장비 기업 육성 방안을 포함하고, 상시법으로 전환해 제도적 지원 틀을 만들기로 했다.

당정청은 또 수요기업과 공급기업 간, 수요기업 간의 협력에 대해 자금 지원, 세제 혜택 등을 제공해 소재·부품 산업의 상생 협력 모델을 구축하기로 했다. 핵심 전략 품목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를 과감히 늘리고,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등을 통해 지원의 속도감도 높인다.

또한 인수·합병, 기술 제휴, 해외 투자 유치 등 개방향 기술 획득 방식을 추진하고, 글로벌 수준의 전문기업을 육성하는 동시에, 5년 간 100개 기업 지정을 통해 글로벌 수준의 전문 기업을 육성하기로 했다.

이밖에 공공 연구소의 전문 인력을 민간 기업에 파견하고, 해외 전문 인력의 유치를 지원하는 등 연구 인력 확보를 뒷받침하기로 했다.

당정청은 이번 대책의 체계적 추진을 위해 범정부적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위원회를 구성한다. 위원장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직접 맡으며, 위원회는 당내 가동중인 일본경제침략대책 특별위원회, 소재·부품·장비·인력 발전 특별위원회 등과 유기적으로 협력하기로 했다.

이와 별도로 정세균 전 국회의장을 좌장으로 최재성 당 일본특위 위원장,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노형욱 국무조정실장,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이 참여하는 일일 점검 대책반을 가동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국내 주요기업들과 총수들은 여름휴가까지 반납하면서 ‘비상경영’에 나선 상태다. 특히 일본의 수출 규제 사태에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삼성전자와 SK그룹, 롯데그룹 등의 행보가 눈에 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일본 출장을 마치고 지난달 12일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6일 온양과 천안사업장을 잇달아 방문해 경영회의는 물론 직원들을 독려하는 등 현장 밀착형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앞서 5일에는 삼성전자를 비롯 전자계열사 사장단을 긴급 소집해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당시 이 부회장은 “긴장은 하되 두려워하지 말자”며 “새로운 기회를 창출해 한 단계 더 도약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자”고 당부했다.

최태원 SK 회장도 지난 5일 16개 주요 관계사 CEO들이 참석한 가운데 수펙스추구협의회 비상 회의를 주재하고 사태에 대한 긴급 점검에 나섰다. 최 회장은 이날 회의에서 “흔들림없이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위기에 슬기롭게 대처하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분주하게 움직이는 총수는 신동빈 롯데 회장이다. 신 회장은 평소보다 일본을 여러차례 오가며 대책 수립과 위기 돌파 방안을 고심 중이다. 일본의 1차 수출규제가 내려진 직후인 지난달 5일 일본으로 출국해 열흘 가량 일본 금융그룹 관계자들을 만나고 돌아왔던 신 회장은 지난 2일에도 도쿄로 출국하는 등 해법 모색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앞서 지난달 28일에는 김포 롯데백화점과 롯데몰을 시찰하는 등 현장 경영에도 나선 상태다.

직접적인 영향이 덜한 현대자동차그룹과 LG그룹은 상대적으로 조용하게 현안을 챙기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은 지난달 18일 일본을 방문해 위험 요인을 점검했으며,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달 11일 평택 LG전자 소재 생산기술원을 찾아 점검을 마쳤다.

지자체도 정부의 대응 기조에 맞춰 어려움 극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구체적인 지원책을 마련한 지역을 살펴보면 서울시는 중소기업 육성기금 융자금을 2000억원으로 확대하고 융자 한도를 5억원까지 늘린다. 이자도 1.5% 수준으로 최소화해 기업부담을 낮춰주기로 했다. 신용보증기금과 협력해 피해업종 기업의 매출채권 보험 가입을 지원한다. 시 새정으로 보험료의 50%를 지원하며, 총 보장규모는 1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부산시는 수출규제 지원대책반을 피해기업조사팀, 긴급자금지원팀, 산업육성지워팀, 관광지원팀으로 확대 편성하고 분야별 실태조사와 피해 상황 파악에 나선 상태다. 현재 부산에서 연 수입액 10만달러 이상인 수입 품목을 보면 전체 703개 가운데 95개 품목이 90% 이상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부산시는 수출규제 피해기업에 대해서는 100억원 규모 긴급특례보증을 시행하고, 피해기업의 지방세 부담을 경감하고자 6개월 범위에서 납기연장, 징수유예 등도 추진한다. 또 일본 오사카에 있는 부산시 무역사무소를 활용, 일본경제 동향을 실시간으로 지역 기업들에 제공하기로 했다.

경기 수원시는 중소기업 피해 최소화를 위해 시 자체 예산에서 특별지원기금 30억원을 긴급히 편성,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 품목으로 지정한 반도체 관련 핵심품목 제조업체에 융자 형태로 지원하기로 했다. 융자 한도는 기업당 최대 5억원, 기간은 5년(1~2년 거치, 3~4년 균등상환)이다.

이밖의 지자체들도 시군과 공조·협력체계를 구축하거나 단체장 회의를 개최하는 등 총력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파이낸셜투데이 한종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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