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직원들 고객 돈 ‘횡령’…도덕성문제 도마에
내부 시스템상 구멍 없다지만 3년지나도 몰라…은행에선 ‘개인 일탈’로 치부
조남희 금소원장 “내부통제·처벌규정 강화해야”

SC제일은행. 사진=파이낸셜투데이

은행권에서 직원이 고객의 돈을 횡령하는 사건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고도의 신뢰가 요구되는 은행에서 내부통제 약화로 이와 같은 범행이 발생한 데 이어 어설픈 후속 조치로 금융고객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 제1금융권 은행에서 불거지는 직원 비리

지난달 SC제일은행에서 근무했던 개인자산관리자 A씨가 고객의 돈 약 3억7000만원을 가로채고 해외로 도주한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A씨는 2015년부터 해당 고객의 개인자산관리사로 있으면서 가짜 채권을 소개해 투자하도록 종용하고 환전용 돈을 중간에서 빼돌렸다.

A씨는 2017년 말 고객에게 가짜 채권을 소개하고 2억8000만원을 받아 고객 소유의 다른 계좌에 돈을 입금한 뒤 지속적으로 출금해갔다. 또한 피해 고객이 환전을 해달라며 A씨에게 현금을 건네면 A씨는 그 돈을 빼돌리고 고객의 계좌에서 돈을 인출해 환전해 주는 식으로 총 3억7000여만원을 가로챘다.

직원 횡령 비리가 불거진 곳은 제일은행만이 아니다. 다른 제1금융권 은행에서도 직원들이 빈틈을 노리고 치밀하게 거액을 횡령하는 일이 발생했다.

KB국민은행은 VIP고객의 돈 13억원을 빼돌린 직원 때문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휘말렸다. 부천상동시점에서 VIP실 팀장으로 근무하던 B씨는 80대 VIP 고객에게 금융상품 가입을 권유하며 2012년부터 2013년까지 13억원을 출금할 것을 유도하고 이 돈을 빼돌렸다. 이 과정에서 B씨는 허위계약서를 제시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저질렀다.

이러한 범행은 2015년 국민은행 감찰반에 의해 밝혀졌고 이후 피해 고객과 자녀들은 국민은행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달 국민은행에 사용자 책임을 물어 7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IBK기업은행은 속초 한 지점에서 대리급 직원 C씨가 지난 5월 고객 예금 24억500만원을 빼돌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C씨는 고객이 정기예금을 맡기고 재예치하는 과정에서 해당 금액을 횡령했다. 뒤늦게 피해 사실을 알아차린 고객이 신고했으나 이미 B씨가 17억5000만원을 써버린 뒤였다.

KB국민은행과 IBK기업은행. 사진=연합뉴스

◆ 내부통제 약해진 은행 ‘부실대처’로 논란

이러한 직원들의 비리 사건에서 가장 큰 문제는 피해 대상이 ‘고객’이라는 점이다.

은행은 신뢰를 바탕으로 고객들로부터 수신을 유치한다. 이러한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은행 자체적인 이미지뿐 아니라 고객들과 접점이 많은 현장 직원들에 대한 관리가 중요하다. 해당 직원들이 고객에게는 은행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행에서 고객 돈을 탐하는 직원들의 비리 사건이 불거지는 데 이어 부실한 후속 조치로 추가적인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SC제일은행의 경우 피해자가 은행 측에 피해 사실을 은행 측에 처음 알렸을 당시 담당자가 피해자를 크게 다그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직원의 범행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은행이 오히려 은행 직원에게 피해를 입은 피해자에게 순진하게 속았다며 타박을 한 것이다.

SC제일은행 관계자는 “은행에서도 사실 관계에 대해 내부적으로 조사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 관계 파악 없이는 은행이 피해를 주장하는 고객에게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며 “현재 은행은 퇴직한 직원을 경찰에 고발했으며 앞으로도 경찰 조사에 협조하고 향후 이런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내부통제와 직원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KB국민은행 역시 향후 직원 비리가 추가적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내부 점검과 직원교육에 신경쓰겠다는 입장이다.

기업은행은 해당 비리 사건은 직원 개인의 일탈적인 문제일 뿐, 은행 내부통제 문제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해당 사건은 은행 직원 개인의 일탈에서 비롯된 문제이며 은행 차원의 제도적인 문제는 없다”며 “직원이 횡령하고자 마음을 먹고 치밀하게 일을 꾸민 것까지 사전에 모두 막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기업은행의 경우 큰 액수의 돈을 다룰 때 전산상으로 책임자급 직원이 승인을 하도록 하는 안전장치가 있다. 하지만 기업은행은 고객이 피해 사실을 알리기 전까지 직원의 범행은 물론 이상한 낌새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실질적으로 내부적인 안전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장은 “최근 은행 조직 슬림화로 직원들의 업무 범위가 넓어지면서 내부적인 통제 기능이 약화됐다. 이에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로 인한 범죄가 발생하는 등 윤리적인 사각지대가 생기고 있다”며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은행에서 발생한 비리 문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은행들은 신뢰가 추락하지 않도록 내부통제를 더욱 정교히 설계하고 처벌규정을 강화해 직원 비리를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투데이 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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