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아프리카TV MET 아시아 중계 화면 캡처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시범종목으로 채택되며 본격적으로 e스포츠는 이름에서 ‘e’를 떼고 정식 스포츠가 되는 것을 꿈꿔왔지만, 인프라·규정 미비 등 정식 스포츠화로 가는 길을 막는 문제가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국내에서는 e스포츠를 생활 스포츠로 발전시켜 인식 개선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 등으로 인해 넘어야 할 난관이 많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e스포츠의 올림픽 입성에 부정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한계를 극복하기 전에는 e스포츠의 정식 스포츠화가 이뤄지기 어려울 전망이다.

e스포츠는 ‘게임으로 대결’ 한다는 태생적 한계를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 태생적 한계는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종목이 결정되는 올해까지도 극복하지 못했다. 이벤트 경기는 할 수 있겠지만,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나 2024 파리 올림픽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가능성도 낮은 상태다.

e스포츠가 태동해 발전한 한국은 ‘e스포츠 종주국’이라고 여겨진다. 1990년대 후반 PC방이 전국 각지에 확산하며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가 전국적인 인기를 끌면서 성장을 시작한 e스포츠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만들었다. e스포츠의 발전은 TV에 OGN(前 온게임넷), MBC게임 등 게임 전문 채널을 만들었고, 임요환·홍진호·이윤열 등 인기스타도 배출했다. 2012년부터 여전히 전 세계에서 인기종목으로 꼽히는 ‘리그 오브 레전드(LoL)’, e스포츠 최초로 지역 연고제를 도입한 ‘오버워치’ 등 다양한 종목도 등장했다.

국내에서 e스포츠의 정식 스포츠화는 한국e스포츠협회(KeSPA)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특히 나이·성별·신체능력 등에 상관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점을 활용해 e스포츠가 생활 스포츠로 자리잡고, 국산 종목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면서 게임·e스포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게임·e스포츠에 대한 국민적 인식과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 등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지난달 24일 대한체육회 이사회에서 인정단체로 승인된 KeSPA는 “한국에서 e스포츠가 스포츠로서 인정받고, 국제 e스포츠계에서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가져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며 “이를 바탕으로 협회는 국제 e스포츠 기구에서 한국의 영향력을 확대해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 행사의 경기규정, 선수선발, 종목선정 등 e스포츠 표준 정립을 한국이 주도적으로 이끌고, 국산 게임의 세계 e스포츠 종목화를 추진해 국내 게임 산업 및 e스포츠 영향력 확대에 주력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영만 KeSPA 회장도 “e스포츠를 정식 스포츠로 인정해준 대한체육회 및 체육계 인사들에게 감사하다. e스포츠 종주국 대한민국이 전 세계적인 주도권을 이끌어 나감으로써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 나가겠다. 더불어 국내 다양한 종목의 저변과 기반이 확대될 수 있도록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의 협력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지난달 e스포츠의 한계가 한 번에 드러난 일이 있었다. 이는 지난달 26일부터 28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열린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PUBG)’ e스포츠 대회 ‘MET 아시아’ 2일차 마지막 라운드에서 경기장에 발생한 정전으로부터 시작됐다. 정전 이후 다행히 전기가 들어오고 중단됐던 경기가 재개돼 2일차 경기는 마무리됐지만, 주최 측이 3일차 경기 시작 전 “정전 전에 치러진 경기를 인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주최 측의 발표에 따라 정전 당시 생존했던 팀들이 추가 점수를 받게 됐는데, 3일차 첫 라운드 종료 후 중국과 대만 대표팀이 “합의한 적 없다”고 경기 불참을 선언했다. 주최 측은 경기 강행을 요구했고 3일차 2라운드는 중국·대만 팀 없이 9개 팀만 경기를 펼치는 일이 있었다.

결국 대회가 다시 중단되고 주최 측은 정전이 발생한 라운드부터 9개 팀이 참여한 3일차 2라운드까지 4개 라운드를 무효 처리했다. MET 아시아 우승팀에 주어지는 ‘PUBG 글로벌 챔피언십’ 시드권 한 장도 철회했다.

아울러 주최 측에서 사전에 참가팀에게 규정집을 배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일각에서는 30만달러(한화 약 3억6500만원)의 상금과 글로벌 챔피언십 시드권이 걸린 중요한 대회에서도 규정집을 배포하지 않았는데 정해진 규칙에 따라 공정하게 경쟁하는 스포츠라고 할 수 있냐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주최 측은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지만 규정이 존재한다”며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규정이 존재한다는 주최 측이 정작 판단을 번복하며 규정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 번의 정전으로 인해 MET 아시아는 e스포츠가 ▲정전 등 인프라 문제에 취약한 점 ▲선수들을 강제할 수 있는 규정이 미비한 점 ▲규정을 강제할 수 있는 기구가 없는 점 등의 한계를 한꺼번에 드러냈다.

이외에도 e스포츠는 게임으로 진행되는 대회여서 IP를 가진 게임사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게임이 전통 스포츠처럼 한 번 나와서 오래 유지되는 종목도 아니고, 게임사가 정한 방식에 따라, 경기가 진행되는 패치 버전에 따라 똑같이 플레이해도 결과가 다르게 나올 수 있다. 특히 게임은 공공재가 아니라 e스포츠가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면 종목 사용에 따른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처럼 하루아침에 대회가 사라져 선수들과 팀이 실직하는 경우도 있다.

IOC도 e스포츠의 올림픽 입성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IOC 실무진이 지난해 11월 국내에서 열린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을 보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지난해 12월 IOC가 세계 스포츠 주요 인사들과 e스포츠의 올림픽 입성을 논의한 ‘제7회 올림픽 서밋’에서 “e스포츠의 올림픽 입성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혔다.

IOC는 성명에서 “IOC의 올림픽 운동은 전 세계 젊은 세대들에 인기가 높은 e스포츠를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다”면서도 “일부 경쟁적인 게임을 제외하면 전통 스포츠의 핵심 요소인 신체 활동이 수반되지 않고, 일부는 폭력성을 내재하고 있어 올림픽이 추구하는 가치와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2017년에는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e스포츠 관련 산업이 이제 막 형성되는 상태라 ▲표준화된 규정이 미비하고 ▲선수를 표준 규정으로 강제할 수 있는 기구가 없다며 우려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e스포츠는 게임·e스포츠에 부정적인 인식도 개선해야만 한다. 정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국민적 인식이 부정적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 질의 당시 대통령 직속기구인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은 게임이 4차산업에 포함되는지 논란이 있다고 했고, 대한체육회 회장은 e스포츠는 스포츠가 아니라 게임이라며 입장을 표명해 게임·e스포츠에 대한 높은 인식의 벽을 통감했다”며 “KeSPA의 대한체육회 인정단체 승인은 e스포츠가 제도권 안에 들어오게 됨으로써 게임의 건전한 이용 문화가 정착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서 “이를 계기 삼아 앞으로 우리 정부와 기성세대의 인식 전환이 이뤄지길 희망한다”며 “정부는 e스포츠의 스포츠화에 대한 본격적인 담론을 시작하자”고 촉구했다.

파이낸셜투데이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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