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서 시공사 재선정 공식화, ‘무효’처리된 6표 향방 놓고 양사 촉각
다시 기회 잡은 현대ENG, 셈법 복잡한 대우…“재투표시 경쟁 더 치열할 듯”

대우건설 사옥 전경. 사진=대우건설

서울 구로구 알짜 입지를 자랑하는 ‘고척4구역’ 재개발 사업이 시공사 선정에 난항을 겪고 있다. 대우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이 맞붙은 이곳 사업장은 시공사 선정 총회 당시 불거진 ‘무효표 논란’을 딛고 대우건설 몫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일부 조합원들이 반발, 구청이 직접 나서서 시공사 선정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서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현대엔지니어링이 이곳 수주권을 놓고 소송까지 불사하겠다고 나선 가운데 대우건설의 셈법이 복잡해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최근 구로구청은 고척동 148-1번지 일원 고척4구역 재개발 사업과 관련 조합원 130여명이 낸 탄원서 회신을 통해 시공사 재선정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시공사 선정은 총회의결사항이라고 판단한 구청은 “총회에 상정된 건설업자 등 어느 하나도 출석조합원의 과반수 동의를 얻지 못하는 경우에는 조합 정관에서 정한 바에 따르며, 정관에서 특별히 정하지 않았다면 총회 의결에 따라 시공자를 선정하도록 규정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총회에서 부결 의결 선포돼 추후 별도의 총회를 개최하지 않고 시공사 선정을 확정 공고한 사항은 효력이 없고 제반 관계규정에 맞지 않는다”며 “시공사 선정 관련 기 시행한 사항을 즉시 시정해 도시정비법령 등 관계규정에 의거해 시공사 선정 업무를 추진하도록 조합에 통보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엔지니어링 본사 전경. 사진=현대엔지니어링

앞서 지난달 28일 진행된 시공사 선정 총회에서 대우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은 모두 과반수 동의를 얻지 못했다. 조합원 266명 중 246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투표결과 대우건설은 122표, 현대엔지니어링은 118표를 득했다. 당시 볼펜 등으로 표기된 대우건설 4표를 포함한 총 6표는 무효 처리됐다.

통상적으로 규정 외 방식으로 표기할 경우 무효처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곳 조합장은 “법적 분쟁이 벌어지겠지만 무효표를 유효표로 인정하고 대우건설과 사업을 진행하겠다”며 부결 처리된 투표결과를 뒤집으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조합장은 당시 조합원들에게 대우건설의 무효표를 유효표로 인정하고 사업 추진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절대적인 장점이라는 내용의 문자를 발송했다. 무효표 논란 관련 소송은 이어지겠지만 그와 별개로 재개발 사업이 지연되지 않고 계속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우건설에 시공사 선정 공문까지 발송하면서 논란 속에 수주전은 막을 내리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와 관련 조합 내부적으로는 조합장의 독단적인 결정에 따른 것이라며 반발이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엔지니어링 역시 조합장이 대우건설을 시공사로 확정 공고한 것에 대해 계약 체결 금지 가처분 소송을 낸 상태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서 조합의 입장도 난처해졌다. 조합에서는 총회를 통해 시공사 선정을 원점부터 다시 할 것인지, 무효표를 유효표로 인정할 것인가 여부를 판단할지 고민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자칫 시공사 재선정을 위한 총회가 개최될 경우 사업 지연 등에 대한 부담은 조합원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조합 관계자는 “아직 총회를 다시 열지 어떻게 할지 결정된 바가 없다. 다만 조합에서 조기에 판단을 내려서 사업이 지연되지 않고 제때 추진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고 말을 아꼈다.

이미 승기를 거머쥐었다고 생각했던 대우건설과 다시 한번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열린 현대엔지니어링. 고척4구역 수주를 놓고 양 건설사의 향후 수주전은 종전보다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대우건설 관계자에 따르면 이곳 조합원 70여명은 최근 자사를 시공사로 선정하기 위한 임시총회 소집 발의서를 조합에 제출, 조합정관에 따라 내주 임시총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어 오는 24일 ▲무효표를 유효표로 인정하는 안건 ▲부결된 시공사 선정 총회를 가결처리 하는 안건 ▲대우건설을 시공사로 확정공고 하는 안건 등을 놓고 총회가 열릴 계획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 현대엔지니어링 역시 공격적으로 대응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이달 중순 법원의 판단이 나올 예정이다. 만약 조합에서 총회를 진행하겠다면 총회 개최 금지 가처분 소송도 함께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 안팎으로는 현대엔지니어링 대비 대우건설의 상대적 부담감이 더 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KDB산업은행은 지난달 구조조정전문 자회사 KDB인베스트먼트에 보유하고 있던 지분 50.75%를 넘겼다. KDB인베스트먼트가 대주주로 이름을 올리면서 대우건설의 기업 가치 제고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올 하반기 혹은 내년 상반기 중 매각에 착수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KDB인베스트먼트는 대우건설 실적 부진 등을 이유로 매각 시점을 더 늦출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고척4구역 수주권을 현대엔지니어링에 넘겨주게 되면 기업 가치는 지금보다 더 하락할 수밖에 없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가 연이어 강화된 부동산 규제를 펴내면서 주택시장이 쪼그라든 탓에 정비사업 수주전이 과열 양상을 띠는 것”이라며 “대우건설의 경우 꾸준히 실적을 올려 몸값을 부풀려야 하는데 정부 규제책으로 계속해서 제동이 걸리고 있다. 이 가운데 이미 수주권을 따냈다고 생각한 고척4구역까지 말썽을 피우고 있어 셈법이 복잡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 고척4구역 재개발 조감도. 사진=서울클린업시스템

파이낸셜투데이 배수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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