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좋은기업 공감얻어야”…신 회장, 국민 반일정서는 공감 못 해
국적·지배구조 및 일본산 원료 수입, 또다시 도마 위로
노동자로 번진 불매운동에도…여전히 ‘팔짱’ 낀 롯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일본 불매운동에 관해 좀처럼 입을 열지 않으며 한·일 갈등에서 발을 빼는 모습이다. 공식 입장을 밝힐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사장단 회의에서도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아 불매운동의 여파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 16일부터 열린 사장단 회의에 참석해 롯데그룹의 경영 방향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다. 해당 회의는 불매운동 시기와 맞물려 세간의 주목을 받았지만 신 회장은 “사회 및 고객과 공감하는 경영을 펼쳐달라”는 주문 외 별다른 언급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롯데그룹이 ‘반일 국민 정서’에 공감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부인·자녀·며느리 모두 일본인…정체성 뒤섞인 롯데 家

최근 국내 소비자들의 일본에 대한 불매운동이 롯데그룹 전반으로 옮겨붙었다. 롯데 오너일가 의 국적 및 지배구조가 일본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은 일제 강점기 창씨개명을 한 신격호(시게미쓰 다케오) 명예회장이 일본에서 일군 회사다. 신 명예회장은 일본에서 1941년 화학회사를 시작으로 1948년 ㈜롯데를 설립, 껌 제조로 성공을 거뒀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1967년 롯데제과를 세운 것이 한국롯데의 시초다.

신 명예회장은 일본에서 시게미쓰 하츠코와 결혼, 신동주(시게미쓰 히로유키)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신동빈(사게미쓰 아키오) 롯데그룹 회장을 낳았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아내 하츠코는 일본 귀족 가문 출신으로, 그녀의 외삼촌은 시게미쓰 마모루 전 일본 외무대신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은 여전히 부인하고 있지만, 시게미쓰 마모루는 1932년 윤봉길 의사 의거 당시 부상을 당한 A급 전범으로 논란이 일었던 인물이다.

(왼쪽부터) 신영자 이사장의 딸 장선윤 호텔롯데 해외사업개발담당 상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며느리 시게미쓰 아야, 신동빈 회장의 누나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 신동빈 회장의 어머니 시게미쓰 하츠코, 신동빈 회장의 부인 시게미쓰 마나미. 사진=연합뉴스

하츠코의 화려한 일본 정·재계 인맥은 롯데 재벌이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된 것으로 비춰진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를 비롯해 일본 극우파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 아베신조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등과 친분이 두텁다.

신동빈 회장의 아내 히게미스 마나미 역시 일본 정계에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마나미는 일본 화족(제국주의 시절 귀족가문을 이르는 통칭) 출신으로, 일본 굴지의 기업인 다이세이 건설 부회장의 차녀다. 현재 아베 총리의 부인 아베 아키에와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 태어난 신동빈 회장은 41세가 되던 해에 일본 국적을 포기했다. 신 회장의 장남 신유열(시게미쓰 사토시), 장녀 신규미, 차녀 신승은 모두 일본 국적이다.

한국 기업이라 자처하는 롯데가(家)는 평소 모든 대화를 일본어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경영권 분쟁 당시 신동주 전 일본 롯데 부회장은 한국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했다. 특히 아버지 신격호 명예회장과 일본어로 대화하는 영상을 공개하면서부터 국적 논란은 더욱 확산됐다. 롯데그룹의 출발점이 일본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셈이다.

◆지배구조·일본원료 수입 논란…떼려야 뗄 수 없는 ‘일본기업’ 꼬리표

롯데의 지배구조 역시 일본발(發) 악재가 생길 때마다 논란의 중심에 서곤 한다. 롯데 지배구조의 정점에는 호텔롯데와 롯데지주가 있다.

호텔롯데는 일본 롯데홀딩스(19.07%), 광윤사(5.45%) 등 일본 기업들이 99%가 넘는 지분을 나눠 가지고 있다. 또 호텔롯데는 롯데푸드(8.91%), 롯데쇼핑(8.86%), 롯데칠성음료(5.83%), 롯데제과(2.11%) 등 주요 계열사 지분과 함께 롯데지주 지분(11.04%)을 가지고 있다. 롯데지주는 그룹 계열사의 지분을 다수 확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따라서 호텔롯데가 벌어들인 수익은 배당을 통해 일본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실제 지난해까지 일본롯데로 건너간 배당금은 총 51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은 국적 및 지배구조 논란이 일 때마다 신격호 명예회장과 신동빈 회장이 한국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한국 기업이라는 사실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원전사고 이후 일본산 원료를 대거 수입한 기업으로 꼽히며 쉽사리 일본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2013년 국정감사 당시 롯데는 원전사고 이후 3년간 일본산 원료를 가장 많이 수입한 기업 1위로 알려졌다.

양승조 민주당 의원실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롯데는 3년간 일본 전역에서 4만9314톤의 가공·원료 식품을 들여왔다. 이 가운데 수산물 수입이 금지된 후쿠시마 인근 8개 현에서는 282톤을 수입했다. 롯데는 롯데제과와 롯데삼강, 롯데아사히주류, 롯데햄, 롯데푸드 등의 계열사에서 양조간장과 복합 조미식품 등의 일본 식품을 수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에는 호텔롯데 상장을 통해 일본 지분율을 낮추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이듬해 신 회장의 구속 및 사드 여파로 이마저도 여의치 않게 됐다.

◆불매운동 힘 싣는 노동조합 vs ‘몸 사리는’ 롯데

롯데그룹의 불편한 사실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른 가운데 노동자들까지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힘을 싣고 있다. 마트 노조는 ‘일본 제품 안내 중단’을, 택배노조는 ‘유니클로 제품 배송 거부’를 선언한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마트노조)은 24일 서울역 롯데마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비자들에게 매장 내 일본 제품 안내를 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같은 날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택배연대노조 역시 유니클로 택배 배송 거부를 선언했다. 유니클로 한국법인은 롯데 쇼핑이 4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불매운동이 시작된 지난 3일 이후 8일간 유니클로 카드 전표 매출은 직전 같은 기간 대비 26%가량 감소했다. 현재까지 눈에 띄는 불매운동 기업은 유니클로에 그치지만, 소비자 접점이 높은 롯데마트를 비롯해 점차 그룹 계열사로 확대되는 추세다.

롯데마트 노동조합은 기업 정체성에 관한 분명한 입장표명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롯데마트 노조는 “롯데가 태생이 애매한 기업이라 현장 노동자들은 난감하다. 롯데가 한국 기업이 맞다면 일본 제품 판매 중지 및 국민 정서에 맞는 행동을 단행해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롯데는 정체성만큼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트 노조의 기자회견과 관련 롯데마트 관계자는 “일본 불매운동에 관한 공식적 입장을 밝힐 수 없는 입장”이라며 “마트 노조에 가입된 일부 노동자들이 ‘일본제품 안내 거부’ 성명을 제출한 것이다. 대다수 국민이 일본 제품을 외면하고 있다곤 하지만, 소수의 소비자도 외면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민희 기자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