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D 라이젠 3세대 CPU. 사진=AMD 공식 SNS

‘가격 대비 성능비(가성비)’를 앞세웠던 CPU 시장의 만년 2인자 AMD가 ‘라이젠 3세대’ 제품으로 수년 동안 독주하던 인텔을 압박하고 있다. 라이젠 3세대가 아직 게임 성능이나 최적화가 아쉬운 점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지만, AMD의 파상공세에 긴장한 인텔이 기존 제품군 가격을 인하할 것으로 알려졌다. AMD와 인텔의 ‘CPU 전쟁’으로 좋은 CPU를 보다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날 전망이다.

AMD가 지난 8일 출시한 라이젠 3세대 데스크톱 CPU에는 회로 선폭 7나노미터(㎚) 공정 등 반도체 업계의 최신 기술이 집약됐다. 회로 선폭 공정이 좁을수록 회로를 움직이는 데 드는 전력과 발열량도 줄어들어 CPU 작동 속도를 올리기 쉽다. 인텔의 CPU는 14㎚ 공정에서 생산되고 있다.

코어 개수에도 변화를 줬다. 보통 PC용 코어는 쿼드코어(4개) CPU를 많이 쓴다. 고성능 제품은 헥사코어(6개), 옥타코어(8개)를 사용하기도 한다. 3D 렌더링, 비디오 편집 등 CPU 사용량이 높은 다수의 작업을 한다면 많은 코어가 필요하다.

AMD는 라이젠 3세대 중 ‘AMD 라이젠 9 3900X’에 12개의 코어를 집어넣었다. 특히 AMD는 코어 수를 늘리기 위해 2~3개의 칩을 연결해 하나의 CPU를 만드는 기술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신 기술이 집약된 만큼 AMD CPU는 성능 면에서도 인텔 CPU를 제쳤다. 벤치마크 소프트웨어 전문기업인 패스마크(Passmark)에 따르면 AMD 라이젠 9 3900X는 3만2312점의 점수로 전체 CPU 순위 1위에 올랐다.

라이젠 3세대는 CPU 성능을 크게 개선하면서도 가성비 측면은 유지했다. 패스마크의 CPU 성능 테스트 결과 국내에서 30만원 내외의 가격으로 판매되는 라이젠 5 3600의 점수가 2만132점으로, 70만원대인 인텔 코어 i9-9900K의 2만222점과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텔이 압도적 우위였던 게이밍 성능에서도 3% 미만으로 성능 차이가 좁혀졌다.

라이젠 3세대의 성능을 본 소비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가격비교사이트 다나와에 따르면 지난 11일 기준 AMD가 국내 CPU 시장 판매량 점유율과 판매금액 점유율이 각각 53.4%, 50.8%를 기록하며 점유율 1위를 달성했고, 19일까지도 AMD는 점유율 53~54%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AM4 소켓을 사용해 기존 메인보드를 그대로 쓸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AMD CPU는 제품별 판매량 점유율에서도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라이젠 5 3600과 라이젠 5 3700X는 출시 3일 만에 각각 10.45%와 7.15%의 판매량 점유율을 기록했다. 반면 인텔의 대표 프로세서인 ‘코어 i5-9400F’의 판매량 점유율은 9일 21%에서 11일 17.7%로 3% 이상 하락했다.

 

11일 기준 국내 CPU 시장 판매량 점유율. 사진=다나와

라이젠 3세대가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국내 소비자들은 게임 성능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출시된 지 오래된 게임일수록 AMD CPU의 많은 코어를 전부 활용하지 못한다. AMD CPU의 코어를 전부 활용하지 않는 게임을 주로 한다면 코어 수는 적어도 각각의 성능이 AMD보다 우수한 인텔 CPU를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최적화 문제도 있었다. 초기 벤치마크에서 AMD가 고식적으로 밝힌 부스트 클럭이 바이오스 업데이트 이후에 나오는 일이 있었다. 한 PC 하드웨어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출시 초기 시점에 보장했던 성능을 내기 위해 많은 시간과 개선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재활형 CPU’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인텔은 기존 제품군의 가격 인하 외에는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달 24일 대만 IT 매체 디지타임스는 인텔이 주요 PC 제조사들에 데스크톱용 CPU 가격을 10~15% 인하하겠다는 계획을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가격 인하 대상은 데스크톱과 노트북용 8세대·9세대 CPU다.

라이젠 3세대의 파상공세 전에도 인텔은 극복해야 할 난관이 있었다. 인텔은 지난해 10㎚ 양산에 성공했지만, 14㎚에서 10㎚로 전환에 문제가 생기며 전체 CPU 공급에 차질이 생기며 가격이 최대 30%까지 인상되기도 했다.

또 전문가들은 인텔이 10㎚ 기반 10세대 CPU ‘아이스레이크’를 발매해도 AMD와의 격차를 다시 벌리긴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영국 게임 매체 PC게이머 보도에 따르면 지난 18일 밥 스완 인텔 CEO가 “인텔이 10㎚를 추구하는 데 너무 높은 기준을 세웠다”며 “이번 일을 통해 배웠다. 올해는 10㎚, 2년 안에는 7㎚ 칩을 생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스레이크는 연내 출시될 예정이지만, 한정된 수량으로 노트북 브랜드에서만 제공될 것으로 전해졌다.

 

패스마크 CPU 성능 테스트 결과. 사진=패스마크 홈페이지 캡처

이번 AMD와 인텔의 ‘CPU 전쟁’은 소비자에게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AMD는 라이젠 3세대 프로세서를 인텔보다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겠다고 나섰고, 인텔은 이에 맞서 가격을 인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관련 업계에서는 현재 CPU 가격 하락 요인이 많아 당장 CPU를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PC 업그레이드나 부품 구매를 이번 달 말 이후로 미루는 것이 좋다는 분석이 많다.

만약 게임용 PC를 위해 가성비가 좋은 CPU를 구매하려고 한다면 ‘AMD 라이젠 5 2600’이나 ‘인텔 코어 i5-9세대 9400F’를 고려해볼 수 있다. 라이젠 2세대인 2600은 19일 기준 다나와에서 최저가 18만3410원, i5-9400F는 20만3160원에 올라와 있다.

패스마크에 따르면 라이젠 5 3600(29만6730원)이 가성비(CPU Value) 점수가 라이젠 5 2600이나 i5-9400F보다 높지만, 세 CPU 모두 코어가 6개여서 단순 게이밍 성능은 큰 차이가 없다. 게임용 PC라면 CPU 대신 그래픽카드에 투자하는 것이 좋다.

파이낸셜투데이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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