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신혼집 마련 위한 자금 날리고 죽을 생각도 했다”
고령 피해자 많아도…예보의 ‘깜깜한’ 대처

부산저축은행 파산 피해자들은 사건 발생 8년이 지난 지금도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사진은 피해자 유계순 씨가 거주하는 집의 입구.사진=파이낸셜투데이

“저축은행 사건 이후 한국에 살고 싶지 않다. 죽고 싶다”

2011년 상호저축은행 영업정지 사건이 발생한 이후 8년이 지나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반면 정부와 예금보험공사의 피해자 관리는 안일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금융당국 차원에서 힘을 보태겠다는 의견을 밝혔으나, 피해자들의 고통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기약없는 피해자 구제…마지못해 산다

공사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유계순(68) 씨는 적금 만기를 열흘 앞두고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 예금액 총 9000만원 중 5000만원은 돌려받았지만 4000만원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유 씨는 당시 거주하던 낡은 슬레이트집을 떠나 새집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부산저축은행에 1년짜리 적금에 가입했다.

유 씨는 “나는 글도 읽을 줄 몰라 파산 소식을 동네 사람들을 통해 들었다”며 “울기도 많이 울었고 돈을 받기 위해 각종 집회에도 나가는 등 바쁘게 돌아다녔다”고 설명했다. 현재 유 씨는 여전히 낡은 슬레이트집에 거주하고 있다.

장영엽(70) 씨도 사정은 비슷하다. 자신이 초등학교만 졸업한 것이 한이 돼 자식만큼은 대학에 진학시키고자 고무 공장에 다니는 남편과 함께 밤낮으로 일해 돈을 모았다.

장 씨는 자녀의 신혼집을 마련하기 위한 돈을 부산저축은행에 예금했다가 피해를 입었다. 신혼집으로 할 아파트를 보러 갔다가 가까운 곳에 있는 지점에 돈을 넣어둔 지 한 달 만에 은행이 문을 닫은 것이다.

장 씨는 “어느 날 눈길에 미끄러져 팔을 다쳐 병원에 다녀왔더니 은행이 문을 닫았다고 사위한테 전화가 왔다”며 “사위가 ‘어머니 거기에 돈 넣어 두셨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하니 빨리 가보라고 재촉해 아픈 팔을 부여잡고 뛰어갔는데 은행 문이 닫혀 있더라”고 말했다.

이어 “당시 예금해 둔 돈이 1억8300만원으로 그 중 3000만원은 딸이 직장 다니며 열심히 모은 돈이다”며 “엄마 아플 때 쓰라고 준 돈인데 이 돈을 모아 손자 학교 다닐 때 돌려주려고 했는데 물거품이 됐다. 딸을 볼 면목이 없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유 씨와 장 씨는 피해가 발생한 이후 적극적으로 각종 집회에 참석했다. 부산 초량동 본점에서 벌어진 점거 농성에 참여해 단식투쟁을 했을 뿐 아니라 서울을 오가며 재판에 참석하기도 했다. 장 씨의 경우 재판에 오지 못하게 막으면 담을 넘어서라도 재판에 참여했다.

하지만 돈을 돌려받을 것이라는 희망이 점차 사라지면서 이들의 금전적·정신적 피해는 커져만 갔다. 이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유 씨는 “열심히 활동을 해도 돈을 못 받아서 허무하고 정부에서 도와주면 좋겠다”면서 “사태가 발생한지 8년이 지났지만 정부에서는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장 씨 역시 “예보에만 맡기지 않고 정부가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내 돈은 내 피와 땀이 섞인 돈으로 떳떳하게 모은 돈이다. 이 돈을 받지 못하면 삶이 막막하고 노후대책도 돼 있지 않은 상태다”고 강조했다.

장영엽 씨는 자녀의 신혼집을 마련하려고 모아 둔 돈을 부산저축은행 파산으로 인해 돌려받지 못했다. 사진은 장 씨 남편이 쓴 호소문.사진=파이낸셜투데이

대책없는 예금보험공사…‘뒷짐’진 정부

저축은행 피해자 구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따라서 낙하산 인사격인 더불어민주당 수석전문위원 출신의 위성백 씨를 예보 사장으로 취임시키는 등 전 정부와 다른 행보를 보였으나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못하면서, 내년 총선대비용 보여주기식 대응 아니냐는 비판에 휩싸였다.

지난 9일 예보는 캄보디아에서 열린 캄코시티 사업 관련 항소심 재판에서 패소했다. 이 자리엔 위성백 예보사장,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참석했으나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재판에 패소하면서 부산저축은행 파산 사태로 발생한 채권 6500억원의 회수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캄보디아 재판부는 예보가 관리 중인 캄코시티 사업 지분 60%를 월드시티 측에 돌려주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예보는 2심 재판부의 판결 사유를 면밀히 분석해 반박할 수 있는 주장과 법리를 명료하게 밝혀 대법원에 상고할 것이라는 계획을 전했다. 3만8000여명의 피해자의 피해 보전을 위해 조직의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는 의도다. 하지만 1심, 2심 재판을 모두 패소한 상황에서 재판 결과를 뒤집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은 장 씨와 유 씨처럼 대부분 고령으로 이들 중에서는 세상을 떠난 사람도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일각에서는 예보가 고령의 피해자 관리에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재판 진행사항 등에 대한 정보 전달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실제 파이낸셜투데이가 만난 피해자들은 TV를 통해 재판 결과를 전달받았고 재판이 진행됐는지 조차 모르는 피해자도 있었다.

예보는 저축은행 피해자 관리를 총괄하는 부서에서 배당 관련 내용만 안내할 뿐 자산매각 등 기타 구제방안 등의 설명은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다. 저축은행 피해자들은 예보에서 관리 운영하는 각 저축은행 파산재단에서 별도로 관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예보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배당 관련 내용을 제외한 세세한 내용을 모두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저축은행 피해자가 부산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특별하게 관리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들어 국회의원이 관심을 갖고 언론 보도도 늘어난 것을 계기로 과거에는 예보 단독으로 피해자 구제를 추진했다면 국회, 금융당국, 부산시 등이 협업해 회의도 진행하고 있다. 회의에서는 현지 재판에서 승소할 수 있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당국 전문가는 “지난 8년간 똑같은 방법으로 저축은행 피해자 문제를 다뤄왔지만 정책실효성에 의문이다”며 “관련 법 개정 등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피해자 구제 방안을 모색하지 않는 한 제2, 제3의 저축은행 사태는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민아·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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