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 두번째부터 슈퍼크리에이티브의 김형석 공동대표, 강기현 공동대표, 김윤하 기획실장, 스마일게이트 메가포트의 이상훈 사업실장. 사진=공식방송 캡처

11개월 동안 운영 이슈와 과금 피로도로 쌓인 불만이 보안 이슈로 격발돼 “한국 게임사에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며 증오로 번졌던 ‘에픽세븐’의 유저 간담회가 8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운영진이 8시간 내내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이미 돌아선 유저들의 발걸음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15일 오후 7시 30분 경기도 성남시 판교 W 스퀘어에서 모바일게임 ‘에픽세븐’의 유저 간담회가 열렸다. 같은 시간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도 진행됐다. 동시시청자 수만 1만3000여명에 달할 정도로 이번 간담회에 많은 이목이 집중됐다.

이번 간담회는 에픽세븐 유저들이 그동안 쌓아온 불만이 ‘치트오매틱 논란’으로 한꺼번에 폭발하자 유저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마련됐다. 간담회장에는 개발사 슈퍼크리에이티브의 김형석 공동대표와 강기현 공동대표 겸 최고기술책임자(CTO), 김윤하 콘텐츠 기획실장, 퍼블리셔 스마일게이트 메가포트의 이상훈 사업실장이 참석했다.

‘치트오매틱 논란’은 지난달 27일 업데이트된 신규 콘텐츠 ‘오토마톤 타워’의 상위랭커가 1997년에 나온 메모리 에디터툴로 게임 데이터를 조작해 클리어했다고 인증하며 불거졌다. 간담회 1부의 초반 질문과 해명도 ‘치트오매틱’에 대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강기현 대표는 준비된 자료를 통해 “기술 문제 책임자로서 사과드린다. 메모리 에디트는 클라이언트 안에 암호화된 값이 있어 전투 클리어 시 변경 사항이 있으면 알 수 있다. 출시 이후 매달 제재했고, 3일 로깅 업데이트 이후에도 치트 프로그램을 사용했다고 주장해 전투능력치 및 재화 데이터를 모두 난수화했다. 유나 엔진은 보안과는 관계없고, 수치 보안은 별도로 하고 있다.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왜 유저들이 화가 났는지 모르는 것 같다. 현재 에픽세븐 유저들은 그런 게임 하냐는 조롱을 듣는다”며 울분을 토한 유저도 있었다. ‘유저 적대적 운영’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이유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사과문에 ‘불만을 품고 악의적인 게시물을 올리는 소수의 유저’라는 문구를 넣은 이유에 관해 묻자 이상훈 실장은 “써서는 안 될 말을 썼다. 얻은 건 없고 그런 표현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많은 분이 실망하셨을 것 같다. 최근에는 공지를 올리기 전 여러 부서와 GM 부서에서 별도의 확인을 거치고 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사과했다.

에픽세븐 출시 초기부터 유저들의 피로 원인이었던 확률형 뽑기 시스템 ‘월광소환’에 관한 질문도 많았다. 월광소환은 출석 이벤트나 업적보상 등으로 얻는 재화를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성약소환(일반뽑기)’을 120번 해야 한 번 할 수 있어 유저들 사이에선 ‘이중뽑기’로 불린다. 성약소환 120번에 드는 재화를 전부 현금으로 환산하면 33만원가량이다.

 

김형석 슈퍼크리에이티브 공동대표. 사진=공식방송 캡처

간담회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월광소환에 관해 답변하는 부분에서 나왔다. “월광소환, 기사단 전쟁과 신비패키지를 통해 월광 캐릭터를 얻을 수 있는 ‘신비소환’이 있는 것 자체가 존재하면 안 된다. 너무 화가 난다”는 유저도 있었고, 월광소환에 원하는 5성 캐릭터를 얻을 수 있는 ‘천장’을 도입할 생각이 있냐고 묻는 유저도 있었다.

김형석 대표는 “스트레스가 있고 불편함을 만드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검토하겠다고 대답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월광소환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해보고 해결이 어렵다면 혁신적인 방법을 고려하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어진 질문에 “천장을 도입할 계획이다. 유저 기대치의 최소치로 고민 중인데, 40회로 고민하고 있다. 천장으로 얻을 수 있는 월광 5성은 랜덤”이라고 답변했다.

김형석 대표가 말한 월광소환 천장에 도달하기 위한 수치인 40회는 1320만원가량이다. 간담회 현장은 물론이고 에픽세븐 커뮤니티, 생중계 채팅창에 ‘선택할 수도 없는 데이터 덩어리를 얻자고 1320만원을 쓴다는 것이 말이 되냐’는 말이 넘쳐났다. 이후 김형석 대표가 “재검토하겠다”고 발언을 철회했지만, 월광소환 천장도입이라는 카드는 역효과만 남겼다.

이번 간담회는 유저들과 소통하기 위한 간담회였지만, 큰 성과는 남기지 못했다. 먼저 간담회 참석을 신청한 유저 중 추첨을 통해 참석자가 정해진 게 아니라 고레벨, 장시간 이용자 100명을 선정해 초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과와 소통을 위한 자리였지만 죄송하다는 말 이외의 답변이 대부분 “검토하겠다”, “고려해보겠다”, “개선 방안을 알려드리겠다” 였던 점이 문제가 됐다.

특히 간담회장에서 질문한 유저들도 여러 번 언급했지만,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어 답변자들의 발언이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스마일게이트에선 사업실장이, 슈퍼크리에이티브는 공동대표 두 명이 모두 참석했지만 유저들은 간담회장에 있는 스마일게이트나 슈퍼크리에이티브 관계자 중 최종 책임을 지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느낀 것이다.

 

사과하고 있는 최진원 스마일게이트 메가포트 사업팀장. 사진=공식방송 캡처

에픽세븐에 신규 캐릭터가 추가되고, 패키지도 나왔지만 매출이 하락한 것은 에픽세븐에 돈을 쓰는 유저 수가 그만큼 줄었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실상 게임에 대한 애정을 잃고 자신이 에픽세븐에 투자한 만큼 잔뜩 화가 난 사람들에게는 오는 31일, 다음달 15일, 1주년 간담회에 구체적인 개선 방안을 알려주겠다는 답변보다는 어떤 점이 부족했고, 어떻게 고치겠다는 내용이 필요했다.

그중에서도 월광소환 천장도입의 역효과가 컸다. 간담회 이후 포털사이트에서 에픽세븐을 검색하면 1320만원이 연관검색어로 나올 정도다. 한 마디 한 마디를 신중하게 해야 했던 자리에서 “월광소환 천장은 40회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섣부른 발언이었다.

또 과금 피로도에 관한 질문에서 이상훈 실장이 “패키지들은 매출보다는 예를 들어 구글플레이에서 패키지를 만들면 한국 마켓에 노출해 주겠다고 하는 그런 것들이 겹쳤다”고 답변한 것도 뭇매를 맞고 있다. 유저들은 패키지 상품이 너무 많다고 이야기했지만 퍼블리셔가 구글플레이에 책임을 전가한 것으로 느껴질 수 있었다.

이외에도 “전체 매출에서 한국은 15%”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이 됐던 최진원 스마일게이트 메가포트 사업팀장이 사과를 위해 자리를 찾았던 부분에서 오히려 화를 돋운 셈이 됐다. 최진원 팀장은 “사업담당자로서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많은 국가에서 인기 있는 에픽세븐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었고, 미숙한 답변으로 인해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사과했지만, 앉은 채로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지켜보고 있던 유저들은 허탈함을 내비쳤다.

한 업계 관계자는 “메이플스토리2에서 강화확률 100%가 실패했을 때 두 시간 만에 사과문이 올라왔고, 이후에 디렉터가 소스코드를 공개하며 해명하자 유저들이 절박함과 진정성을 이해했던 적이 있다”며 “이미 시기는 놓쳤지만, 간담회를 연기한 만큼 진정성 있는 사과를 통해 화난 유저들을 달래고 어떤 점이 부족했고, 어떻게 고칠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먼저였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변인호 기자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