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국 공조에 덜미, 정태수 생사 및 소재 확인될까?
다른 사람이름으로 캐나다·미국 시민권 취득…2017년부터 에콰도르 거주
파나마, 브라질, 두바이 거쳐 마침내 한국으로
과거 구속영장 집행, 구금 뒤 관련 조사 중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아들 정한근 씨가 2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해 입국장을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회삿돈 322억원을 횡력한 혐의로 수사를 받다 해외로 도주한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아들 정한근 씨가 21년만에 검거됐다. 정씨는 다른 사람의 신분을 이용해 캐나다와 미국, 에콰도르를 전전하며 도피행각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23일 대검찰청 국제협력단(단장 손영배)에 따르면 정씨는 1997년 11월 한보그룹 자회사인 동아시아가스(EAGC)가 보유한 루시아석유 주식 매각자금 322억원을 횡령해 스위스의 비밀 계좌로 빼돌린 혐의를 받는다.

정씨는 이 같은 혐의로 1998년 6월 서울중앙지검에서 한차례 조사를 받은 뒤 도주했다. 같은해 7월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됐지만, 정씨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영장이 집행되지 못했다.

검찰은 정씨 혐의에 대한 공소시효가 임박하자 2008년 9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재산 국외 도피 및 횡령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이후 검찰은 2017년 정씨가 미국에 체류 중이라는 측근의 인터뷰가 방송되자, 지난해 8월부터 본격적으로 정씨와 그의 가족에 대한 소재 추적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정씨의 가족이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 중인 사실을 파악했고, A씨가 정씨 가족의 캐나다 거주에 연루된 사실도 확인했다.

하지만 A씨는 캐나다에 간 사실이 없는데다가, 2010년 국내에서 다른 이름으로 개명했고, 이를 수상하게 여긴 검찰은 정씨가 A씨의 이름을 이용한 사실을 파악해 A씨 명의의 영주권과 시민권 관련 자료를 확보해 조사했다.

그 결과 정씨가 A씨 이름으로 캐나다 영주권과 미국 영주권, 미국 시민권, 캐나다 시민권을 각각 취득한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2011년 정씨가 미국 시민권 취득을 위해 A씨 이름으로 대만계 미국인과 결혼한 사실도 확인했다.

검찰은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 한국지부 등과 공조해 정씨가 2017년 미국 시민권자 신분으로 에콰도르에 입국한 사실을 확인했고, 에콰도르 내 거주지를 파악, 에콰도르 법원에 범죄인인도를 청구했다.

하지만 에콰도르 법원은 ‘범죄인인도 조약’이 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국 검찰의 요청을 거부했고, 이에 검찰은 에콰도르 내무부에 정씨의 강제 추방을 요청했다.

에콰도르 당국은 검찰의 요청을 받아들여 지난 18일 정씨가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최종 목적지로 삼아 파나마로 출국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한국 검찰에 통보했다. 한국 검찰은 미국 HSI 한국지부에 연락해 HSI 파나마지부를 통해 파나마 이민청에 정씨의 수배사실을 통보했고, 파나마 이민청은 18일 파나마 공항에 도착한 정씨를 입국 거부한 뒤 공항 내 보호소에 구금했다.

파나마 이민청은 현지 한국대사관에 구금사실을 알렸고, 이를 전달받은 검찰은 정씨를 브라질과 두바이를 거쳐 국내로 송환하기로 결정했다.

정씨는 각국 한국 영사 및 관계자들과 함께 파나마에서 브라질로, 브라질에서 두바이로 이송됐고, 검찰은 21일 오전 3시55분 두바이에 도착한 정씨를 넘겨받아 22일 오전 3시35분 국적기인 대한항공 편을 통해 국내로 송환했다.

현재 검찰은 과거 발부된 구속영장을 곧바로 집행해 정씨를 구금한 뒤 관련 조사를 진행 중이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검찰은 해외로 도주한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생사여부와 소재지 등도 파악 중이다

정 전 회장은 서울 대치동 은마상가 일부를 영동대 학생 숙소로 임대하는 허위 계약을 맺고 임대보증금 명목으로 72억원을 받아 횡령하는 등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6개월을 확정받았지만 2007년 도피한 뒤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파이낸셜투데이 한종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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