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산업군에서는 이렇게 직접적으로 일자리에 간섭하지 않는데…”

한 시중은행 관계자가 일자리 기여도 측정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6일 은행권을 대상으로 일자리 창출 현황 파악에 나선다고 밝혔다. 시중은행 및 지방은행 등이 대상이며 측정 항목은 은행의 직접 고용과 아웃소싱을 통한 고용, 다른 산업에 지원한 자금 규모, 고용유발계수 등으로 직·간접적인 기여도를 측정한다.

금융위는 오는 8월 중으로 조사 결과와 우수 사례를 발표하고 향후 다른 금융 업권까지 조사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금융위의 방침에 은행권은 물론 금융권 전체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더불어 은행에게 ‘고용 압박’을 주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단순 측정’임을 강조하며 금융지주 수장들까지 만났으나 여전히 질책을 피해가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가 ‘일자리’에 대한 말을 꺼낸 순간부터 은행권은 금융 당국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은 의도치 못했던 반응일 수도 있지만, 결국 금융위 역시 일자리 기여도 측정을 통해 고용을 장려 하고자 했음은 명확하다. 하지만 금융위는 은행권의 업황은 고려하지 않은 채 암묵적인 눈치만 주는 행보로 반감을 사고 있다.

은행권의 판도는 디지털의 영향으로 최근 몇 년 새 급변했다. 대면 창구를 찾는 손님이 줄어들면서 은행 점포 수는 감소하는 반면 비대면 서비스는 강화되고 있다. 2017년에는 모든 영업을 비대면으로 처리하는 인터넷은행까지 등장했다.

은행 업무에 대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핀테크 기업의 등장으로 은행 업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단 은행뿐 아니라 모든 금융기업이 겪고 있는 변화이기도 하다. 이에 금융기업들은 디지털·ICT 역량을 키우는 데 열중하고 있으며 금융 당국도 ‘혁신금융’을 요구하고 있다.

이렇듯 디지털 기조에 따라 은행의 고용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영업점 인력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는 반면 디지털 인력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은행들은 디지털 인력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채용 의지를 드러내고 있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일자리 창출 현황을 점검하는 것은 은행에게 혁신금융도 챙기고 일자리 문제도 신경쓰라는 압박으로 작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영업점 인력을 줄이는 데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혁신금융을 외치는 금융 당국의 의지와도 상반되는 행보다.

금융위가 진정으로 고용 장려에 대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금융기업이 스스로 디지털 기조에 발맞춰 고용 확대를 이뤄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속히 낡은 규제를 철폐하고 신사업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도록 지원해 그것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지금처럼 고용 점수 매기기에만 열중한다면 정부의 일자리 과업의 부담을 민간 기업에 미루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파이낸셜투데이 임정희 기자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