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몇 년 전부터 이른바 ‘철새·먹튀설계사’가 기승을 부리더니 급기야 보험시장의 판도가 바뀌었다.

보험사 전속설계사들이 수수료 많이 주는 법인대리점(GA)로 대거 이동하면서 대형 GA들이 웬만한 중소형 보험사를 능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창기 별 볼일 없던 GA가 세를 확장해 2015년에 보험사 전속설계사 수를 넘어섰다. 2018년 6월 기준 국내 보험설계사(41만명) 중 GA가 22만5000명으로 55%를 차지해 보험사 전속 18만5000명(45%)를 앞질렀고 이 추세는 계속 확산되고 있다.

보험설계사가 보험사 소속이든 GA 소속이든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보험가입자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즉, 철새설계사·먹튀설계사가 증가할수록 보험가입자는 고아계약으로 전락돼 첫째, 보험료 납입 안내를 적기에 받지 못해 보험계약이 실효될 수 있다. 둘째, 계약 유지과정에서 필요한 계약변경이나 펀드 변경 등을 적시에 안내 받지 못해 활용 기회를 상실한다. 셋째, 질병이나 재해 사고 발생 시 안내할 설계사가 없으므로 보험금 청구를 누락하거나 지연할 수도 있다.

설계사 정착률은 작년 상반기 말 기준으로 생보사는 평균 40.4%, 손보사는 평균 49.7%에 불과하여 1년 이상 가는 경우가 절반 이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자발적으로 그만두는 경우가 있지만 보험사 보다 높은 수수료를 지급하는 GA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같은 상품을 팔더라도 GA가 판매수수료가 많고 수수료를 앞당겨 지급하기 때문이다.

보험계약은 대부분 장기인데 철새설계사·먹튀설계사가 증가할수록 수수료 많은 상품 판매에 매달려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높고, 계약자에 대한 유지관리서비스가 소홀하거나 누락이 발생한다. 이런 문제가 가입자 민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보험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이 쌓여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금융 민원 중 보험 민원이 61.9%로 압도적이다. 이것은 괜한 것이 아니고 전속설계사 보다 GA설계사의 불완전판매율이 높은 것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된 것은 보험사들이 판매실적 달성을 위해 만든 ‘판매 중심의 설계사 수수료 규정’ 때문이다. 이 규정에 따라 설계사들은 판매수수료의 50~70%를 계약 첫해에 받는다. 20~30%를 두 번째 해, 나머지를 세 번째 해에 받는다.

이것도 모자라 성질 급한 일부 보험사나 GA는 판매 익월에 판매수수료를 한꺼번에 지급하기도 한다. 이른바 ‘선지급 수수료’인데 먹튀설계사를 양산하는 주범이다. 보험료가 입금되지도 않았는데 모두 납입된 것으로 가정해서 수수료를 한꺼번에 앞당겨 지급하다니 누가 봐도 황당하다. 설계사들은 수수료를 더 주고 앞당겨 주는 곳으로 철새처럼 이동(엑소더스)하고 수수료를 일시금으로 먹고 튀는 것이다. 이들에게 가입자 피해는 관심 대상이 아니다.

이런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미국은 판매수수료의 37.2%를, 영국은 44.4%를 계약 첫해에 지급한다. 상품 판매 보다 계약 유지를 중심으로 수수료를 지급하게 해서 계약을 장기 유지시켜 가입자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설계사 정착률과 보험계약 유지율이 높은 선진국의 경우 ‘계약유지 수수료’ 등을 지급해서 고아계약 발생 빈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우리나라에서 판매중심의 설계사 수수료규정은 수십년간 암묵적으로 지속되어 온 악습이다. 이에 대해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보험사들은 가입자 이익 보다 판매실적 달성이 우선이다 보니 수수료규정을 판매중심으로 만들어 설계사들에게 소비자에게 적합한 상품 보다 수수료 많이 받는 상품을 판매하도록 내몰았고 설계사들도 보험사 의도대로 수수료 많은 상품 판매에 몰두해 왔고 지금도 여전하다.

우리나라에 GA를 도입할 때 정부가 내세운 것은 “여러 보험사 상품 중 고객에게 최적의 상품을 골라서 가입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공약은 실종된 지 오래고 GA가 수수료 버는 이전 투구의 장으로 전락됐다. “소비자에게 좋은 상품보다는 수수료가 높은 상품을 판매할 수 밖에 없다”는 GA 설계사의 말이 현실을 말해 준다. GA들이 공격적인 영업을 위해 최근에 첫해 판매수수료를 월보험료의 최대 1700% 수준까지 올려놨다.

소비자를 보호해야 할 금감원은 매번 소비자 보호를 외쳐 왔지만, 판매 중심의 설계사 수수료 규정으로 인한 온갖 폐해와 소비자 피해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왔다. 근본 대책 없이 지금도 금융꿀팁이나 발표하며 소비자들에게만 주의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여기서 반드시 명확하게 알고 가야 할 것이 있다. 설계사 수수료는 보험사가 주는 것이 아니라 계약자가 주는 것이다. 수수료는 계약자가 낸 보험료 중 사업비로 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험사나 GA는 자신들이 주는 것으로 착각해서 규정을 제멋대로 만들어 지급해도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보험은 돈 내는 사람이 주인이므로 보험사가 아니라 보험계약자가 주인이다. 그러므로 모든 프로세스와 의사 결정은 마땅히 보험계약자 중심이어야 한다. 보험사들이 만든 판매 중심의 수수료 규정으로 선량한 계약자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주인을 배반하는 것이므로 당초부터 잘못이고 용납될 수 없다. 그런데도 어떤 보험사나 GA도 가입자들에게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한 적이 없다. 공정위가 나서서 불공정 여부에 대해 심도 있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제라도 정신 차려 수 십년간 고착된 악습을 바로 잡아야 한다. 보험사나 GA들은 잘못된 수수료규정을 스스로 바꿀 수 없으므로 금융위가 나서야 한다. 그나마 최근에 금융위가 설계사 수수료 체계를 고친다고 한다. 첫해 판매수수료에 상한선을 두되, 월납입 보험료의 1200% 수준이 유력하다고 한다. 판매수수료를 몇 해에 걸쳐 나눠 주는 분급안을 제도화하는 방법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험은 상호부조의 제도이므로 가입자를 위한 것이지 보험사나 GA의 돈벌이 수단이 아니다. 금융위의 수수료규정 개편에 대하여 일부 GA가 시장원리에 반한 것이라며 반대했다는데 너무나 뻔뻔하다. 머슴이 자기 배를 계속 채우기 위해 주인에게 ‘갑질’하며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GA는 계약자가 낸 돈으로 월급 받을 자격이 없다.

금융개혁과 소비자 보호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금융위가 진정으로 소비자 보호의 의지와 역량이 있다면 수수료규정을 판매에서 유지 중심으로 강력하고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 행여 반발하는 보험사나 GA가 있다면 따끔하게 야단치고 정신차리게 만드는 것이 금융위의 역할이고 해야 할 일이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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