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손상 비슷해도 보험금은 천차만별
3∼7㎞/h 충돌, 초등생 놀이기구 수준…거의 다치지 않아
보험금 차이 크면 신뢰도 및 형평성 훼손…지급기준 정립 필요

사진=연합뉴스

가벼운 접촉사고임에도 보험금 지급의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 보험금이 최대 340만원까지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보험금 지급 편차는 자동차보험의 신뢰도를 낮추고 불필요한 보험금 증가로 이어지는 만큼 지급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최근 보험연구원은 국내 대형 손해보험사의 2016년 7∼11월 경미손상 사고 2만118건과 보험금 지급 관련 민원을 분석했다고 밝혔다. 해당 사고는 범퍼에 대한 경미손상 수리 등급이 적용된 사고 건으로 이 가운데 3903건은 상해 정도가 미미했다. 사고유형에 대한 정보는 없지만 과실비율 100%인 경우가 91.8%로 후미추돌 사고가 대부분일 것으로 분석됐다.

경미사고에서 범퍼에 대한 경미손상 수리 기준은 1~3유형으로 구분되는데 투명 코팅막만 벗겨진 도막손상(도장막 손상 없음)은 1유형, 투명 코팅막과 도장막(색상)이 동시에 벗겨진 손상(범퍼소재 손상 없음)은 2유형이며 긁힘, 찍힘 등으로 도장막과 함께 범퍼소재의 일부가 손상(구멍 뚫림 없음)은 3유형으로 구분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경미손상 수리 등급이 높아질수록 대물 및 대인배상 금액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물배상 금액은 상해등급이 없는 경우에 50만원 내외로 유사하지만 상해등급 14급의 경우 수리 등급 2급과 3급에서 대인2 및 대물배상 금액이 각각 약 10만원의 차이가 났다.

특히 충격의 크기가 비슷한 사고지만 대인배상 보험금 지급의 차이는 큰 것으로 나타났다.

경미손상 수리 기준 2급, 상해등급 14급 사고에서 대인배상2의 25분위와 75분위 차이는 77만8000원이고 경미손상 수리 기준 3급, 상해등급 14급 사고에서는 119만2000원의 격차를 보였다. 95분위와 5분위의 차이는 340만원 내외로 나타났는데 이는 대인보험금 하위 5%와 상위 5%의 차이가 340만원이라는 의미다.

사진=보험연구원

또 경미손상 수리 기준 2급 사고에서 25분위와 75분위의 차이는 치료비 41만1000원, 합의금 50만원, 향후치료비 약 40만2000원으로 나타났고 3급 사고에서 치료비의 차이는 63만원 내외, 합의금 51만6000원, 향후치료비는 약 66만3000원으로 사고충격이 커질수록 치료비와 향후치료비의 차이가 확대되는 추세를 보였다.

합의금은 휴업손해, 상실수익, 향후치료비 등으로 구성된다. 보통 병원 치료를 받은 경우 치료비는 병원에 직접 지급되지만 합의금은 교통사고 환자에게 지급된다.

한편 동일한 경미손상 수리 등급과 상해등급에서도 일부(금액 기준 상위 5%) 사고에 대해서는 치료비가 177만원을 초과하고 합의금도 195만원을 초과했다.

이상의 분석 결과는 비슷한 충격으로 인한 사고에서도 인적, 물적 손해에 대한 배상이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경미손상 수리 기준에 해당하는 충격인 시속 3∼7㎞/h로 충돌한 경우 운전자가 다치는 경우는 드물다는 연구가 발표된 바 있다. 충돌속도 시속 3∼7㎞/h는 일상생활, 특히 초등학생 이상이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놀이기구 탑승에서 발생할 수 있는 충격이다. 경미사고에서 인체 상해가 없는 경우에도 대인배상이 발생한다면 보상심리에 기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전용식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사고를 유발한 충격이 클수록 치료비와 향후치료비가 증가하고 변동성도 확대된다”면서 “상해등급 14급, 동일한 경미손상 수리 등급에서 치료비 차이가 나는 것은 사고 개별적 특성이 원인일 수 있지만 도덕적 해이, 보상심리 등이 원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급 보험금의 차이가 커지면 민원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진다. 실제로 국내 대형 손보사에 접수된 민원을 살펴보면 최근 3년간 자동차보험 민원 4만3494건 중 보상 관련 민원은 2만8295건으로 전체 민원의 65.1%를 차지했다. 이 중 대인, 대물보상 관련 민원이 각각 7956건, 2만338건이었으며 경미사고 관련 민원이 각각 18.1%, 14.6%나 됐다.

보험연구원은 경미사고 관련 민원의 대부분을 보험금 과다 지급 및 적정성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했다. 실제로 접수된 민원 사례에서도 교통체증으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앞차를 추돌한 단순 접촉사고였지만 앞차 운전자는 수리비용으로 45만원, 상해등급 14급으로 보험금 425만원을 지급받아 보험금 산정의 적정성에 의문이 간다는 것이다.

이는 동일한 상해등급 14급 환자들 사이에서 합의금 등 보상 금액의 차이 발생 시 형평성 훼손, 보상심리 확대를 불러일으켜 불필요한 보험금 지급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전 연구위원은 “향후치료비 등의 합의금은 교통사고 피해자에게 직접 지급하는 항목으로 비슷한 충격의 사고임에도 합의금에 큰 차이를 보이면 교통사고 환자들의 보상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면서 “교통사고 경험이 있으면 이런 보상심리가 더 확대될 여지가 있어 불필요한 보험금 지급, 사회적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경미사고 대인배상 기준이 정립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치료비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경미사고 심사기준을, 합의금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향후치료비 지급 기준 등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보험의 치료비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진료자료를 검토한 후 심사결과를 보험회사에 통보하면 보험회사가 병원에 지급하는 방식이다. 향후치료비 혹은 합의금은 이런 치료비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지급 기준이 마련되면 보험회사도 이를 기준으로 지급 근거를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전 연구위원은 “경미사고 대인배상 기준이 마련되면 대인배상 보험금의 변동성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보험금 지급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불필요한 보험금 지급억제는 다시 불합리한 보험료 할증을 억제해 보험금 원가 상승으로 인한 보험료 인상 압력도 억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도 “사고 피해자의 보상도 중요하지만 가해자의 과실에 맞는 수준의 보험료 부담을 지우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경미사고 대인배상 기준을 정립해 공평하게 보험금이 지급되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이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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