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전공 입학생 모집 등 2021년 혁신안 시행 예정
비인기학과 축소 우려 확산, “지속적인 의견 수렴 과정 필요”

사진=연세대학교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가 교육부의 재정지원을 받기 위해 제안한 혁신안이 학생들로부터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졸속으로 마련됐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지난해 9월 역량강화대학으로 분류돼 정원 10%를 감축해야 할 위기에 놓였던 연세대 원주캠은 올 1월 교육부가 진행한 대학혁신지원사업에 참여, 최근 대상자로 선정됐다. 교육부는 역량강화대학으로 지정된 66개 학교를 대상으로 해당 사업을 시행해 각 학교가 마련한 혁신안을 제출받았다. 심사를 통과한 22개 학교는 교육부의 재정지원을 계속 받을 수 있게 됐다.

원주캠이 제출한 혁신안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는 창의적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다. 세부적으로는 ▲디지털 헬스케어 ▲지속가능발전의 학문별 특성화 ▲무전공 광역 모집 및 전공 선택제 시행 ▲융합·미래지향 전공 창출 기반 확보 ▲빅데이터 기반 학생 밀착 지원 등이다. 혁신안은 2021년부터 적용된다.

혁신안을 통해 원주캠은 안정적으로 학교를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학생들 의견은 달랐다.

연세대 학보사인 ‘연세춘추’가 이달 실시한 설문조사(579명 대상)에 따르면 혁신안에 대해 부정적(32.5%)으로 생각하는 학생들이 긍정적(23%)이라고 답한 학생들보다 많았다. 보통이라는 응답은 44.6% 정도다.

또한 혁신안 구성에 학내 구성원의 의견이 잘 반영됐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아니다’라고 답한 학생이 48.4%로 응답자의 절반에 달했다. ‘그렇다’고 답한 학생은 11.8%, ‘보통이다’는 39.9%를 차지했다.

이처럼 학생들이 혁신안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무전공 광역 모집 및 전공 선택제’ 때문으로 파악됐다. 해당 제도가 시행되면 일부 학과가 축소되거나 폐지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해당 제도는 기존 자유전공학부와 비슷하게 입학 시 전공을 선택하지 않고 입학해 기초과정을 거친 후 진로를 결정, 심화전공을 선택하는 제도다. 자유전공학부가 일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무전공 제도는 신입생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를 도입하면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에 대해 충분히 고민할 시간적 여유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과에 대한 정체성 혼란 ▲목적의식 없는 시간 낭비 ▲전임교수에 대한 불분명함 ▲취업이 잘 되는 인기학과로의 쏠림현상 문제점이 불거질 수도 있다.

실제 무전공 제도를 도입한 학교에서는 이와 같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I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포항공과대학교(POSTECH), 한동대학교 등은 이 제도를 통해 신입생을 모집한다. 이들 학교는 인기학과로 학생들이 집중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카이스트는 지난해 가을학기 2학년 진학을 앞둔 94명 학부생 중 비인기학과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를 선택한 학생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유니스트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3월, 2학년 진학 예정인 386명 학생 중 원자력 과학 및 공학 트랙과로 진학을 희망한 학생은 4명에 불과했다.

자유전공학부로 입학한 졸업생 A씨는 “무전공 제도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은 것 같다”며 “자유전공학부에서도 전공 선택시 인기학과로 학생들의 쏠림이 심하다. 과 정체성에 대한 혼란도 신입생 내내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A씨는 “학생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지 않고 기존 혁신안대로 추진을 해버리면 나중에 인문학 같은 순수학문의 축소는 불가피해 보인다”고 우려했다.

재학생 B씨는 “이번 혁신안은 문과생들의 의견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며 “일종의 전공예약제 같은 안전장치가 없으면 상대적으로 취업 문턱이 높다는 인식이 퍼져있는 문과계열 전공과목은 폐지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총학생회는 학교에서 기 실행 중인 간담회 외에도 학생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지속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세부적인 방안을 마련해 혁신안을 개선해야 한다는 견해다.

김도형 연세대 원주캠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장은 “대학혁신지원사업의 토대가 되는 혁신안을 만드는 기간이 고등교육기관인 대학교의 새로운 비전과 학사구조의 전체적인 변화를 결정하기에는 짧았다고 판단된다”고 운을 뗐다.

이어 “교육부에 제출한 혁신안은 교육부와의 약속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큰 틀이나 방향 자체를 모두 바꾸기는 힘들다는 점은 이해한다”며 “다만 어느 정도의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사업에 대한 내용을 설명,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이러한 내용을 대학본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해 학생들에게 통보하는 게 아니라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 등과 함께 논의하고 더 좋은 의견이 있으면 반영해 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파이낸셜투데이 이동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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