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남북 마음의 장벽 허무는 고성 ‘DMZ 평화의 길’
[르포] 남북 마음의 장벽 허무는 고성 ‘DMZ 평화의 길’
  • 김민희 기자
  • 승인 2019.05.2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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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와 철책 사이…분단 역사 오롯이 담은 ‘해안 철책길’
소망트리에 담긴 염원, “우리의 한 걸음, 평화 향한 큰 걸음이길”
이산가족 상봉 등 평화상징 된 대한민국 최북단 ‘금강통문’
금강산전망대, 6·25전쟁 흔적과 선녀와 나무꾼 전설 한눈에
대한민국 최북한 지점인 금강통문 앞 기념비. 사진=한종해 기자
대한민국 최북단 지점인 금강통문 앞 기념비. 사진=한종해 기자

“귀하는 지금 비무장지대로 진입하고 있는 중입니다.”

4·27남북정상회담 1주년인 지난달 27일, 고성 비무장지대(DMZ) 평화의 길이 개방됐다. 정부는 평화통일 사업의 일환으로 파주·철원·고성 DMZ길을 차례로 개방하고 있다. 국민과 함께하는 통일의 첫걸음인 셈이다.

첫 구간으로 선정된 ‘고성 DMZ 평화의 길’은 군사적 긴장감이 감도는 동시에 관광지의 들뜬 분위기도 함께 느껴졌다. DMZ는 1953년 6·25정전협정에 의해 그어진 휴전선을 중심으로 남으로 2km, 북으로 2km가량 설정된 남북 완충지대다. 국제 조약에 의해 군대 주둔이나 무기 배치가 금지돼있다. 서해안 임진강 하구에서 동해안 강원도 고성까지 총 길이는 248km에 이른다.

파이낸셜투데이는 둘레길이 개방된 지 약 한 달만인 지난 16일 이곳을 찾았다. 세 차례의 신청 끝에 비교적 한산한 목요일 A코스를 돌아볼 수 있었다.

◆도보길 포함된 A코스 인기…서약서 작성 및 신원 확인 후 입장

고성 DMZ평화의 길은 A, B코스로 나뉜다. 도보와 차량을 이용하는 A코스(통일전망대~해안 철책 도보~금강산 전망대)와 차량 이동만으로 구성된 B코스(통일전망대~금강산전망대)다. 도보길이 포함된 A코스는 경쟁률이 20:1까지 치솟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A코스는 통일전망대를 출발해 약 2.7km가량의 해안 철책길을 걷는 것으로 시작된다. 남방한계선인 ‘통문’에 도착하면 버스로 갈아타 금강산전망대로 향한다. 약 6.1km의 거리를 거쳐 다시 출발지점으로 돌아오는 구성으로, 총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평화의 길’에 들어서기 전까지 많은 단계를 거쳐야 했다. 고성군 현내면에 있는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서에 들러 신고서를 작성한 뒤, 차를 타고 전망대로 이동했다. 관광객들은 미리 안내받은 집결지로 출발 30분 전까지 모여야 한다.

해안 철책길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대기중인 관광객들. 사진=한종해 기자
해안 철책길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대기중인 관광객들. 사진=한종해 기자

출발 전 안보견학에 관한 준수사항이 적힌 서약서에 서명을 했다. 형광색 조끼를 입고 해안철책길로 이어진 문 앞에 대기하니 군 장병들의 신원 검사가 이어졌다. 소지품은 생수와 휴대전화로 제한됐다. 음주를 한 방문객은 출입이 금지되는 등 엄격한 통제가 이뤄졌다.

각자의 소원을 적은 소망카드까지 챙기니 모든 준비가 끝났다. 해당 카드는 도보길에 세워진 ‘소망트리’에 걸면 된다. 군사적 위험이 존재하는 곳인 만큼 해설사와 안전요원, 장병들이 동행했다.

◆ 냉전 흔적 그대로…고요한 해안 철책길

분단 이후 민간인에게 처음으로 개방되는 탓일까. 해안 철책길로 향하는 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기대감으로 들뜬 모습이었다. 가파른 흙길을 따라 내려가면 철책 너머로 넓게 펼쳐진 동해안을 발견할 수 있다. 발자국 하나 없는 하얀 백사장에는 파도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오른편으로 이중 철책을, 왼편으로 지뢰지대를 둔 모랫길을 삼삼오오 무리 지어 걸었다. 지난 1월 통일전망대를 방문했을 당시 멀리서 바라만 봤던 곳이다. 두 발로 직접 걸으니 70년 분단의 현실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해안선을 따라 길게 이어진 철책은 전자제어 시스템을 통해 외부침투를 감지하고 있었다. 해설사에 따르면 하단에 매달린 페트병에는 탐지 오작동을 방지하기 위한 동물 기피제가 설치돼 있다. 약간의 쓰레기들이 철책 아래까지 떠밀려 와 있었지만, 내용물을 확인할 수 없어 따로 수거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처음 발길을 멈춘 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기차역, 제진역이다. 2007년 금강산역에서 출발해 감호역을 거쳐 제진역까지 단 한 번 시험 운행을 한 뒤 지금까지 멈춰있다. 동해선 남북철도가 재개통된 것은 1950년 이후 57년 만이다.

조금 더 걷다 보면 동해선 기차가 통과하는 통전 터널이 등장한다. 1937년 일본이 자원 수탈을 목적으로 뚫었던 곳이다. 이후 강릉과 울진, 삼척, 포항을 거쳐 부산까지 이을 계획이었으나 태평양전쟁 발발로 강원도 양양이 마지막 지점이 됐다. 당시 이곳 주민들은 철로를 이용해 원산생활권을 공유했다고 한다.

유년시절 친구들과 함께 방문한 A(70)씨는 “양양에 살던 어릴 적에는 금강산으로 소풍을 떠나곤 했다”며 “분단 이후 늘 그리워하던 곳이었는데 DMZ 평화의 길이 열린다고 해서 바로 신청했다.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철책길 왼편에는 ‘지뢰’ 팻말이 붙은 저지선이 있었다. 해설사에 따르면 관광길을 개방하면서 가장 신경 쓴 것이 바로 이곳이다. 지뢰가 해안길로 밀려 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벽돌을 쌓고 저지선을 마련했다.

지뢰지대 근처는 분홍빛 해당화와 달콤한 향기를 내뿜는 아카시아 나무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낯설지만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었다.

◆ ‘소망트리’ 지나 대한민국 최북단 ‘금강통문’ 까지

남방한계선에 다다르니 ‘귀하는 지금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가 관할하는 비무장지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안내판이 등장했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사진=한종해 기자
사진=한종해 기자

남방한계선은 군사분계선에서 남쪽으로 2km 떨어져 동서로 그어진 선이다. 이곳에는 지뢰 폭발로 처참히 부서진 굴삭기가 보존돼 있다. 2003년 해안 소초 전신주 작업을 하던 중 지뢰를 밟고 뒤집어 진 모습 그대로였다. 미확인지뢰지대가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는 사례였다.

눈을 돌려 북쪽 바다를 보면 동해안 최북단 섬 ‘송도’가 눈에 띈다. 전망대에서 봤을 때 오른쪽으로 튀어나온 섬이다. 송도 바로 뒤에는 북한의 최남단 섬인 ‘외추도’가 위치해 있다. 해설사에 따르면 두 섬의 거리가 가까운 탓에 이곳을 통해 북측 군인이 침투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송도 인근에는 DMZ 개방을 기념한 ‘소망트리’가 마련돼 있다. 한반도 모양의 철제 구조물을 맞댄 형태로, 소망트리 가운데는 평화를 상징하는 종이 걸려있다.

소망트리. 사진=한종해 기자
소망트리. 사진=한종해 기자

곳곳에 “우리의 한 걸음이 평화를 위한 걸음이 되길 바랍니다”, “강원도의 회복과 남북 평화통일을 기원합니다” 등의 메시지가 내걸려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쓴 “평화가 경제다”는 소망카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출발 전 적어온 메시지를 소망트리에 매달며 사진을 찍는 이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짧은 관광 기간으로 빈 공간이 더 많았으나 관광객들의 소망이 모여 풍성한 나무로 자라날 날이 머지않은 듯했다.

이어 대한민국 최북단 ‘금강통문’에 도착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인 통문은 DMZ로 들어가는 공식적인 통로다. 비무장지대와 외부를 연결하는 유일한 문으로, 평소에는 굳게 잠겨있다. 금강통문에서 서울까지는 166km, 평양 230km, 백두산 379km의 거리다.

이곳은 그간 금강산 육로관광, 이산가족 상봉 등이 이뤄져 남북평화의 상징적 장소로 꼽힌다. 통상 마을 입구에는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솟대가 서 있기 마련이지만, 이곳에는 남북평화를 기원하는 솟대가 서 있었다. 평화솟대와 최북단을 알리는 기념비에서 사진 촬영을 한 뒤 차에 올랐다.

◆ 금강산 구선봉·선녀와 나무꾼 배경 ‘감호’…북한 절경 한눈에

관광객을 태운 차는 가파른 길을 올라 금강산전망대에 도착했다. 좁은 도로 곳곳에서 ‘미확인 지뢰지대’라 적힌 간판이 눈에 띄었다.

금강산전망대는 DMZ ‘평화의 길’의 핵심코스다. 1982년 세워진 이곳은 당시 일반인 출입이 허용됐으나 1994년부터는 군사시설로만 이용하고 있다. 평화의 길이 열리기 전 민간인이 출입하기 위해서는 신원조회 및 유엔군사령부 승인에만 약 1개월이 소요됐다. 방호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인 만큼 전망대치고는 천장이 낮은 편이었다.

유리창 가까이 서니 6·25전쟁의 흔적부터 금강산, 동해선 철도와 도로가 지나가는 구선통문까지 훤히 내려다보였다.

금강산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강산 구선봉과 감호. 오른편엔 동해안 해금강이 넓게 펼쳐져 있다. 사진=한종해 기자

좌측 산 능선에는 군사 합의에 의해 남겨둔 11개가량의 GP가 있다. 병력은 모두 철수하고 현재는 외형적 구축물만 보존돼 있다. 맞은편에 폭파된 북측 GP가 있고, 그 뒤로는 월비산 고지가 보였다. 6·25전쟁 당시 남북이 치열하게 싸웠던 곳이다.

전쟁의 흔적을 덮는 아름다운 명소도 있었다. 금강산 주봉 능선과 바다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해금강,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의 배경인 호수 ‘감호’, 삼일포, 외추도 등을 눈에 담았다.

어렴풋이 보이는 채하봉(금강산 제2봉) 뒤로 금강산 최고봉인 비로봉(1638m)이 자리했다. 금강산 끝자락에는 아홉 신선이 바둑을 뒀다는 구선봉이 펼쳐져 있다. 구선봉 근처에는 금강통문과 같은 검문소인 구선통문이 있다는 해설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특히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호수 ‘삼일포’와 ‘감호’였다. 삼일포는 신라의 사(四)선이 3일간 이곳에서 머물렀다는 데서 비롯된 명칭이다.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의 배경으로 더 유명한 감호는 수면이 맑고 깨끗해 아름다운 경관을 비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들 호수는 예로부터 구선봉과 함께 어우러져 우리나라의 절경으로 꼽히곤 했다.

금강산전망대를 마지막으로 ‘고성 DMZ 평화의 길’ 관광은 끝이 났다. 그간 사진과 영상으로만 봤던 곳을 지척에서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만 봐야 했던 이곳 평화의 길을 직접 밟았듯이, 북한 명소를 방문할 날도 머지않은 듯했다.

다음 달 1일이면 강원도 철원지역의 DMZ둘레길이 개방된다. 우리 민족을 갈라놓고 마음의 장벽을 높이 쌓아올린 DMZ를 허물 혈로가 되길 기대한다.

파이낸셜투데이 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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