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의 보험이야기]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소손해 면책으로 해결하자
[오세헌의 보험이야기]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소손해 면책으로 해결하자
  • 파이낸셜투데이
  • 승인 2019.05.2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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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실손보험 가입자가 보험금을 청구하려면 병원·약국 등에서 증빙서류(진단서, 증명서, 영수증 등)를 발급받아 보험사에 신청해야 한다. 그런데 영수증 등 구비서류를 준비하려면 금전적 비용이 발생하고 시간이 걸리므로 많은 가입자들이 소액 보험금 청구를 지레 포기하고 있다.

보험연구원의 설문조사 결과(2018.10.17)에 따르면, 실손보험 가입자 10명 중 6명이 청구금액이 적고 절차가 번거롭다는 이유로 진료·약제비를 청구하지 않았다.

의료기관 또는 약국을 방문한 실손보험 가입자 중 보험금을 청구한 경험이 없다고 응답한 자가 61.9%,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자는 38.1%에 불과했다.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은 이유는 ‘금액이 소액이어서(90.6%)’가 가장 많았고, ‘팩스 청구 혹은 보험회사 직접 방문청구 등이 번거로워서(5.4%)’, ‘시간이 없어서(2.2%)’ ‘진단서 발급비용 등 비용이 지출돼서(1.9%)’ 순이었다. 실손보험 미 청구건은 입원 4.1%, 외래 14.6%, 약처방 20.5%였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09년, 실손보험 청구를 전산화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제도 개선을 권고했지만,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10년째 공회전이고 제자리걸음이다.

현재 논의 중인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가입자가 의료기관에 관련서류 전송을 요청하면 의료기관이 보험사나 심평원에 전산으로 넘기는 방식이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의료기관의 일이 크게 늘어나고 관련서류 전송과정에서 개인정보 유출이 우려되며 비급여 표준화에 대해 우려된다는 이유로 강력 반대해 왔다.

금감원은 2015년 ‘실손보험 간편 청구 시스템 구축’을 중장기 과제로 발표했지만, 진전된 내용이 없고, 금융위와 보건복지부는 정책협의체를 만들어 실무 협의에 나섰지만 달라진 게 없다.

의료계가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실손보험 자동청구 시연회(2018.7.31)에 참석하여 보험사들에게 적극 주문했고, 금융위는 ‘금융소비자 보호 종합방안’을 발표(2019. 4.18)했지만, 실손보험 가입 및 청구 관련 안은 논의가 더 필요하다며 논의 시점을 정하지 않은 채 검토과제로 미뤄 놨다. 의료계 저항에 막혀 아직도 본질을 해결할 능력이 없음을 보여 준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전재수 의원은 보험업법 일부 개정안(진료비계산서 등의 서류를 보험회사에 전자적 형태로 전송해 줄 것을 요양기관에 요청하고,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따르도록 하는 내용)을 발의했지만, 대한의사협회 중소병원살리기특별위원회와 대한지역병원협의회는 성명(2019.3.29)을 통해 철회를 요구했다.

“법안은 환자 편의라는 포장을 하고 있지만, 환자가 아닌 대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속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반드시 집고 가야 할 것이 있다. 돈(보험료) 내는 ‘주인’(소비자)은 분명히 소비자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머슴들’(보험업계, 의료업계)이 주인을 제쳐 놓고 밥그릇 싸움만 하면서 10년 동안 허송세월을 해 오고 있다. 머슴들은 누구 덕분에 밥 먹고 사는지 대답해 보시라. 소비자들이 머슴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머슴들이 주인을 위해 존재하는가?

보험은 갑작스러운 질병, 사고로 인해 고액의 비용이 필요할 때 유용하다. 보험회사로부터 보험금을 받아 치료비 또는 피해 원상 복구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은 단 돈 몇 천원, 몇 만원의 소액치료비를 받으려고 가입하는 것이 아니다. 소액 치료비는 당초부터 보험금 지급대상으로 적절하지 않고 오히려 청구에 필요한 시간, 노력과 비용만 낭비되며 분별없는 의료쇼핑과 과잉진료를 조장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실손보험 약관에 소손해 공제조항(Deductable Clause)을 명시해서 소액 치료비(예시 : 5만원, 10만원 미만)를 제외하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논란은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는 말처럼 안되는 일에 무모하게 덤비지 말고, 차라리 소액 치료비를 보험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Deductible)하자고 필자는 감히 제안한다. 소액치료비는 실손보험이 아니라 일상 생활비로 얼마든지 충당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실손보험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

이 경우 가입자가 보험료를 내는데 보험금을 받지 못하므로 손해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보험료 산출 시 소액보험금 수령자를 제외하면 보험료가 인하되므로 손해가 아니다. 소액 치료비를 보험료 산출 대상에서 제외하는 만큼 계약자가 내는 보험료도 당연히 인하된다. 신규 계약자는 변경된 약관을 적용하고, 기존 계약자는 계약 갱신 시부터 변경 약관을 적용하므로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문제로 세간이 시끄럽다. 보험업계와 의료업계가 오랫동안 상대방을 헐

뜯고 비난해 왔는데 볼썽사납다.

보험업계는 소비자 편익을 높인다고 주장하지만, 의료계는 보험업계 의도에 의문이라며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중병에 걸린 환자를 놔둔 채 머슴들이 주변 청소만 하고 있는 형국이다. 머슴들이 주인을 위해 일한다는 사실을 각성하고 주인을 위해 일해야 선진국인데, 우리나라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머슴들이 치고 받으며 싸움할 것이 아니라 주인(소비자)을 위해 최선의 보험상품을 제공하고 의료서비스의 질적 강화에 매진해야 한다.

실손보험은 갱신형 보험이므로 이미 많은 가입자들이 경험하고 있듯이 좋은 보험이 아니다. 매년 갱신 때마다 보험료가 급격히 인상되기 때문이고, 특히 고령자에게는 보험료가 비싸 계속 유지가 어려워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보험이 가장 필요한데 계속 보장 받을 수 없는 아이러니가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금융위는 보건복지부와 멱살을 붙들고 싸워서라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조속 추진해서 결말을 내야 한다. 이것이 어려우면 더 이상 소모적인 논쟁을 반복하지 말고 소손해 면책으로 해결책을 찾아보시라. 가입자 불편 해소는 물론 보험료 인하와 무분별한 의료쇼핑, 과잉 진료를 억제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므로 좋은 방법이 아니겠는가.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파이낸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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