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치매는 노후의 불청객이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18년 전국의 치매환자는 75만명(남성 28만명, 여성 48만명)으로 65세 이상 전체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환자다. 집을 나와서 길을 헤매는 치매노인이 한해 1만명이고, 2017년 치매환자 실종 신고가 처음으로 1만건을 넘어 섰다. 고령화에 따른 노인 인구 증가로 2024년이면 국내 치매환자가 100만명을 초과하고 2041년이면 2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치매가 갈수록 증가해서 급기야 노노(老老) 간병, 간병 퇴직, 간병 자살, 간병 살인 등이 회자되고 있다. 치매환자가 발병하면 평균 12.6년간 간병이 필요하다. 생보협회에 따르면 치매 환자 1인당 연간 치료비용은 1387만원, 가족의 간병 등 간접비용까지 포함하면 2030만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치매보험을 가입하고 있다.

‘치매보험(癡呆保險)’은 보험에 가입한 피보험자가 임상치매척도(CDR)에 따라 치매로 진단 받은 뒤 일정기간 동안 그 상태가 지속 될 경우 간병비나 생활비 등을 보험금으로 받는 보장성 보험이다. ‘000 치매보험’, ‘000 실버케어보험’, ‘000 건강보험’, ‘000간병보험’, ‘000시니어보험’ 등 다양한 명칭으로 판매되고 있는데, 그 동안 중증치매만 보장하는 보험이 주로 판매돼 왔다.

그러나 중증 치매보험이 비싼 보험료만 낭비할 뿐, 보험금 받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경증 치매는 보험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치매걸린 치매보험’, ‘보험금 받기 어려운 치매보험’이란 말이 나왔다. 국회 정무위원회 전문위원의 ‘치매보험 현황 조사’에 따르면 12년(2002~2014년)간 가입자가 낸 보험료 대비 보험금으로 받은 금액의 비율이 고작 1.06%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보험사들이 최근 들어 보장기간을 늘리고 경증 치매까지 보장되는 치매보험을 출시하기 시작했고, 2018년 하반기부터 20여 보험사들이 치매보험 판매에 매달려 과열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보험사는 경증 치매에도 진단금 3000만원을 보장하는 상품을 출시했고, 일부는 가입한도를 1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올렸다.

치매보험에는 중증 치매보험과 경증 치매까지 보장하는 보험이 있다. 경증 치매와 중증 치매는 약관에 정한 CDR(임상치매 평가척도) 등급에 따라 구분되는데, 이에 따라 보험금 지급 여부가 결정된다. CDR이 1점~2점이면 경증 치매로 대화와 지적 능력이 감퇴하는 수준을 말하며, 전화기 사용, 약 챙겨 먹기, 문 단속하기가 어려운 정도다. 3점 이상이면 중증 치매인데, 한겨울에 여름옷을 입는 등 시간에 대한 인지 능력이 없고 대소변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이다. 전체 치매환자 중 중증 치매 비율은 2.1% (2016년 기준)에 달한다.

그런데 문제는 CDR에 따라 치매로 진단받더라도 치매보험금을 받기가 여전히 어렵다는 사실이다.

약관이 보험사 입맛대로 작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비자들이 치매보험을 가입해서 보험금을 제대로 받으려면 치매보험을 명확히 알아야 하고 신중히 따져보고 가입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첫째, 치매보험은 젊은 층(특히 사회초년생, 30대)이 가입하는 보험이 아니고 저축도 아니다.

주로 50대 이후 수입이 있는 경제활동기에 가입하고 건강할 때 가입하는 보장성 보험이다. 보험사들의 미사여구와 현란한 상술에 휘둘려 미리 가입하거나 저축으로 알고 가입하면 낭패를 볼 수 있다.

둘째, 중증 치매보험은 보험금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이므로 가능하면 경증 치매까지 보장되는 보험을 가입하자.

이 경우 보험료가 비싸지는데, 보험설계사의 설명만 듣지 말고, 안내장 및 약관 등을 직접 보고 경증 치매까지 실제로 보장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셋째, 80세 이후에도 보장 받는 치매보험을 가입하자.

중증 치매 발생률은 80세 이후부터 급격 상승한다. 61~80세 구간에서는 평균 0.24%에 불과 하지만, 81~100세에서는 평균 18%로 급증한다. 80세 이후부터 치매로 인해 보장 받을 일이 많으므로 보장기간을 최대한 늘려야 한다. 보험사들은 얼마 전까지도 80세까지만 보장하는 치매보험을 판매했다. 손해율 악화를 우려해 중증 치매 발생가능성이 높은 80세 이후는 보장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금감원이 보험사에게 치매 보험의 보장기간을 100세까지 확대하라고 권고했고, 보험사들이 최근에 보장기간을 100세 만기로 늘리고 있다.

넷째, 약관에서 정한 치매의 정의와 진단확정 기준을 확인해야 한다.

보험사는 약관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하므로 약관에 정한 치매의 정의와 진단확정 기준에 해당돼야 한다. 그러므로 경증 치매보험도 보험금 받기가 어렵다. 보험사들은 경증 치매보험을 팔면서 CDR 1점만 받으면 된다고 가볍게 설명하지만, 약관의 ‘보험금 지급사유’에 CDR 1점을 받았더라도 CT(컴퓨터단층촬영)·MRI(자기공명영상) 등 뇌영상 검사 상 이상소견이 나와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경증 치매는 뇌영상 검사에서 이상소견이 나올 가능성이 희박하다. 경증 치매로 보험금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낮고, 자칫 보험금 분쟁의 화근이 될 수 있다.

다섯째, ‘계약 전 알릴 의무’를 사실대로 이행하자.

보험계약 체결 전 피보험자의 병력 등 청약서에서 질문한 ‘중요 사항’에 대해 반드시 사실대로 알려야 하고, 반드시 청약서에 기재해야 한다. 청약 시 ‘치매로 의사의 진료 또는 검사 받았는지 여부’, ‘휠체어, 산소호흡 장비 등의 의료 기구 ·장비 사용 여부’ 등을 묻는 질문이 추가될 경우 사실대로 청약서에 알려야 한다.
여섯째, 가급적 비갱신형을 가입하자.

비갱신형은 가입 시 확정된 보험료를 납입기간 내내 동일하게 내는 대신 가입초기 보험료가 갱신형 보다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비싸다. 반면, 갱신형은 가입 초기 보험료가 싼 대신 갈수록 연령 증가 및 손해율 상승으로 갱신보험료가 급격히 비싸진다. 고령층의 경우 보험료가 비싸 사실상 계약 유지가 어렵게 된다.
일곱째, 보험금 청구 대리인을 지정해 놓자.

부모가 본인을 위해 가입한 경우 보험 가입 사실을 망각하거나 거동이 불편하면 본인 스스로 보험금 청구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가족이 보험금을 대리 청구할 수 있도록 보험 가입 시 ‘보험금 대리청구인’을 미리 지정하는 것이다.

여덟째, 보험금을 받을 때까지 유지하지 못할 보험이면 처음부터 가입하지 말자.

치매보험은 장기계약이므로 받는 것 없이 보험료만 하염없이 수 십년간 납입해야 할 수도 있다. “치매보험을 미리 가입해야 보험료가 저렴해 진다”는 말에 솔깃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더구나 치매보험은 당초부터 보장성보험이므로 저축이 아니고, 중도에 해지하면 손해가 불가피하므로 비싼 보험료만 낭비할 수 있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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