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더페이스샵 등 인수합병으로 키운 LG생활건강
탁월한 경영 능력 입증…2조원 황금 알 낳는 한방화장품 ‘후’
4월 미국 화장품 회사 ‘뉴에이본’ 인수, 中넘어 美품는다

사진=연합뉴스

“강을 건넌 뒤 배는 두고 가야 한다. 배가 아깝다고 지고 가면 이 배가 결국 발목을 잡게 된다.”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선택과 집중’에 탁월한 재능이 있다. 부족한 부분을 메꾸는 동시에 불필요한 것은 과감하게 버릴 줄 안다.

그는 남다른 경영실력으로 위기에 처한 기업의 구원투수 역할을 해왔다. 적자상태의 기업을 흑자전환으로 이끌어 ‘인수합병의 귀재’로 불린다.

미국 P&G와 쌍용제지, 해태제과를 거쳐 올해로 15년째 LG생활건강에 몸담고 있다. 차 부회장의 지휘 아래 LG생활건강은 국내외 경기불황과 사드 후폭풍에도 끄떡없는 그룹의 주력사로 발돋움 했다. 차석용 부회장이 경영을 맡은 이후 LG생활건강은 해마다 실적 성장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최근 미국의 알짜 화장품 회사를 인수해 북미와 유럽 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다. 거침없는 영토확장으로 또 한번 업계 새 역사를 써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발자취

1953년 6월 9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법대에 합격했지만 미국 유학길에 올라 국제감각과 경영 능력을 쌓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웠음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뉴욕주립대에서 회계학을 전공, 코넬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어린 시절 법조인을 꿈꿨던 그는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 로스쿨까지 마치며 전문성을 갖췄다.

1985년 미국 P&G(프록터앤갬블)에 입사한 지 9년 만에 필리핀 P&G 이사를 지냈다. 이후 P&G 아시아본부 종이제품 수석재무담담, 템폰사업본부 사장직을 거쳐 1999년 한국 P&G 총괄 사장을 역임했다. 입사 14년 만에 이뤄낸 성과다.

2001년 해태제과 대표이사 사장으로 자리해 법정관리 위기에 처한 해태제과의 흑자전환을 이끌어냈다. 2004년 말, 고(故) 구본무 전 LG회장의 제안으로 LG그룹에 합류했다. 그룹 사상 최초의 외부영입 인사로서 2011년 LG생활건강 부회장에 올라 경영 능력을 입증했다.

2019년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재선임됐다.

◆경영 활동

▲ 인수합병 통해 ‘음료·생활용품·화장품’ 안정적 사업구조 마련

화장품과 생활용품 중심으로 사업을 펼치던 LG생활건강은 차석용 부회장 영입을 통해 체질개선에 성공했다.

그가 인수합병을 통해 가장 먼저 몸집을 키운 곳은 음료 사업부다. 화장품 업계에서 음료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다소 이례적 일이었지만 그는 각기 다른 사업의 교차점을 통해 새로운 새회를 엿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2007년 코카콜라음료 인수를 시작으로 2009년 다이아몬드샘물, 2010년 한국음료, 2011년 해태음료를 차례로 사들였다. LG생활건강이 음료 시장에서 입지를 굳힌 것은 해태음료를 인수하고부터다. 연간 400억원 가량 적자를 내던 해태음료는 차 부회장의 손을 거쳐 2013년 흑자전환했다.

성공적 인수합병으로 음료 사업의 기반을 다진 차 부회장은 화장품사업 개선에 나섰다.

중·고가 라인에 집중돼있던 LG생활건강은 2010년 더페이스샵 인수를 통해 강력한 저가 화장품 라인을 확보했다. 이어 바이올렛드림(구 보브, 2010년), 일본 화장품 업체 긴자스테파니(2012년), 캐나다 바디용품업체 Fruits&Passion(2013년)을 인수했다.

업계 흐름도 놓치지 않았다. 2014년 당시 화장품에 피부과학 기술을 접목하는 시장이 성장하자 시장 선점을 위해 ‘차앤박’ 화장품으로 유명한 CNP코스메틱스를 사들였다. 기초, 색조, 기능성 제품 등 화장품 사업의 탄탄한 구성을 갖춘 것이다.

기업 매출 70%를 담당하며 나홀로 독주를 이어왔던 생활용품 사업부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2018년 정상가보다 싸게 파는 홈쇼핑 채널의 판매 비중을 축소하고, 생활용품 고급화 전략을 통해 중국 시장에서 수익성을 높이는데 집중했다. 바디용품 브랜드인 ‘온더바디’ 등을 키워 중국 H&B(헬스앤뷰티채널)로 수요처를 확대하는 중이다.

차 부회장 손길에 의해 LG생활건강의 사업부별 매출 비중은 균형을 이뤘다. 2005년 생활용품 67.54%, 화장품 32.46%에서 지난해 화장품과 생활용품, 음료 사업 매출 비중은 각각 57.88%, 21.66%, 20.47%로 조정됐다.

▲ 선택과 집중…날개 단 고가브랜드 ‘후’, 몸집 줄인 ‘더페이스샵’

LG생활건강의 효자 브랜드로 꼽히는 궁중 화장품 ‘후’는 지난해 매출 2조원을 돌파했다. 국내 단일 화장품 브랜드 매출 기록이 2조원이 넘은 것은 LG생활건강이 처음이다.

사진=LG생활건강

2003년 출시된 화장품 후는 경쟁사인 아모레퍼시픽에 비해 다소 늦게 출발했음에도 업계 1위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차 부회장은 후발주자로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후 한방연구소’를 설립했다. 궁중 의학서적에 대한 기록을 분석해 성분뿐 아니라 패키지에도 정성을 쏟았다. 후의 최고급 라인인 ‘환유’는 개발에만 3년이 소요됐을 정도다. 화려하고 럭셔리한 제품 용기는 국보 제287호인 금동대향로에서 차용했다.

이 같은 전략은 화려함을 선호하는 중국인들에게 먹혀들었다. 후의 매출은 2009년 1000억원에서 2017년 1조400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지난해는 국내외 매출 2조원을 기록해 LG생활건강의 실적을 견인하는 효자브랜드로 등극했다.

차 부회장은 ‘후’의 승승장구에도 자만하지 않았다. 매출 하락세를 보이는 로드샵 브랜드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그는 2017년 말 중국 최대 H&B기업으로 꼽히는 왓슨스와 입점계약을 체결했다. 이어 2018년 10월 현지 130여곳에 달했던 더페이스샵과 LG생활건강 편집숍 ‘네이처컬렉션’의 오프라인 매장을 모두 철수시켰다. 브랜드 인지도보다 소셜네트워크 유행 제품을 선호하는 중국 중저가화장품 시장의 흐름에 따른 결과다. 이 같은 채널변화를 통해 그는 고정비 부담과 사업 위험성을 줄일 수 있었다.

▲ 멈추지 않는 도전, ‘뉴에이본’ 인수로 미국 사업 확대

중국 시장 성공에 힘입은 차석용 부회장은 미국 시장으로의 영토 확장에도 거침없는 모습이다. 그는 지난 4월 미국 화장품 회사 ‘뉴에이본’ 인수에 성공하며 새로운 해외 사업의 기반을 마련했다.

차 부회장이 해당 기업을 점찍은 것은 미국 뿐만 아니라 캐나다와 남미 유럽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하기 위해서다. 에이본은 130년 역사를 가진 세계 최대 화장품 회사로, 지난해 매출 7000억원을 기록했다. 물류와 영업 등의 인프라를 토대로 캐나다 등에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미국 화장품시장 규모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코트라에 따르면 미국 화장품 시장 규모는 지난해 896억4000만 달러(한화 약 104조원)에서 2022년 1041억6100만달러(한화 약 121조원)에 이른다.

시장 규모가 막대한 만큼 차 부회장의 미국 사업 성공 여부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건 사고

▲바디미스트 알레르기 유발성분 논란

LG생활건강이 판매한 바디미스트에서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검출됐다.

지난 2월 한국소비자원 조사 결과 LG생활건강의 ‘비욘드 딥 모이스처 바디 에센셜 미스트’에서 접촉성 피부염을 유발하는 향료 HICC가 검출된 것이다. 이는 알레르기유발향료 3종의 사용금지 규정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한국소비자원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해당규정의 조속한 시행을 요청했다.

LG생활건강은 올해부터 제품 공정에서 해당 물질을 제외시켰다.

▲주식 매각으로 인한 퇴진설

차석용 부회장은 2014년 3월 코카콜라와 더페이스샵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같은 해 6월 보유하던 LG생활건강 보통주 전량을 210억원에 매각했다. 차 회장의 이 같은 행보는 LG생활건강 대표직을 내려놓는 것이 아니냐는 억측으로 번졌다.

차 부회장은 “그간 코카콜라와 더페이스샵의 구조 개선을 위해 대표이사를 맡아왔다. 상황이 나아져 물러난 것일 뿐”이라고 논란을 일축했다.

◆평가

차석용 부회장만의 확고한 인수합병 원칙은 회사 성장을 이끌었다. 사업정상화의 빠른 진행을 위해 인수팀을 따로 두고 있다. 인수합병의 귀재답게 영문 서류도 직접 챙기는 등 실무 과정에 적극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기업 P&G에서 경험을 쌓은 만큼 ‘효율성’을 중시하는 개방적 기업문화를 만들었다. 유연근무제와 정시퇴근제를 도입해 이메일 교환 및 토론 등의 비효율적 관행을 없앴다. 특히 여성 임원 비율이 13%로 업계 상위권으로 꼽힌다.

자기관리도 철저하다. 술, 담배, 골프, 회식, 의전을 하지 않는다. 출퇴근 시간은 오전 6시와 오후 4시며 아파서 결근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뛰어난 경영 수완으로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의 LG생활건강을 만든 주역이기 때문이다.

LG그룹 6명의 부회장 가운데 가장 먼저 부회장을 달았다. 차 부회장이 스스로 물러나기 전까지는 그의 거취에 변화가 없을 것으로 업계는 관측한다.

파이낸셜투데이 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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