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의무비율 확대 등 수익성 영향, “정부개입 과하다” 볼멘소리
박원순 신중론 및 일몰제 공포 확산, 주요 사업장 줄줄이 표류 위기
“과도한 규제, 시장 혼란 초래…중장기적 대책 고민 필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부와 서울시가 집값 안정화에 방점을 두고 고강도 규제책을 유지하면서 주요 정비사업장에 빨간불이 켜졌다. 임대의무비율 상향조정 및 정비구역 일몰제 시행 예고 등 불확실성 요인들이 중첩되면서 일각에서는 사업이 줄줄이 표류 위기를 맞는 게 아니냐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최근 국토교통부는 무주택 실수요 중심 공적임대주택 공급 확대와 투기수요 차단 등을 골자로 한 ‘2019년 주거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정비사업과 관련해서는 공공성·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현재 서울과 경기·인천 등 수도권 재개발 임대주택 의무비율 상한을 상향 조정키로 했다.

현행 의무비율 범위는 서울의 경우 10~15%, 경기·인천은 5~15%, 지방 5~12% 등으로 정하고 있다. 정부는 지방을 제외한 수도권 등지 임대의무비율을 현행 대비 각각 5%p씩 상향한다. 주택수급 안정 등 구역 특성에 따라 최고 10%p 범위까지 올릴 수 있도록 했다. 지역 및 입지에 따라 최고 30%까지 임대주택을 마련해야 하는 사업장이 생길 수 있는 셈이다.

정부는 올해 안에 개정 시행령을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행령 개정 전 사업승인계획을 받지 못하면 정비사업에 뛰어든 건설사들은 변경된 임대의무비율을 적용받는다.

이와 관련해 업계에서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임대주택 비율이 늘어나면 그만큼 일반분양 물량이 줄어들어 상대적으로 사업의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재개발을 추진 중인 단지에서는 변경된 규정에 따라 사업 계획을 다시 짜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재건축에 이어 재개발까지 옥죄는 건 과하다. 사실상 서울에서는 정비사업을 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다”며 “이미 지난해부터 안전진단 강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대출규제 강화 등 (정비사업 추진) 단지들이 부담을 느끼고 있는데 임대의무비율까지 높이면 섣불리 사업에 나서는 단지가 없을 것 같다.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면 건설사까지 피해를 보게 된다”고 토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연합뉴스

이어 “재개발은 원래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특히나 조합의 이익을 보장하면서 가져가야 하는 사업이다. 정부 규제로 수익성이 악화되면 결국 정비사업 추진 의지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임대주택 의무비율 상향 조정은 내년부터 시행 예정인 정비구역 일몰제, 서울시 정책 방향과도 맞물려 그 여파는 상당할 것으로 판단된다. 예정대로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서울시는 주택시장 안정화 및 투기수요 차단 등 정부와 뜻을 같이하면서 정비사업 인·허가에 신중한 입장을 내고 있다. 실제 최근 정비사업 허가가 떨어진 단지는 대부분 시장 가격을 부추기지 않을 정도의 소규모 단지가 주를 이뤘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앞서 17일 서울시의회 임시회에서 “강남 압구정동 일원 노후 아파트를 그대로 둬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다만 신도시 하나에 버금가는 워낙 큰 단지여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부분은 서로 충분히 소통하고 협력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부동산시장 안정이 이뤄졌다고 보지 않는다”고 주요 정비사업 허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이 밖에 내년 3월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정비구역 일몰제도 사업 추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정비구역 일몰제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20조(정비구역 등의 해제)에 따라 일정 기간 사업 진척이 없는 정비구역에 대해 시·도지사 직원으로 해당 구역을 해제하는 제도다.

정비구역 지정 후 2년 이내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지 못하거나 추진위 승인 후 2년 이내 조합설립인가 신청을 하지 않을 경우 적용한다. 조합을 설립한 단지는 3년 이내 사업시행계획인가를 신청해야 한다.

관련 규정 시행일인 2012년 2월 1일보다 앞서 정비계획을 수립한 추진위는 2020년 3월 2일까지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해야 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38개 정비사업구역이 일몰제 대상이다. 재건축 단지가 23곳, 재개발구역이 15곳 등이다.

일몰제 적용을 받아 정비구역에서 해제될 경우 사업은 다시 ‘제로(0)’로 돌아가게 된다. 사업에 투자한 비용 회수도 불가능하다. 일몰제 적용을 피하려면 지정된 날짜까지 조합설립인가 또는 사업계획 인가 신청을 내야 하지만 현재로선 그마저도 쉽게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무주택 실수요자를 위한 임대주택을 늘리는 제도라고 하지만 사실상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해 사업 자체를 추진하지 않으면 어떡하냐”며 “재개발을 하지 않으면 신규 주택이 있을 수 없고 신규 공급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 일대 지역은 점점 더 슬럼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시장을 이렇게 옥죄면 양극화는 점점 더 심해진다. 결국 돈 있는 사람만 잘 먹고 잘사는 분위기가 고착화될 수밖에 없다”며 “원활한 주택공급이 이뤄지지 않으면 오히려 나중에 가격이 걷잡을 수 없이 폭등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장기적인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이낸셜투데이 배수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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