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 팔리면 재계 60위권 밖으로
대우건설·대한통운 인수 ‘승자의 저주’
유동성 위기에 알짜 계열사 줄줄이 처분
형제의 난·낙하산·미투 등 오너리스크
결국 매각, 남은건 금호산업·고속 뿐

사진=연합뉴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아픈 손가락’을 떼어내기로 했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최근 사내 게시판을 통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기로 했다. 임직원에게 면목 없고 미안한 마음이다”고 밝혔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창립 이래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매각되면 그룹은 사실상 중견기업 규모로 쪼그라든다. 5대 그룹까지 넘볼 정도로 급속 성장했던 금호그룹이 어쩌다 이런 처지까지 주저앉은걸까. 무리한 외형확장부터 ‘형제의 난’으로 촉발된 오너리스크, 무성의한 자구책까지 금호그룹의 실패 원인을 들여다 봤다. 단숨에 인수합병 시장 최대어로 떠오른 아시아나항공에 눈독 들이는 기업들과 시너지도 분석해 봤다.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2002년 취임한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외형 확장에 집중하면서부터다. 박삼구 전 회장은 취임 후 “2010년 재계 5대 그룹 진입”을 선언했다. 이를 위해선 신사업이 필요했다.

박삼구 전 회장은 2006년 6조4000억원을 들여 대우건설을, 2008년 4조1000억원으로 대한통운을 인수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단숨에 재계 서열 7위에 올랐다.

하지만 차입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두 회사 인수를 위해 KDB산업은행 등 재무적 투자자를 통해 3조5000억원을 차입했다. 2009년 말까지 대우건설 평균 주가가 3만4000원에 미치지 못하면 해당 주가를 기준으로 주식을 되사주기로 하는 보증계약인 ‘풋백옵션’도 약속했다.

대우건설은 금호아시아나그룹 품에 안긴 뒤에도 정상화되지 못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으로 건설 경기가 살아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금호아시아나그룹은 4조2000억원에 달하는 풋백옵션 행사 금액을 감당하지 못하고, 인수 3년 만에 대우건설을 재매각했다.

대우건설 매각을 전후로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는 줄줄이 처분됐다. 대한통운도 재매각했고 광화문 사옥,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금호생명, 금호산업, 금호렌트카도 내놨다. 금호고속 지분 일부도 산업은행에 담보로 잡힌 상태다. 금호타이어 중국 톈진 공장과 지분 50%, 아시아나항공의 공항 서비스도 팔았다.

박삼구 전 회장과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간 ‘형제의 난’이 도화선이 된 오너 리스크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발목을 잡았다.

박삼구 전 회장이 취임 후 ‘몸집’에 치중한 반면, 박찬구 회장은 ‘내실’에 힘을 실었다. 자연스레 둘은 반목하게 됐고,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처하자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유화학을 중심으로 하는 계열분리를 추진했다.

이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삼구 전 회장이 항공·건설·운수 부문을 맡고, 박찬구 회장이 석유화학 부문을 맡는 식의 분리경영체제에 돌입했다. 65세가 되면 동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그룹의 가풍은 박삼구 전 회장대에서 끊겼고, 어려운 계열사가 있으면 서로 돕는 관행도 사라졌다.

박씨 형제는 돈 앞에서 처참하게 갈라졌다. 박찬구 회장은 2011년 3월 공정거래위원회에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를 금호그룹에서 제외해달라고 신청했다. 이후 한 달 뒤 박찬구 회장은 비자금 조성 의혹 등으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고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박찬구 회장은 공정위 일에 앙심을 품은 형의 제보로 수사가 시작됐다고 의심했다.

둘은 ‘상표권’을 두고도 치열하고도 지지부진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애초에 ‘금호’ 상표권은 금호산업과 금호석유화학이 함께 등록했다. 그러나 그룹 내 상표 사용권은 금호산업 몫이였다. 이에 금호석유화학은 2009년 10월 이후 브랜드 공동 소유권을 주장하며 상표권 사용료 지급을 거부했고, 금호산업은 2013년 9월 금호석유화학에게 상표권 사용료 미납분 261억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1심은 금호산업이 상표권리자임을 인정할 만한 문서가 없다는 이유로 금호석유화학의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의 판단도 같았다. 금호산업은 이에 불복,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형제 갈등은 그룹 경영에 실질적인 타격을 줬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유일하게 지탱하던 아시아나항공마저 ‘노밀’사태를 겪으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노밀’사태는 지난해 7월 1일 발생했다. 이날 아시아나 항공기 국제선 중 무려 51편이 기내식을 싣지 못해 예정시각보다 늦게 이륙했다. 같은날 박삼구 전 회장이 탑승한 비행기는 기내식을 가득 싣고 제시간에 출발했다.

다음날 아시아나항공에 기내식을 납품하던 재하청업체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룹 경영진이 사과에 나섰지만, 사태는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박삼구 전 회장의 배임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기업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다.

비슷한 시기 낙하산 인사 논란도 터졌다. 박삼구 전 회장의 딸 세진 씨가 금호리조트 경영관리담당 상무로 선임된 것. 리조트 관련 경력이 전혀 없고 수년간 전업주부로 활동해왔다는 점에서 거센 비판이 일었다. 당시 박삼구 전 회장은 “딸이 오랫동안 일을 쉬었는데 이제는 사회생활을 다시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금호리조트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겠다. 예쁘게 봐달라”고 말하며 기름을 부었다.

아시아나 노밀 사태 당시 규탄시위. 사진=연합뉴스

‘노밀’ 사태가 대규모 촛불집회로 이어지면서 박삼구 전 회장의 ‘미투’ 논란까지 제기됐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은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를 통해 박삼구 전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본사에 방문할 때마다 여성 승무원들을 껴안거나 손을 주무르는 등의 행동을 일삼았다는 글을 올렸다. 이후 정직원 전환을 앞둔 승무원들이 ‘기쁨조’로 동원됐다는 등의 제보가 이어지면서 박삼구 전 회장은 벼량 끝으로 몰리기도 했다.

결국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 10일 5000억원의 추가 자금 지원을 요청하며 산업은행과 채권단에 자구책을 내놨다. ▲박삼구 전 회장 경영권 포기 ▲박 전 회장 일가의 금호고속 지분 전량 담보 제공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 매각 ▲3년 내 정상화 안 되면 아시아나항공 매각 ▲수익성 낮은 노선 정리 등이 골자였다.

채권단은 퇴짜를 놨다. 별다른 고민도 없었다. 오히려 자금 지원을 받으려면 특단의 조치를 내놓으라며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압박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부랴부랴 비상경위원회를 열었고, 5일 만인 지난 15일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결정됐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그룹 핵심 자산인 아시아나항공을 팔고나면 위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아시아나항공이 그룹 매출액의 64%를 차지하는 만큼, 그룹 자산 규모는 3분의 1수준(11조4476억원→4조5644억원)으로 쪼그라든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자산 규모 5조원 이상 기업 60곳을 지정하는 ‘공시대상기업집단’에서도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기준 60위인 한솔의 자산 규모는 5조1000억원이다.

한 숨 돌린 아시아나항공, 1조6천억 긴급 수혈

경영 안정화 및 몸집 축소에 속도
채권단 “연내 새주인 찾는다”
금호고속에도 브릿지론 1300억원


아시아나항공 정상화를 위해 1조7300억원이 투입된다. 이 중 1조6000억원은 아시아나항공에 직접 지원하고, 나머지 1300억원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금호고속에 주기로 했다.

산업은행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아시아나항공 금융지원 방안을 확정했다고 23일 밝혔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날 오후 이사회를 열고 채권단이 마련한 유동성 지원안을 승인했다.

아시아나항공에 지원되는 1조6000억원은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요청한 5000억원 보다 1조1000억원이나 많은 금액이다. 이는 채권단이 시장에 안심을 주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우선 채권단은 아시아나항공이 29일 발행하는 4000억원 규모의 영구채(50년 만기)를 사들인다. 아시아나항공은 추가로 1000억원어치의 영구채도 발행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700%대로 내려갈 것으로 예상된다. 영구채는 자기자본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채권단이 사들인 영구채는 출자전환 시 주식으로 전환된다. 해당 지분은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이 무산될 경우 추후 채권단이 매각을 주도할 수 있는 ‘레버리지’가 된다.

채권단은 한도대출(크레딧 라인)로 8000억원, 보증한도(Stand-by L/C)로 3000억원을 지원한다. 이는 ‘마이너스 통장’ 개념의 대출로, 아시아나항공이 필요하면 빼 쓰고 갚을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에 지원되는 1조6000억원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7대 3 비율로 부담한다. 시중은행은 불참하지만, 산업은행으로부터 현재 보유 중인 여신의 잔존이나 리볼빙을 요구받은 상태다.

금호고속에 지원되는 1300억원은 매각을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브릿지론 형태를 띈다. 채권단은 해당 자금으로 금호고속이 25일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 1300억원을 갚게 한다. 대신 금호고속의 금호산업 지분을 담보로 잡을 계획이다.

아시아나항공은 경영 정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원안이 나온 23일 비수익 노선 구조조정안을 발표하고 노선 구조개선에 돌입했다. 오는 9월에는 인천~하바로프스크와 인천~사할린 노선을, 10월 말에는 인천~시카고 노선을 정리하기로 했다. 2020년 이후 노선의 구조조정은 매각 주간사 및 채권단과 긴밀한 협조를 통해 신중히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또한 아시아나항공은 ▲비수익 노선 정리 ▲보유 항공기 정리 등 기재 축소 ▲인력 생산성 제고 등 3대 중점 자구안을 관할하는 태스크포스(TF)을 운영하고 있다.

파이낸셜투데이 한종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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