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점 낮은 무주택자 및 유주택자에 기회, ‘줍줍’시장 열풍
현금부자 쏠림·과열경쟁 우려…“대출 규제 손질 등 대책 필요”

견본주택을 찾은 수요자들. 사진=연합뉴스

무주택 실수요자 중심으로 청약제도가 개편되면서 갈 곳 잃은 유주택자의 자금이 ‘무순위청약’으로 쏠리는 모습이다. 적체된 미계약분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건설업계에서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남은 물량을 주워 담는다는 의미로 일명 ‘줍줍’이라는 신조어도 생긴 무순위청약은 미계약 혹은 미분양된 물량에 대해 다시 추첨해 청약 당첨자를 결정하는 제도다. 1·2순위 청약 전에 하는 사전접수와 정당계약 이후 진행하는 사후접수로 나뉘며 미계약분에 대해서는 무순위청약 접수자에게 우선 계약권이 주어진다.

청약통장이 없어도 만 19세 이상이라면 주택 소유 여부와 관계없이 신청 가능하다. 당첨 이력이 남지 않아 다음 1순위 청약에도 도전할 수 있다.

통상 미계약분 분양을 받으려면 견본주택 앞에서 줄을 서서 선착순 청약을 기다려야만 했다. 올 2월부터는 금융결제원 아파트투유를 통해 클릭 몇 번만으로 잔여 물량에 대한 청약 신청이 가능해졌다.

무순위청약은 도입과 동시에 크게 주목받고 있다. 자격 요건이 까다롭지 않아 청약 가점이 낮아도, 주택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청약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처음 사전 무순위청약을 진행한 곳은 ‘청량리역 한양수자인 192’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0~11일 진행된 이곳 단지 무순위청약 접수에는 1만4376명이 몰렸다. 전용면적별 ▲84㎥D 3533건 ▲84㎥A 2664건 ▲84㎥F 2233건 ▲84㎥E 1383건 ▲84㎥B 1086건 순으로 나타났다.

사후접수를 진행한 ‘홍제역 해링턴 플레이스(174가구)’, ‘태릉 해링턴 플레이스(62가구)’ 등에도 각각 5835명, 3835명이 대거 몰렸다.

정부의 규제 강화 등으로 입지가 좋은 인기 단지에서도 청약 당첨 이후 실제 계약까지 성사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업계에서도 무순위청약 도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다.

청량리역 한양수자인 192 사전 무순위청약 당시 집객모습. 사진=한양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첫째 주 부적격 당첨자(1만2978명)는 전체 당첨자(14만8052명)의 8.8%를 차지했다. 10명 중 1명이 부적격자로 분류된 셈이다. 2017년 적발된 부적격자는 2만1904명으로 1순위 당첨자 23만1404명의 9.4% 수준을 보였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청약경쟁률이 높은 만큼 실제 계약까지 이뤄지면 좋겠지만 청약경쟁률은 단지에 대한 관심이나 선호도 정도를 파악하는 지표라 계약률과는 별개로 봐야 한다”며 “가장 단순하게는 당첨된 집이 마음에 안 들 수도 있고 대출이 예상한 만큼 나오지 않아 자금이 달려 계약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무순위청약은 건설사 입장에서 미계약 물량에 대한 부담을 어느 정도 덜 수 있다. 계약률도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미분양 사태가 조금은 줄어들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는 무순위청약을 도입하는 단지가 속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수요자는 청약통장을 아낄 수 있는 것은 물론 추후 1순위 청약에 나설 수 있고 건설업계에서는 미계약분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니즈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다만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다. 무순위청약에 나서기 위해서는 사실상 자금 여력이 충분해야 하므로 자칫 현금부자들만의 ‘줍줍’ 시장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견해다. 신청예치금도 없을뿐더러 사전 무순위청약의 경우 계약을 이행하지 않아도 패널티가 없어 과열경쟁을 부추기는 불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 랩장은 “무순위청약 제도는 사업자의 경우 미분양·미계약 물량에 대한 별도의 마케팅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수요자에게는 시장의 투명성·공정성 등을 보장하면서 기존 방식보다 불안감을 덜어서 윈윈(Win-win)이 될 수 있다고 본다”며 “현금부자나 이른바 ‘줍줍’ 수요가 몰리면서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실은 무주택자에게 우선권을 줬지만 그럼에도 해소되지 못한 물량에 대한 패자부활전이라고 보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시장 양극화가 해소되지 않을 거라는 점, 무순위청약에 과도하게 몰리면서 청약수요가 대폭 늘어나는 것처럼 보여 시장과열을 양상할 수 있다는 점 등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무순위청약은 미분양분 해소보다 그 물량을 누가 가지고 가느냐의 문제가 우선이다”며 “무주택자를 위한 주택공급이 이뤄져야 하는데 ‘돈 있는 사람들’이 무순위청약에 나서서 주워 먹듯이 미분양분을 흡수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수도권에서는 청약 당첨자가 단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을 포기하는 경우는 없다”며 “이 때문에 무순위청약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신규분양단지에 대해서는 무주택자뿐만 아니라 유주택자에게도 대출 규제를 똑같이 적용하는 등의 세부적인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파이낸셜투데이 배수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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